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시민의신문>을 둘러싼 몇 가지 궁금증

<시민의신문> 사태를 통해 본 시민사회운동과 매체

고백 : 미디어운동을 하는 자에게, 아니 시민사회운동에 몸을 담고 있는 자에게, 참으로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이 벌써 7개월 이상 지나가고 있다. 부채인지 책임인지, 분노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동안 물리적 신체는 자꾸 외면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누구는 ‘운동 사회 내 성폭력’, 누구는 ‘시민사회운동의 권력 지향성’, 누구는 ‘시민사회운동 내 매체전략의 부재’ 등을 이야기한다. 모두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여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부유할 때도 많았다. 이 끔찍하게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홀로 발설하기에 자신도 용기도 없었고, 회의적인 판단에 주저할 때도 많았다.



1993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시민주를 모아 창간한 이후 1997년 시민사회의 정론지로서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표방한 <시민의신문>. 매체의 특성에 따라 그 동안 <시민의신문>은 시민사회운동 내의 소식과 정책안, 그리고 시민사회운동 내의 주장 등을 주된 콘텐츠로 생산하며 ‘시민사회운동’ 내에서의 지분을 만들어왔다. 콘텐츠가 지향하는 방향 외에도 <시민의신문>은 각계의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의 대표적 인물들이 ‘이사’, ‘편집위원’ 등으로 참여하였다. 외면상으로 봤을 때 <시민의신문>은 시민사회단체의 공동신문으로써의 정체성을 추구하여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6년 이형모 전 대표이사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시민의신문>을 둘러싼 운동 사회내의 불편한 치부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시민의신문>은 지난 4월 말 ‘소리 소문’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난 4월 <인터넷시민의신문>의 서버가 폐쇄되었고, 사무실 또한 폐쇄되었다. 그리고 <시민의신문>에 남아 <시민의신문>으로 드러났던 온갖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노력했던 직원들은 4월 27일로 정리해고 되었다.



이형모와 그를 비호하는 이들의 사고구조에 대한 궁금함


<시민의신문>이 사라지게 된 가장 핵심적인 계기는 이형모 <시민의신문> 전 대표이사의 성추행 사건이다. 지난 해 9월 이형모가 상임운영위원장으로 있는 희망포럼의 여성간사가 “이형모씨 성희롱 고발 - 일주일 안에 시민의신문 및 관련 시민단체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인권위에 고발하겠다”는 내용증명을 <시민의신문> 간부들에게 발송하1)면서 이형모의 성추행 문제는 <시민의신문> 내부를 비롯하여 시민사회운동의 무거운 숙제로 던져졌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문제를 봉합하기 위한 수단들이 동원되었다. 이형모는 <시민의신문> 직원들 앞에서 사과문(에서 이형모는 “본인의 뜻과 달리 당사자인 여성 간사가 저와의 대화와 접촉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함”이라 밝혔다. 이미 사과문에서부터 이형모의 파렴치한 행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을 발표하고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이에 대한 1차 임시이사회2)에서 이형모 사장의 사퇴 처리건 은 연기되었고, 2차 임시이사회에서도 연기되었다. 결국 이형모 성추행 사건은 이사회의 지지부진한 사태 해결과 이형모 측근에서 그를 엄호하려 했던 시민사회운동 내의 권력의 카르텔의 작동으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되는 가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형모 개인은 성추행 문제에 대한 자성이 매우 부재하였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에 눈 먼 이들 역시 이형모를 성추행이라는 늪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 싶을 뿐, 주변으로 확장되었던 운동사회 내 혹은 거시적 구조 안에서의 성추행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시민의신문> 이사였던 정현백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기사에서 증명된다. “올해는 대선까지 있는 해인데, 이 사건이 자꾸 쟁점화 되면 그 부분(시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2007년 2월 14일)


그러나 이형모의 성추행 문제와 그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은 시민사회운동 내의 구조적 문제와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천박하고 저열한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이와 같은 사태 수습으로 인해 이형모는 오히려 뻔뻔해지고 불량스러워졌다. 이형모는 지난 해 12월 <시민의신문> 신임사장 선출과 관련한 주주총회에서 최다주주라는 명분으로 주주총회를 파행으로 이끌었고, <뷰스앤뉴스> 인터뷰에서 “부끄러운 일 한 적이 없다.”라며 오히려 당당해졌고, 지난 3월 희망포럼 총회장에서 이형모는 “성희롱할 의사가 없었는데 문제를 제기하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고, 한 달 뒤 당사자가 금품을 요구해 주고 끝난 일인데도 계속해서 ‘성추행 이형모’를 재방송 하고 있다”며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자리에서 이형모의 발언 이후 총회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는 기괴한 풍경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형모와 그와 함께 박수를 치는 ‘운동’하지 않는 시민사회운동 내의 추악한 모습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느껴진다.



<시민의신문>에 대한 운동사회 내 체감에 대한 궁금함


<시민의신문> 사태는 성폭력 문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시민의신문>을 사유화하려했던 이형모의 경영상의 문제와 이에 대해 무책임했던 <시민의신문> 이사회, 그리고 경영에 대한 직원들의 무관심. 결국 이와 같은 사유화 구조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즐거웠을지 모르나 문제가 터지고 나니 마치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되어 상황의 심각성은 매우 위태로웠다. 이는 곧 <시민의신문>이 가지고 있는 매체의 정체성까지 흔들기 시작하였다.


