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6월 항쟁을 박물관에 보낼 셈인가

서로 다른 길로 가는 민주항쟁 20년 기념행사

오는 6월 10일은 ‘6월 민주항쟁 기념일’이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올해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4월 혁명과 광주민중항쟁에 이어 대표적인 민주항쟁도 국가의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사진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년 전의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일을 탓할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민주항쟁을 잊지 않고, 그 뜻을 되새기면서 계승하자는 일은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지난 5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 기념재단의 초청으로 5.18 묘역을 참배하고, 감사패를 받았다. 이를 앞두고 광주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5.18기념재단 앞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5.18부상자회 회원들과 충돌했다. 재단 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시절 5.18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고,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5.18 정신을 기념하는 일을 했던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특별법 제정이나 법정기념일 제정은 국민들이 투쟁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욕설과 폭행까지 자행되었던 당시의 사건은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법정기념일이 된 6월 민주항쟁


‘6월민주항쟁2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오는 6월 10일 오전 10시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이 기념식에는 대통령도 참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지금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말로는 참여정부라고 하고, 대통령 스스로 6월 민주항쟁의 주역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민주항쟁의 계승 발전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진위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일고 있다. 추진위에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은 현재의 운동과는 일정 정도 거리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6월 민주항쟁의 주역들도 이전의 4월 혁명이나 5.18 광주민중항쟁의 주역들처럼 친정부적인 인사로 탈바꿈했다. 물론 아직도 현장을 지키면서 운동에 헌신하는 인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눈을 씻고서야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추진위에서 개최하는 행사들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준비되고 있다. 각종 학술행사나 문화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이어 6월의 광장으로!’ 행사도 진행된다. 6월 9일 하루 종일 열릴 이 행사는 “시민축제가 열리는 전국 12개 중심도시”를 잇는 다양한 방식의 릴레이를 벌이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즉 전체적으로 ‘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한다기보다는 축제의 장으로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런 대규모의 행사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이런 추진위의 기념행사와는 달리 민간위원회가 한국진보연대(준)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에서는 별도의 민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이를 제안 중에 있다. 이들은 제안서에서 “화석화된 기념행사를 뛰어넘어 현재적 의미와 미래전망을 제시하는 실천적 행사”를 기획하면서 공동선언문 발표와 6월 10일 당일 낮 12시 서울시청에서 출발하여 명동성당까지 행진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추진위의 행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출한 사업이고, 예산규모도 형편없이 작다.


전자는 과거 민주화운동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정부주도의 행사이고, 후자는 현재의 진보운동세력들이 진행하는 순수 민간행사라는 차이를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진정으로 6월 민주항쟁을 오늘에 계승하는 게 어떤 것이냐 하는 점이다.



두 개의 민주항쟁 기념행사


이렇게 서로 다른 행사가 기획되는 데에는 현재의 정치지형에 대한 평가와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6월 민주항쟁의 주역들이 정권을 잡아서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관점과 6월 민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가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보는 관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진다.


이것은 과거 민주화운동세력들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 그에 따라서 정권에 참여한 민주화운동인사들이 보기에는 현재의 운동이 국민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립적인 투쟁이고, 이는 6월 민주항쟁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루어진 민주화의 성과로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것도 제도권 내에서 치러질 수 있다고 본다. 효율성의 면에서도 운동단체들이 주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할 것이고, 그런 장을 마련하면서 국민들이 20년 전의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작 현재의 민주화의 과제는 무엇인지, 6월 민주항쟁을 계승하여 민주화운동을 하자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접어둔다. 6월 민주항쟁에서 제기되었던 민주화의 과제가 일부만 성취되었고,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민주화가 퇴행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진보운동진영에서 대통령의 기념식 참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 그 완성을 위한 한미FTA의 무리한 추진, 미국의 군사전략에 편승한 주한미군재배치와 군비증강 사업 추진 등에서 과거 민주화의 성과조차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분명한 민주화의 후퇴 조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들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한 억압이 과거 군사독재시절의 탄압행태를 닮아가고 있다. 집시법에 의한 연행, 구속, 과도한 벌금의 부과에 이어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속도 증가하고 있다. 생존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적인 탄압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정권에 대해서 민주항쟁을 같이 기념하자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지금에서는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대정권 투쟁이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기본권의 후퇴와 해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20년 전의 민주항쟁처럼 기본권 쟁취 투쟁이란 성격도 갖게 된다. 항쟁을 계승하는 것이 그때의 구호 그대로를 외치고, 그때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문제, 특히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운동으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민주항쟁 20년을 기념하는 방식을 두고 민주화운동세력은 서로 만나기 어려운 길로 갈라져서 가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래군 | 편집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