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재갈 물리고 손발 묶는 벌금폭탄

경찰은 제멋대로 ‘불법’, 검찰은 ‘벌금’으로 압박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권리는 돈이 많든 적든, 권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권리지만, 돈 좀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점잖게 회견을 갖거나 평화적인(?) 궐기대회를 할 뿐 웬만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는 않는다. 굳이 거리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회에 영향을 미칠 방법은 매우 많고 이따금 핏대를 높이면 달려와 받아 적는 언론이 쌨기 때문이다. 결국 집회시위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기 쉬운데 문제는 이에 대한 규칙을 ‘돈 많고 빽 든든한’ 사람들이 만들고 관리한다는 데 있다.



국회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고 200만원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장애인 활동가들이 현상수배 전단지에서나 나올 법한 종이판을 목에 걸고 등장했다. 거기에는 장애인 운동이 그간 기념비적으로 일궈낸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설민주화 투쟁, 활동보조인 투쟁, 장애인교육법 투쟁 등의 결과로 받게 된 벌금액수와 이를 구류로 환산했을 경우 수감되어야 하는 날수가 적혀 있었다. 총 66명에게 매겨진 벌금이 1억 6천만 원. 다 합쳐봐야 강남 집 한 채 값의 몇 분지 일도 못되는 금액이지만 이를 내지 못해 구속된 활동가가 생기고 벌금으로 인해 운동이 탄압받는 현실은 한편으로는 잔인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픈 대한민국에서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처한 현주소이다.


비단 장애인운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4년 12월에는 인권단체 활동가 17명이 이라크 파병과 테러방지법 등 반인권적인 법률에 대해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국회에서 벌이다 연행돼 각각 100~20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2006년 12월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비정규법안 논의에 맞춰 비정규직 노동자 20여 명이 ‘기만적인 비정규 노동법 개악 즉각 중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 안에서 구호를 외쳤다고 1인당 40만 원, 총 8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정치를 하는 국회에서, 행정부처와 정보기관, 재계의 로비가 성행하는 국회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고 불법 운운하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지만 한 달 활동비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인권활동가에게 부과하는 것이나, 누구보다도 생계의 곤란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벌금을 남발하는 것은 쉽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서 총 3억원이 넘는 벌금이 부과되었고 이 액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은 대추리 빈집 철거 당시 인권활동가들이 세웠던 평화전망대. 사진 | 강곤


국회 밖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05년 7월에는 학습지노조, 화물연대, 덤프연대,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 20여 명이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 ‘특수고용직 노동자 노동3권 보장’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다섯 시간 동안 서울노동청을 기습 점거를 한 결과 집시법 위반으로 약 1,5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불과 다섯 시간의 시위였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무거운 액수였다.


지난 몇 년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진행했던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006년 5월 4일 평택 대추리 대추분교 철거 과정에서 200여 명이 각각 10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약식기소 당해 모두 3억 5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이 외에도 벌금이 예상되는 사건은 수두룩하다. 현재진행형인 한미FTA 반대투쟁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150명이 넘는 인원에게 무더기로 소환장이 발부되었으며 최근에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지도부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하는 등 탄압이 계속되고 있어 벌금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경찰 눈 밖에 나면 벌금?


대개 집시법 위반 등으로 약식기소가 되어 나온 벌금이나 1심에서 나온 벌금은 정식재판을 청구하거나 2심으로 가면 줄어드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정식재판도 2심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바쁜 활동 중에 짬을 내서 재판정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은 벌금만큼이나 활동에 지장을 가져다주며 그 심리적 압박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위의 예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적지 않은 금액의 벌금은 치명적이다. 상대적으로 재정기반이 취약하고 경제적 여력이 충분치 않은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투쟁기금이 그나마 넉넉한 대규모 노동조합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낫겠지만 대부분의 단체와 활동가들은 일단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 이후 집회시위를 기획할 때나 집회시위 현장에서 활동할 때 알게 모르게 그 약효(?)가 나타난다고 한다. 동료와 단체를 고려하는 가운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의 내부 검열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지난 2006년 전의경부모모임과 자유주의연대 등이 가진 ‘평화시위문화를 위한 시민모임’ 토론회에서는 “현재 집시법의 벌금형은 50~300만 원에 불과하므로 그 액수가 너무 낮아서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며 “벌금형의 상한액수를 현재 금액의 5~10배 증액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같은 해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에서 국무조정실은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까지 벌금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실제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고 관리하는 데 벌금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측불허로 떨어지는 벌금폭탄을 피하는 길이 집회시위, 더 나아가 정치적 의사표현을 아예 하지 않는 길 외에는 달리 없다는 점이다. 2006년 전남 광주에서는 아동성폭행 피해 학부모 모임 관계자들이 법원 앞에서 검찰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입건돼 벌금 100만 원에 기소됐다. 구호를 외치는 순간 기자회견이 불법집회로 돌변했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의 주장이다. 비슷한 사례로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2005년 과거사청산법 제정운동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집 앞에서 민간인학살 및 군의문사 유족 등과 함께 한 기자회견이 집시법 위반이라며 기소돼 1심에서 벌금 200만 원, 2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늘 있는 기자회견도, 매일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촛불문화제도 어느 하루를 경찰이 걸면 ‘불법집회’로 둔갑한다”고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말한다.


결국 현재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경찰과 검찰에게 재량권이란 이름으로 거의 무한대의 권한을 준 상태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의 대가로 벌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궁극적으로는 집시법 개정이나 폐지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집시법이 개악되는 것이나 평화적 집회시위를 빙자한 여론몰이를 방어하기에도 벅차 보이는 것이 인권운동의 현실이다. 그러면 앞으로 쌓여갈 벌금은 어찌 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선관위에 일일이 물어보겠다고 비아냥하듯 집회시위를 할 적마다 경찰에 불법이냐고, 검찰에 얼마짜리냐고 물어봐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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