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농경사회 법으로 21세기를 처벌하나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 당장 폐지해야

최근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을 적용한 구속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기밀 조항은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적용기관의 확대해석, 자의적 적용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비롯한 기본권 제한,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정보의 생산, 유통 과정이 달라진 현실에서도 남용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사진작가 이시우의 작품활동은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기소된 상태이다. 사진출처 | 이시우 포토갤러리


국가기밀은 무엇인가


국가기밀 조항은 법 제정당시에는 없었다가 법 개정과정에서 신설되어 7차 개정(1991.5.31) 당시 현재 내용(제4조, 목적수행 죄)으로 기술되었다. 7차 개정 전에는 국가기밀로만 규정되었던 것을 ‘군사상 기밀’과 ‘국가기밀’로 나누고 제4조 1항에서 “반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에는 다음과 같은 구별에 따라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 가중처벌 되는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으로 분류했다.


국가기밀 조항을 살펴보면 ‘반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의 처벌기준(제 1항 1호,2호)과 내용별 형량(제1항 3~6호)과 미수 행위 등에 대한 처벌규정을 명시하고 있다.1) 여기서 2항 ‘가’목에 나와 있는 ‘국가안전의 중대한 불이익’, ‘한정된 사람’ 등의 표현은 매우 모호하고 이로 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데 그 뒤에 ‘나’목에서는 다시 ‘가목외의 군사상 기밀’이라고 한정하고 있어 그야말로 기밀을 제외한 모든 기밀을 의미하게 된다. 이처럼 막연하고 불확정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법적용 기관의 자의를 허용할 위험성이 놓고, 국가기밀의 개념을 무한정 확대하고 해석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반면 1997년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에 대해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한 점과 “법 적용당국의 자의적인 법 해석.적용으로 인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점을 지적하며 ‘한정합헌’2)결정을 내렸다. 그 내용을 보면 “법 4조 1항 나목의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만큼의 실질적 가치를 지닌 사실, 물건 또는 지식이라고 한정해야 한다”면서 “국가보안법 4조 1항은 기밀의 범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어 그 범위를 한정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헌재의 이 결정은 국가기밀의 기준을 ①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비공지성), ②국가의 안전에 대한 불이익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것이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알려지지 아니하도록 할 필요성(요비닉성), ③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만큼의 실질적 가치를 지닌 것(실질비성) 등으로 제시했다. 이후 법원은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을 수용하여 국가기밀을 한정적으로 해석, 무죄판결하기도 했으나 ‘이적성’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국가기밀을 폭넓게 해석, 유죄판결하기도 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민가협 목요집회. 사진 | 강곤


최근 사례로 살펴본 국가기밀 적용 실태



1) 화교간첩 사건 - 서울고법 형사 3부(부장판사 심상철)는 이른바 ‘화교간첩’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된 정수평(68) 씨에 대한 국가기밀 혐의에 대해 무죄판단을 내렸다. 검찰은 화교인 정씨가 중국에서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되어 그의 지령에 따라 각종 서적과 자료들을 수집, 전달했다 하여 간첩죄로 기소해 1심에서 유죄판결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국가기밀 수집탐지전달 혐의내용으로 『정보화백서』, 『한국인 인명사전』, 『전자전공학회지』 등의 책자가 일반인도 쉽게 구할 수 있어 공지의 사실로서 국가기밀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무죄 판결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비공지성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검찰이 국가기밀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적용한 사실을 환기시킨 결정으로 볼 수 있다.3)


