월간 사람

[특집] 그 곳에 가고 싶다

공적 공간에 대한 문화적 권리

문화적 권리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는 현 시점에서 공간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공간은 단순히 건물이나 도로와 같은 경계를 통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들이 다층적으로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문화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공간에 대해 데이비드 하비(D. Harvey)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회적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장소로 분석한다. 즉, 공간을 이용하고 정의하는 방식들을 변경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추구와 같은 특정한 이해관계가 관철된다는 것이다.



모든 공간이 사유화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공간이 물리적 내구성이나 지속성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생산되고 구성됨에 따라 그 기능 역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이미지와 상징과 같은 스펙터클(볼거리)이 강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공간은 강렬한 이미지에 휩싸인다. 이미지를 통해 공간은 자본회전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특히 도시 내의 분절화는 소비주체의 다양한 이합집산을 강제한다. 가령 압구정동, 영등포, 홍대, 돈암동, 신촌, 대학로 등은 행정상의 지역 구분이 아닌, 이들 공간이 만들어내는 의미생산에 의해 실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위의 공간들은 자본의 유통구조 속에서 각기 고유한 공간의미를 생산하는데, 압구정동은 지배계급을, 영등포는 노동자를, 신촌과 대학로는 청년층을, 돈암동은 청소년층을 자신의 구성인자로 만들면서 계급, 세대, 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소비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공간은 대중의 소비방식을 규정한다. 대중의 소비방식은 공간 내에서 철저히 차별적 배제와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공간에 대한 접근이 명목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이루어지지만, 특정 공간의 기호를 소비할 수 있는 자유는 계급, 세대, 성 등에 의해 제한된다.

공유공간의 축소와 경제성에 편중된 공간의 획일성에 대항하여 시작된 스퀴트는 우리말로는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등으로 불린다. 프랑스 '점거아틀리에'의 대표적인 공간인 '로베르네집'


그런 의미에서 공간은 언제나 ‘사유화’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즉, 자본의 이윤추구와 권력행사 속에서 특정한 개인과 집단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공간에 대한 사적 소유는 가능하지만, 사회 공공성의 측면에서 ‘공적’ 기능을 유지해야 할 공간도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공간이 사유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공간의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할 곳은 대중의 생활과 기본적 권리들이 최소한 보호 받을 수 있는 곳들이다. 공적 공간의 문화적 권리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은 공공문화기반시설들이다.


‘공공문화기반시설’이란 국가와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들여 마련한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문화의 집, 주민자치센터, 구민회관, (구립)체육관, 사회복지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공간들은 백화점이 운영하는 문화센터나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극장 혹은 공연장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 공간들은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와 권리를 실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원체계(시설관리, 프로그램 운영)를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문화기반기설은 문화복지의 증진을 통해 대중의 문화적 권리를 보호하고 확대시킬 수 있도록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공공문화기반시설, 행동하는 운영체계가 필요


일반적으로 복지에 대한 개념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최소한의 물질적 보장을 의미한다. 복지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복지와 문화복지의 차별성이다. 포디즘-케인즈주의로 요약되는 산업경제체제 속에서의 사회복지 개념과 달리, 문화복지는 문화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기능하는 현 시점에서 새롭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중의 삶의 질과 생활의 즐거움이 하나의 권리로 인식되고 이것이 복지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문화복지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다. ‘문화복지’란 창조적 예술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과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법, 프로그램, 현물 및 현금 등 일체 서비스 체계를 말한다. 문화복지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문화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든다. 즉, 문화를 잔여적 의미가 아닌, 생활양식 그 자체로 보게 만든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확대 속에서 ‘문화향수권’과 같은 문화적 권리가 나오게 되었다.


공공문화기반기설의 운영 실태와 문제점을 분석해 보면, 공적 공간에서 문화적 권리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적 권리가 구체적으로 확보되고 구현되는 곳이 공공문화기반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문화기반시설은 사회 공공성을 확대하는 맥락 속에서 관리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공공문화기반시설의 운영 실태를 보면 개선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운영인력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히 요구된다. 국가와 지자체가 시설을 마련하고 운영하다보니, 관련 공무원이 업무 순환제에 따라 빈번히 교체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창의성과 혁신성이 요구되는 운영 마인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간이 공공문화기반시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설관리는 국가와 지자체가 맡되, 실질적 운영은 시민사회(지역의 문화단체와 사회단체)가 맡을 수 있는 파트너십 관계를 보다 강고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중이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다양하게 펼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유명 강사의 강연과 같이 ‘강의식’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와 흥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될 만하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화프로그램의 목표는 대중의 체험과 창작에 있다. 따라서 교육과 체험 그리고 창작이 서로 연계될 수 있는 단계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문화에 대한 수동적 피교육자에서 창작(생산)의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다.


다음으로 공공문화기반시설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선전이 필요하다. 문화의 집과 주민자치센터와 같은 생활권역별 문화공간들은 쾌적하고 다양한 내부 공간을 갖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규모가 큰 박물관과 도서관이라 할지라도, 단지 전시물을 관람하거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명목적 기능 이외의 활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적극적으로 대중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대중 속으로 찾아가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행동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공공문화시설은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한 때 접근성이 떨어지기로 유명했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자치와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공공문화기반시설들 사이의 정보 네트워킹 역시 중요하다. 한 공간이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즉, 방대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과 대중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간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시설투자의 중복현상도 막을 수 있다. 전문화된 공간의 운영 및 이들 공간들의 유기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대중은 자신의 감성과 취향에 맞는 공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대중이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및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은 최신의 시설을 자랑하지만, 대중의 접근성에 있어 낙제점을 받고 있다. 대중의 생활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은 그 자체로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공공문화기반시설은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주부, 노인, 여성,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가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및 이용자의 인구학적 조사 및 문화적 욕구에 대한 주기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근대민주주의의 산물이라면, 문화적 권리는 문화민주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사법제도를 통해 보장되는 신체 외적 권리라면, 문화적 권리는 시민사회를 통해 보장되는 신체 내적 권리이다. 즉, 문화적 권리는 욕구와 취향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권리를 확대하는 데 있어 공공문화기반시설과 같은 공적 공간의 보다 적절한 관리체계 및 운영 마인드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문화는 당대의 삶이 응축된 산물이기에, 공공문화기반시설은 누구나가 이용해야 할 공간이기에 그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


공적 공간의 문화적 권리가 확보된다는 것은 결국 ‘문화자치’를 이룰 때 가능하다. ‘문화자치’란 위로부터의 일방적 지원이나 계도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문화적 권리행사이다. 중앙정부의 권력독점이 여전히 강하고 지자체의 자치능력이 초보적인 상태에 있는 현 상황에서, 문화자치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권리의 확보와 행사는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할 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