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여성흡연자에게 복 있을지언저

『흡연여성 잔혹사』

6월항쟁 20주년을 즈음해 각 언론사들마다 작심한 듯 그때 그 시절을 들춰냈다. 당시 거리를 가득 메운 가공할 양의 최루가스와 후미진 골목이나 건물 화장실에서 내 허파를 한 바퀴 휘돌아 나왔을 담배연기. 이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마는, 하여튼 87년은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해이니 어느덧 20년이다.


이상하게도 어떻게 담배를 입에 물게 되었는지, 언제 입담배가 속담배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자율학습을 마치고 인적 드문 놀이터에서 끽연을 즐기다 아파트 경비에게 걸려 달밤에 ‘엎드려 뻗쳐’와 ‘쪼그려 뛰기’를 했던 일이나, 의기양양하게 대로변에서 담배를 물고 건널목을 건너다 틀림없이 부부싸움 끝에 집나왔을 형사를 만나 온갖 공갈협박을 당하고 마음 졸였던 그 수난들만큼은 생생하다.


이러한 나의 수난사는 명함도 내밀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 수난이 아니라 잔혹이란 단어를 써야만 제대로인 이 땅 담배 피우는 여성의 숙명을 그린 책이 『흡연여성 잔혹사』(서명숙 지음. 웅진)이다.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술잔과 따귀가 날아들고 욕설이 난무하는 에피소드들은 그나마 서정적이다. 목숨 걸고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우다 마침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여고생에서부터 흡연을 이유로 이혼을 당해야 했던 한 어머니. 담배 피며 차를 몰던 중년여성이 음주단속 경찰을 보고 놀라 서둘러 담배를 끄고 창문을 내리며 무심결에 “저 담배 안 피웠는데요” 하고 말았다는 대목에까지 이르면 그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뿌리 깊고 치밀한가를 1/10쯤 겨우 짐작할 수 있으려나.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결혼하면 시부모의 눈치 보랴, 임신 전, 중, 후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아이에 시달리랴, 감히 남성인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고행은 끝날 줄 모른다.


오늘 이 순간 또 여러 사람 담배 물게 하는 <시사저널>의 편집국장이었던 지은이 서명숙은 책 말미에서 결국 달리기, 여행 등에 대한 중독으로 담배에 대한 중독을 물리쳤다며 금연을 권하고 있지만 아직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여성동지들은 어찌할 것인가. 부디 이 땅 담배 피우는 여성들에게 복 있을지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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