지난 6월 21일 ‘시민의신문 사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오매 활동가는 “<시민의신문> 사태에서 드러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시민의신문> 전 사장에 의한 성폭력 문제는 <시민의신문>에 상존하고 있었던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냈고, 점차 사건의 내용과 성격을 ‘이형모 성폭력 사건’에서 ‘시민의신문 사태문제’로 바꾸어 갔다”며 “성폭력 문제는 맥락적이라는 인식을 견지하면서도 성폭력 문제가 도구화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자리에서 ‘시민의신문 사건’에 함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토론자로 나선 ‘운동사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활동가 모임’의 보경 활동가 역시 “성폭력이라는 것이 도구화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성폭력 문제가 도구화되거나 선정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은 위험하다. 허나 개별의 문제로 접근하기에는 복잡하게 엉켜 버린 실타래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이형모의 성추행 문제는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대표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은폐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물론 소수의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하였고, 몇몇 단체는 관련 성명 혹은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논의가 진척되고, 공론화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논의는 더욱 음침한 곳으로 향해갔다. <시민의신문> 이사들의 행태와 소위 시민운동계의 1세대라 대표되는 인물들의 반운동적 처사와 행동은 <시민의신문>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를 초래했다. <시민의신문> 사태에서 드러났던 시민운동 내의 대표들을 향해 문화연대 김완 활동가는 “1세대 시민운동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 자리에 이름을 올리며 운동사회 상층의 막강하고 참담한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존재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라고 평하였다. 운동사회 내에는 권위적이며 권력적인 구조적 한계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부 투쟁은 쉽사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더군다나 <시민의신문>의 이사라는 직함을 새기고 있던 이들이 속해있던 ‘소위’ 말해 ‘메이저단체’라 불리는 단위들이 <시민의신문>에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풀고, 혹은 어떻게 공론화시켰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단체들에서 그 흔한 ‘성명’조차 내지 못했으니, 암울한 상황이라는 인식은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대표적 네트워크로 막강 파워를 과시하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도 <시민의신문>을 둘러싼 성찰과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이렇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가운데 <시민의신문>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시민사회의 정론지에 대한 궁금함


지난 4월 20일 ‘<시민의신문> 사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시민의신문> 사태 관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 <시민의신문> 기자는 “<시민의신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라고 고백했다. 사실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사회의 정론지’는 <시민의신문>의 수사에 불과했다. <시민의신문>을 시민단체의 공동신문이라 인식하는 활동가는 손에 꼽힐 지도 모른다. 시민매체, 대안매체의 하나로 <시민의신문>을 생각하고, 때로는 <시민의신문>의 편집방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단체 및 활동가도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민의신문> 사태 이전 <시민의신문>이 시민운동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성찰보다는 시민운동을 아름답게 대표하는 정론지로서 대단히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존재해왔던 것이 사실이다.4) 상황이 이러하기에 <시민의신문>을 바라보는 운동 사회 내 관심은 애초부터 부재했을 지도 모른다. 보도자료를 보내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 정도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냉혹한 판단도 가능하다. <시민의신문>이 내세웠던 가치들은 정작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였고, 이는 결국 <시민의신문> 사태가 터졌을 때 공허해지고 말았다. 이는 <시민의신문> 운영상에 있어서 과오였으며, 시민사회단체에서 지향하는 매체에 대한 인식의 부재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말, ‘시민사회의 공론장’, ‘시민사회운동의 대변지’, ‘특화된 문화 전문지’ 등의 방향을 제시한 <시민사회신문>이 창간하되었다. <시민의신문> 전 편집국장이 주축이 되어 탄생한 <시민사회신문> 역시도 사회적 명망가들이 편집장과 고문 등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시민사회신문>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들과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차치하고, <시민사회신문>은 ‘시민사회의 공론장’, ‘시민사회운동의 대변지’라는 지향을 밝히는 것과 달리 창간 준비과정에서 생산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의 토론이 부족하였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간의 열띤 토론과 논쟁,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시민매체의 역할과 책임, 운영에 대한 구체적 논의 과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저명한 인사 중심의 일부 시민사회단체 대표 혹은 사무총처장단들이 전체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창간된 것5)이 <시민사회신문>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민사회운동의 대변지’를 표방하며 시민사회운동과 함께 소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실패를 <시민의신문>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이는 곧 시민사회단체에는 시민사회의 대변지라 일컬을 수 있는 매체에 대한 판단과 그 매체와의 관계 안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이 무엇이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시민의신문>과 같은 시민사회의 대변지라 표방하는 매체의 경우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성을 단지 조직구성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운영과 콘텐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신문> 사태가 잊히는 듯 하는 지금 이 시점, <시민의신문>을 둘러쌓던 문제를 다시 들추는 것은 후퇴해가는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냉혹한 반성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최근 이형모는 <시민의신문> 재창간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항간에 떠돌고 있고 여전히도 시민운동가로 무수한 직함을 자랑하며 활보하고 있다. 지난 이형모 성추행 사건을 수습하려 했던 인사들은 2007년 대선을 향해 정치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현실이 여전히도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백 : <시민의신문>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필자가 활동하는 단체의 대표와 전 사무총장이 <시민의신문>과 <시민사회신문>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글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덧붙이는 말

1) “<시민의신문> 사태 주요 경과 일지” 가운데 일부(“<시민의신문> 사태를 통해 본 시민사회운동의 책임” 토론회 2007. 6. 21. 자료집 수록) 2) 당시 <시민의신문> 이사는 송보경, 박원순, 이명순, 정현백, 최열, 이학영, 박철원, 손승호, 이강현, 백찬홍, 김정헌 등이 참여하고 있었음. 3) 위의 토론회 중 ‘<시민의신문> 사태는 부적절한 시민사회 카르텔의 미래다’라는 발제문 가운데 4) 김완, 앞의 글 5) 문화연대, “[입장] 지금, <시민사회신문> 창간이 부적절한 이유(2007년 5월 18일)”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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