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문화전성시대 vs 위기의 문화권

문화권의 현재적 의미, 그리고 문화 다양성과 공공성




당신의 문화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 먹는 일’ 다음의 것이던 문화는 이제 대형 할인마트에 쌓인 ‘씻어 나온 쌀’ 마냥 팔리는 그 무엇이 되었다. 아니 팔리지 않는 것은 문화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제결정론, 신자유주의 체제의 획일화가 만든 세상이다. 그러나 문화 없는 사회가 유지 가능하며 문화를 뺀 개인의 정체성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한미FTA로 문화적 다양성과 공공성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문화권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월간 <사람>은 다시 묻는다. 당신에게 문화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문화전성시대 vs 위기의 문화권
그 곳에 가고 싶다-공적공간에 대한 문화적 권리
저 노래는 많이 들어서 좋아진 것일까?
좌담 “문화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바야흐로 문화전성시대이다. 1,300만 명이 일제히 같은 영화를 보러가지 않나, 국가 간 공놀이에 서울 한 복판이 인파로 메워지질 않나, 그 규모와 열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불온한 상상력과 진보적 감수성’으로 문화사회를 만들자는 문화운동단체 ‘문화연대’는 이 와중에 우리의 문화적 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몰리고 있단다. 지난 5월 25일 6차례 연속토론회의 첫 순서이자 총론이 발표되던 토론회장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정치적 시녀에서 부가가치 증대의 수단으로


총론발제를 맡은 강내희 교수(문화연대 공동대표, 중앙대 영문학)는 현재 한국사회가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 아래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신자유주의와 문화, 문화적 권리가 무슨 상관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강 교수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상관관계를 살핀다. “문화는 80년대 ‘정치의 시녀’로서의 역할을 했으나 90년대 초 이후에는 ‘경제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였고, 아울러 최근에는 “정치로부터 새로운 기능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문화를 안전한 장소(대학이나 문화예술 기관)에 안치하거나 직접 지휘의 대상(무형문화제)으로 삼거나 국위선양과 같은 직접적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관리했다면, 오늘의 그것은 문화의 정치적 자율성보다는 경제적 효과(부가가치 증대수단)를 강조하며 문화가 생산적이 될 것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서 문화의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강화하는 문화복지나 문화산업을 주로 지원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한류’가 최근에 정책지원 등 정치적 주목을 받는 것도 주로 그것이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을 가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문화는 결국 상품이며 문화적 권리는 경제적 논리가 지배하는 효율성과 생산성 속에서 실종되고 만다. “판매되고 유통되고 소비될 가능성이 없다면 그 밖의 어떤 것도 만들어지거나 행해질 수 없게 된다.”라며 이미 문화는 “자본 축적 논리에 깊숙이 포박되고 있으며, 이 결과 상품화의 경향에서 벗어난 문화, 즉 비자본주의 문화는 존립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그의 현실진단은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강 교수는 지난 80년대 “민족문화, 민중문화, 노동문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문화운동에서 볼 수 있듯 과거 문화가 단지 정치적 시녀만은 아니었으며 지금시기에도 “지배적 문화 개념에 대한 개입의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전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권리를 “신자유주의 체제의 구축으로 후퇴한 인권을 문화적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문화적 권리는 기본적 권리, 즉 인권에 속한다. …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더 많이 구가할 수 있는 재산의 소유자, 자본가계급의 이념이다. 문화적 권리를 강화하려면 이런 자본가계급에게만 적용되는 인권에서 벗어난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인권의 개념이 요구된다.”



