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새로운 인권 문화를 꿈꾼다

스웨덴에서의 사회보장과 사회권

스톡홀름 중심가와 서울의 명동, 강남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그곳에 존재하는 인구의 다양성이다. 인종은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연령, 다양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있는 스톡홀름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의 분할과 독점에 익숙한, 서울에서 온 나의 눈에는 낯설기 짝이 없다.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는 노인, 유모차를 끄는 남성, 혹은 여성들이 마치 서울역 앞 횡단보도와 같은 스톡홀름 중앙 옆 앞 대로를 서두르지 않고 건너간다.


낯설음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질문을 시작해본다. 도대체 한국의 노인들, 어린아이들, 다인종가족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거리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장애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장애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특정 공간으로부터 유언무언의 배제를 만들어내는가? 무엇이 이런 투명한 유리 담장을 만들어내는가?


사회보장제도는 자유를 가능케 하는 수단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를 향유할 능력을 동등하게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정보든 이동수단이든 금전이든 삶의 질 향유를 위한 수단을 제공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사회집단이 공간을 고루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신체적 특징을 비롯한 외관-이는 연령, 인종, 심지어 계층까지 표현한다.-등으로 표준이 설정되며, 그 외의 것은 배척되거나 무시되거나 혹은 동정의 대상이 되는 메커니즘이 비교적 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톡홀름과 서울의 모습은 그 사회의 자유, 사회적 기본권, 억압에 관해 많은 말들을 전해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모두가 ‘자유롭게’ 활보한다고 여겨지는 (혹은 착각되는) 공간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스웨덴의 사회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보장제도는 자유를 가능케 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또한 제도는 인식을 반영하는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인식을 형성하며 바꿔내는 원인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제도를 통한 삶의 양식 변화는 인식의 물질적 기반을 바꿔내고, 마침내 인식 자체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20세기 내내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러한 신념에 기반을 둔 사회개량 의지,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사고였다.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와 교육제도는 이러한 의지의 반영에 다름 아니며 실제로 이런 제도들은 수십 년 동안 작동하면서 인식 변화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즉, 애초부터 인권과 평등에 대해 스웨덴 사람들이 대체로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보편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이상을 갖고 있는 진보적 사회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고 이들이 이러한 이상을 반영하는 제도를 안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하에서 사람들의 삶과 사고의 패턴을 어느 정도 수정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웨덴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적인 특징은 흔히 다음 두 가지로 일컬어진다. 보편주의(universalism)와 높은 탈상품적 성격(decommidification). 이는 사회보장제도의 적극적인 사회권 보장 기능과 이를 통한 인식 변화 기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탈상품성은 한 개인이 노동력을 상품화시키는 문제와 독립적으로, 즉 시장과 무관하게 얼마나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가에 관한 것으로서, 시장에서의 유능함과 비교적 상관없는 일정 수준의 기본적인 소득보장, 기본적 필요(needs) 충족을 위해 접근 가능한 다양한 사회서비스의 존재를 상정하는 개념이다. 스웨덴 사회보장제도는 다른 나라보다 꽤 높은 탈상품성을 나타내고 있다(Esping-Andersen, 1990). 즉 자신의 노동력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높은 임금을 대가로 상품화시켰는가와 일정 수준의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웨덴 사회보장제도가 보편주의적이라는 것은 사회보장 급여나 사회서비스가 소득 수준(즉, 지불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지 않고 필요(needs)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형태로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 사회보장제도의 보편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공공주택을 들 수 있다. 흔히 공공주택 서비스는 빈곤층만을 위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스웨덴의 공공주택은 실제로 중간층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이는 주택을 소유가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주택 이용자에 대한 낙인을 막고 계층별 지역 및 공간의 분리를 막을 수 있다. 즉, 보편적인 주거권 보장을 통해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방지하고자 하고 있다.



