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에버랜드, 그 끝나지 않은 고통

우크라이나에서 온 어느 무용수의 증언

경기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 에버랜드에서 무용수로 일하는 우크라이나인 옥사나(29.여)씨는 5㎏의 무대의상(나비옷)을 입고 카니발 퍼레이드에 출연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그는 에버랜드에 무용수를 파견하는 동일엔터테인먼트와 맺은 계약서의 “배우가 계약기간 중 다쳐도 에버랜드와 파견업체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으며 배우가 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할 경우 집에 가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산재신청 등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강제출국 위기에 몰렸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옥사나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E-6(연예비자)으로 들어와 한국에서 공연 노동자로 일하는 모든 이들의 고통이기에 더 심각하다. 아래 내용은 그가 삼성 에버랜드 공대위의 도움으로 언론 인터뷰를 준비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사진 | 참세상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외국인 무용수는 150여 명이에요. 돈을 벌려고 온 거였고 그래서 아파도 좀 참고 일단 계약기간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했어요. 일단 여기서 계약기간까지 참고 일을 다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아질 거라 생각했죠.
처음에 떨어져서 다쳤을 때, 다쳤지만 공연에서 관객들 앞에서는 웃어야 하고, 고통을 참고 무대에서 춤을 춰야 한다고. 그래서 저는 일단 참고 노력했어요. 근데 너무 심하게 고통이 있었을 때 물론 관객들 앞에서 웃으면서 춤을 추려고 했지만 너무 아파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춤 추면서 자꾸 움직이니까 거기서 오는 통증도 있었는데 한편으로 제가 춤출 때 소품들이 무거워서 오는 통증도 있었어요. 무게 때문뿐만 아니라 크기 때문에도 힘들었어요. 3-4kg 정도 되는 작은 소품들이었다면 몰라도 제가 착용했던 것은 너무 커서 바람이 불면 걷기도 힘들죠. 제 몸무게로 그런 큰 날개 소품을 지고 춤추는 게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거든요. 근데 관객들 앞에서 웃으면서 춤 추라고 하고….


“춤 출 수 없다면 집으로 가라”


지금까지 춤을 추면서 살아왔는데 앞으로 춤을 출 수 없을 거 같아 제일 걱정이에요. 저한테는 납득이 안 돼요. 사람이 아파서 좀 공연에서 빼달라고 부탁하는데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돼요. 게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어떻게 생활을 할지 걱정이에요. 가정에서 아이를 위해 어떻게 음식을 만들지. 전 냄비조차도 들 수 없는 상황이에요. 빨래도 못하는 상황이고, 목욕을 시킨 다음에 아이를 들을 수도 없단 말이죠. 혹시나 길에서 물건을 들어야 하는데 전 그것조차도 할 수 없는데….


날개 때문에 허리에 통증이 있다고 처음에 말했을 때 에버랜드 감독님이 말씀하신 게 “연습 중에 네가 떨어져서 다친 거 봤고, 날개 때문에 허리 아프다고 하는 거 믿는다. 원하면 의사한테 가서 진찰받아라. 아니면 집에서 쉬어라”였어요. 근데 제가 먼저 건의한 건 역할을 바꿔달라는 거였어요. 저는 춤을 추는 무용수이지 무거운 장식품을 힘들게 지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무용수는 춤을 춰야 한다고 말이죠. 근데 감독님은 대체할 무용수가 없다면서 통증이 가라앉으면 다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질문은 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며 만약에 일 할 수 없으면 집으로 떠나라고 말했어요.


주로 연습할 때 매니저들과 함께 동작연습을 했는데요, 동작을 익힌 사람들과 안 익힌 사람들과 상관없이 한 10번씩 같은 동작은 반복해서 1~2시간 정도요. 힘이 많이 들죠. 무용수들이 앉아서 쉬고 있으면 감독님이나 다른 매니저들이 안 된다고, 계속 연습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똑 같은 걸 계속 반복했죠. 에버랜드 직원들이 안무연습을 담당했어요. 그들은 연습할 때 소리도 질렀어요. 감기에 걸리거나 아프다고 말해도 아프지 않다고 연습하라고 했어요.