2) 강순정 선생 사건 - 강순정 선생(76세)은 캐나다 교포인 강병연 씨와 전화통화, 우편물을 교환한 사실에 대해 국가기밀 탐지 수집 누설, 회합통신, 이적표현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이 국가기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통일로가는길」(25호.26호, 범민련 발행), 「보안관찰대상자 인권침해실태」(국가인권위원회 2003년 연구용역 논문)등과 ‘한미양국은 대북전쟁 겨냥한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과 독수리(FOAL) 훈련을 즉각 중단하라’라는 문서를 비롯해 2003년 국방부 예산 삭감촉구 유인물 등 40종이다.
위 책자들과 문건, 사진 등은 활동단체가 그 활동내용을 대중에게 알려내기 위해 인터넷, 인쇄물 등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공개한 사실들이었다. 특히 검찰이 강력하게 주장한 ‘국방예산’은 행정투명성을 표방하며 정부(국방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해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와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검찰은 국가기밀로 적용하고 있는 내용 자체 보다는 문건을 작성했던 단체의 회원과 회칙 등을 문제 삼아 ‘(그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들 존재’ 그 자체가 국가기밀이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내심을 추정, ‘자신과 다른 생각(사상)’을 처벌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비공지성이 결여된 점과 실질비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국가기밀 혐의 일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3) 일심회 사건 - 지난 4월 16일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 5부(김동오 부장판사)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 구속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했다. 주요내용은 일심회라는 단체가 이적성은 인정되지만 단체성, 지속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적단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국가기밀 혐의 중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결하고 회합통신, 찬양고무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 했다. 국가기밀과 관련해 “대북사업보고와 사업계획을 국가기밀로 인정할 수 없고, 그 외 대북보고에 나오는 주요내용은 증거가 부족하고 취득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일부 무죄를 선고했으나 몇몇 자료들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했다. 그러나 구속자들은 검찰이 국가기밀로 주장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당 내 게시판이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정리했음을 들어 공지의 사실(비공지성), 또한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건이거나 개인의 활동계획이나 정세에 대한 판단이어서 국가기밀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점(실질비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만큼 매우 중대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기밀로 유죄 판단하는 한계를 드러내보였다.


4) 평화운동가 이시우 씨 사건 - 이시우 씨는 직접 취재활동을 통해 유엔사 관련 자료들, 미군기지 내 열화우라늄탄 등 대량살상무기 저장사실 등 국민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내용들을 취재 발굴해 왔다. 또한 이를 2002년 당시부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해 왔다. 그러나 검찰은 북한 신문사설에 이시우 씨의 글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 일본 미군기지 취재활동 과정이나 인터넷 기고문에 대한 의견교환 과정에서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을 적용, 간첩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정보교류가 무한대로 개방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언론을 통해 공지된 사실은 이미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손쉽게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시우 씨의 경우에 문제가 된 사진과 자료들은 이미 2001년부터 ‘공지의 사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내용 상 비밀로 보호하고 감추기 보다는 국민들의 생명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공론화되어야할 자료들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반국가단체 지원할 목적’을 주장하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있다.



무의미한 국가기밀 조항 폐기해야


만약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인식을 뒤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연구활동이나 새로운 주장을 불온시하고 처벌한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과거의 틀에서만 유지되어야 할 운명이다. 정부가 정책관련 주요한 판단근거가 될 수 있는 정보나 자료들에 대해 ‘기밀’로 규정하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국민의 알권리는 제한되고 국민주권의 원칙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 온다.4)
최근의 사례들로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 적용실태를 살펴보면 경찰, 검찰 등 적용기관은 국가기밀 조항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법원 판결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는 하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위축, 제한되고 있으며 이시우 씨 사례에서 두드러지듯 언론출판, 창작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법 적용기관이 내심을 추정, ‘이적성’을 덧씌우며 ‘간첩’ 사건을 남발하고 있는 현실은 국가기밀 조항이 시급히 폐지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인터넷 등 첨단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 생산과 유통 시스템이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을 대입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은 더 이상 무의미하며 당장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1) <4조 1항 1호 ; 형법 제92조 내지 제97조.제99조.제250조제2항.제338조 또는 제340조제3항에 규정 된 행위를 한 때에는 그 각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 따라서 형법상의 간첩죄 등에 대해서는 형법 해당조항으로 처벌함을 명시하고 있어 형법 외 국가보안법 상 국가기밀 조항이 무의미한 규정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2) 헌법재판소(주심 황도연 재판관)197.1.16 선고 92헌바6.26, 93헌바34.35.36(병합)결정 3) 특히 이번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간첩사건에서 뚜렷한 판단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아온 “영사증명서”에 대해 증거능력을 기각한 점이다. 이 영사증명서는 경찰, 검찰이 거의 모든 국가보안법 간첩사건에서 빠짐없이 제출하는 자료로서 작성자 및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생략된 채 주요한 유죄증거로 작용해왔다. 4)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4월초 한미FTA협정문 공개요구에 대해 외교통상부가 협정문을 3급 기밀로 지정, 공개를 거부한 일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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