최소한이 아니라 적절한 삶의 질을 보장


또 하나의 사례로 노인요양 서비스를 들 수 있다. 스웨덴의 노인요양시설은 소득수준에 따른 차등이용료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계층의 노인이 동일한 질의 시설에서 동일한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요양시설 종류가 달라지는 것은 계층, 혹은 지불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의 정도 차이와 지역에 의해서이다. 이는 한국의 노인요양서비스와 현격히 다른 부분이다. 즉, 빈곤층에 대한 선별적인, 최소한의 보장이 아니라 적어도 중간층 이상을 포괄할 수 있는 적절한 질의 보장을 추구하는 것이 스웨덴 사회보장제도이다. 노인요양서비스에서 이러한 보편주의적인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소득에 따른 차등이용요금제, 즉 빈곤층은 적은 요금을, 부유층은 많은 요금을 지불하게 하는 제도와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기초연금제도이다. 차등이용요금제는 노인의 요양서비스를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의 부나 성과와 무관한 기본적인 권리로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강력한 탈상품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기초연금제도는 65세 이상 스웨덴 노인에게는 시민권에 의거해 동일한 액수의 연금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로서 현재는 최저보장연금으로 바뀌었지만 스웨덴 노인 전체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최소수준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대체로 노인요양시설의 빈곤층의 이용료는 이러한 최저수준 연금액을 넘지 않도록 되어 있어, 적어도 이용료 문제로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는 발생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소득보장이라는 기반 위에서 노인요양 문제에서는 노인들의 자기결정권이 이슈가 되고 있다. 많은 시설에서 노인들은 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설운영 및 서비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어느 요양시설에 들어갈 것인가를 둘러싸고 지역의 복지담당자의 시설배정에 반발하여 노인들이 원하는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행정재판도 벌어졌다. 재가복지가 아니라 요양시설에 머무르는 정도라면 통상적으로는 해당 시설의 노인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하며 무능한 존재로서 바라보기 쉽지만 요양시설 운영과 구체적인 서비스 제공에서도 노인을 능동적이며 지혜로운 존재로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노인요양시설은 소규모 아파트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도록 하고 있으며, 당연히 외출 또한 자유롭다. 물론 외출 시에는 전자밴드와 같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의 인식과 행동변화에 개입하는 제도


한편 행동과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의도 하에 만들어진 사회보장제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스웨덴의 출산휴가 및 수당 제도를 들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출산이나 입양 시에 자녀 1인당 총 480일의 유급휴직이 주어진다. 약 16개월의 휴가는 사실상 휴가라기보다는 자녀양육을 위한 돌봄노동을 위해 유급노동을 잠시 중단하는 기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출산휴가가 충분히 긴 것은 하락하던 스웨덴의 출산율을 다시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480일의 휴가기간 중 양 부모는 동등하게 최소 60일씩 사용하고, 나머지 360일은 어느 한 쪽 부모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돌봄노동은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것이 통념으로서 흔히 출산휴가는 여성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웨덴의 출산휴가는 이러한 통념에 역행하여 남성도 최소한 60일의 출산휴가를 사용하여 아이를 돌보도록 하고 있다. 어느 한 쪽 부모가 이 휴가를 쓰지 않는 경우 총 출산휴가는 420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사회보장제도로 유인(incentive)과 역유인(disincentive)을 조정함으로써 개인의 행동패턴과 인식을 더욱 성평등적인 방향으로 바꿔나가도록 한다. 제도를 통해 사적 영역인 가정 내 돌봄노동의 남녀 배분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출산휴가 수당은 출산 이전 240일(8개월)간의 소득을 기준으로 책정되며 총 휴가기간 480일 중 휴가 초기 390일은 임금의 80%를, 나머지는 정액급여를 지급받는다. 출산휴가의 양성 의무쿼터제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 정책에 반영된 것으로서, 이러한 일련의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시간사용조사 결과 스웨덴은 돌봄노동 및 가사노동시간 배분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양성평등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소수자(minority)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체하는데 교육은 매우 적극적이다. 장애인 교육에서 통합교육은 장애인의 발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비장애인의 편견을 해소하는데도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애인 통합교육의 가장 모범적 사례도 바로 스웨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신체장애인에 비해 정신장애인의 경우 통합교육에 난점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스웨덴에서 정신장애인의 90% 이상은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스웨덴에서 사회보장제도는 흔히 사회적 약자로 규정될 수 있는 사회집단을 적극적인 주체로 정립하도록 설계되어 작동되고 있다. 보편적인 소득보장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확보할 기본적인 가능성을 부여하지만, 사회보장제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편주의적 대상포괄과 탈상품적 기제를 통해 사회적 배제와 분할을 맞서고 있다. 자본주의적 상품사회가 끊임없는 분할과 계층화를 통해 경쟁과 통제를 도모한다면 사회보장제도는 이에 맞서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비생산적인’ 사회집단들을 통합시키고 있으며, 이들을 자신의 삶과 사회를 운용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세우고 있다. 이것이 스웨덴 사회보장제도에서 추구하는 사회권 보장의 핵심으로 보인다.


스톡홀름과 서울을 비교한다면 스웨덴 사회에 평등과 인권에 대한 다른 종류의 감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금세 느낄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남성을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의원들과 장관이 평상복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곳에서는 통합과 연대의 사회권이 이제 어떤 이념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문화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지금 문제는 사회권의 지금까지의 성취와 새로운 진전을 막는 세력과의 사회보장제도의 역사적 흐름을 둘러싼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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