그가 말하는 부르주아지의 소유권에 대립되는 인권 개념은 ‘노동권’이다. 여기서 노동권을 단지 일 할 권리로 인식했을 때는 문화권과 상반된 개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권을 노동에 대한 권리를 넘어 노동자가 지닌 권리, “인간으로서의 노동자가 부르주아의 소유권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할 때, 노동권은 노동을 거부할 권리까지 포함하며 “인간이 그 자체로 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말처럼 “노동권이 노동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하는 것을 거부할 권리이듯이 문화적 권리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간섭, 국가의 간섭 등을 받지 않고 영위할 권리”라면 문화권을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권’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소비하는 인간을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이자 신자유주의적 사회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차이와 공유로서의 문화권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이러한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권으로서의 문화권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문화 다양성’과 ‘공공성‘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는 “문화권은 다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둘러싼 커다란 두 가지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데, 바로 차이와 공유”라고 말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여기서 ‘차이로서의 문화권’을 뜻한다.



“차이로서의 문화권은 구체적인, 특정한 삶의 양식과 문화적 취향을 차별하지 않으며, 소수문화의 사회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정체성과 감수성 차원에서의 권리이기에 (문화정책에서) 사회복지 또는 문화복지의 관점이 결핍과 정상성에 따른 ‘요구’에 근거한 것이라면, 문화권은 특이성과 정체성에 따른 ‘욕망’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문화=상품’이라는 등식 아래 “지역문화에서부터 개인의 소비문화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언어에서부터 국가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획일화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부정되고 해체된다. 이는 생존의 문제이자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계급, 연령, 성, 지역 등 다양한 권력관계는 문화적 차별과 억압을 생산(재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구조적인 동시에 미시적으로 문화적 폭력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정체성과 차이가 차별, 억압, 배제가 아니라 존중, 배려, 유대의 관계로 전환”되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한편 ‘공유로서의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문화 공공성은 “단순히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권 및 향유권의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사회적 공유 전반에 대한 권리를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이원재 처장은 규정한다. 하기에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문화의 사유화, 독점화에 맞서 “물리적 공간과 대상만이 아니라 문화를 둘러싼 창작(생산 및 재생산), 재현, 향유(소비), 접근, 소통(유통) 등 공유로서의 문화권 전반이 공개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사회 공공성을 해체하는 국가와 자본 권력에 대한 활발한 대응과 문화권을 확장하기 위한 대안사회의 모색”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주체의 일상성을 문화민주주의로 재구성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이원재 처장은 주장했다.


이어진 지정 토론에서 전효관 전남대 교수는 최근의 문화현상을 거론하며 “이미 신자유주의 정서구조가 내면화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획일화가 지배적으로 관철된다고 하더라도 차이를 포섭해서 인정해내는 신자유주의의 유연성을 보지 못하면 운동과제 설정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류은숙 인권운동연구소 ‘창’ 연구 활동가는 “노동자라는 구체적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권과 마찬가지로 문화권에 대한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문화권이 인권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 개념이 확산되어 어떻게 공유될 것인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함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문화는 한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점에서 인권이자, 인격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며 “서비스의 개념이 아니라 공공재의 개념”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고 이규석 예술경영지원센터 소장은 “문화기본법의 입법화 과정과 문화정책이 재정립되는 과정에서의 문화권 운동”을 의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문화 다양성 협약의 주요 내용
유네스코와 별도로 문화권의 정의를 국민-국가 간 문화 다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세계문화연대기구(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가 2005년 5월 제시한 문화 다양성 협약 초안의 제1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문화 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보호와 증진
② 정체성과 가치관, 의미의 전달 매체로서의 문화 상품과 서비스의 독특한 본성을 인정
③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의 보호와 촉진을 위한 적절한 방안과 문화정책의 채택과 개발 촉진
④ 여러 문화가 자유롭게 발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제를 제공
⑤ 세계 각 국가들 사이에서 보다 광범위하고 균형 잡힌 문화교류를 보장하기 위해 각 문화와 문명 사이의 대화 장려
⑥ 문화적 표현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촉진시키고 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인식 증진
⑦ 특히 개발도상에 있는 사회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전지구적 공동협력으로 국제적 협력과 연대의 강화



<편집자 주.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발제문 ‘문화 다양성과 공공성에 기초한 운동의제 설정’에서 발췌.>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곤 |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