공연사이 휴식시간이 많이 없어요. 의상 갈아입기도 부족하죠. 옷 갈아입는 장소가 없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옷을 입어요. 밥 먹고 난 후 쉴 곳이 흡연구역에 있는 실외 벤치, 그리고 커피룸이라고 휴게실에서 쉴 수 있어요. 쉬면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쉬기 위해 누울 수도 있는데 허락하질 않아요. 잠은 잘 수도 없구요. 게다가 앉아서 눈도 못 감고 있어요. 안된다고 말해요. 한시간정도 쉬는 시간이 있는 경우 휴게실에 있는 러시아 TV방송이나 다른 거라도 보고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해요.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경고를 내려요. 아니면 벌금을 내라고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안 웃는다던가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경고 3번이 아니더라도 바로 벌금 내라고 해요. 아니면 집에 보내버린다고도 말해요. 100달러(10만원) 벌금을 내요. 3번 경고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100달러를 월급에서 빼요. 예를 들어 염색을 제대로 안했거나, 색깔이나 머리 모양이 다르든가 그럴 경우에 경고를 줘요. 또는 연습시간에 지각을 할 경우에도요. 화장도 원하는 대로 안하면 경고를 줘요. 눈 화장할 때 서양인 같은 경우는 눈모양이 달라서 다르게 눈 화장을 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고 뭐라고 해요. 금발머리로 강제로 염색을 하여 머리털이 많이 약해지고 빠지죠. 무거운 복장에 어깨끈으로 피가 나는데도 계속 춤을 추게 시키기도 했어요.


보통 날씨에 구애를 받지 받고 공연을 해요. 너무 더워도 공연을 하는데 사실 몇 도인지 잘 몰라요. 온도를 알 수 있는 온도계가 아무 데도 없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온도계가 걸려 있었대요. 한 여름에 너무 더워서 정확히 몇 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더워 이 폭염에 공연을 안 하겠다고 했대요. 이런 더위에 공연을 할 수 없다고. 근데 매니저가 젖은 손수건으로 아무도 모르게 온도계 눈금이 내려가게 감싸고 온도가 내려간 후에 온도 정상이라고 하면서 공연할 수 있다고, 결국 공연을 했었던 일이 있었대요. 비와도 공연해요. 비 때문에 관객들이 진짜 없을 경우에 공연을 중단하죠. 겨울에는 아무리 추워도 그리고 강하게 바람이 불어도 개의치 않고 공연을 하죠.
겨울에 간단한 퍼레이드가 하루에 2번 있었을 때였는데요, 강추위가 있었을 때였어요. 추워서 무대 의상 속에 티랑 목 폴라를 입으려고 했었어요. 근데 벗으라고 하는 거예요. 실내에서 직원은 목도리에 코트도 입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우리를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저희는 최대한 감기에 안 걸리려고 목 끝까지 가리려고 하거든요.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하잖아요. 그리고 계약서에도 그런 내용이 있어요. 건강에 유의하라고. 근데 우리 무대 의상으로는 목을 못 가려요.


제일 속상하고 힘든 것은 우리가 뭔가를 이야기 하려할 때 듣지 않는 거예요. 일에 대한 조건 개선, 음식 개선 등 이야기 하면 듣지 않으려고 해요. 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건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요. 앞으로 동료 무용수들이 저처럼 아플 때 급여도 못 받고 치료도 못 받는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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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구리구리짱

    에버랜드 회원입니다.
    퍼레이드가 너무 재미있고 반은 인상을 쓰고 반은 신나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웃으면 보는 저도 민망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마나 벌고 일하길래 안웃나...하고 검색했는데.
    이렇게 인권을 유린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일시키는줄 몰랐네요.
    인상쓸만도 하겠어요...저런취급받아가면서 어떻게 웃을수 있나요?
    더이상 인권을 유린하지 않는 정말 꿈과 희망이 가득한 에버랜드가 되길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