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사회보장은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

다문화사회에서의 사회보장권

외국인 100만 시대 그리고 2005년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약 1/8을 차지한다는 통계, 농촌 결혼가정의 40%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이뤄진다는 정부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접하며 한국사회는 다인종 다문화물결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00만에 달하는 외국인 이주자의 대다수인 이주노동자들은 사회 주변부에 존재하게 만드는 단기 노동정책으로 일시적인 노동자로 존재하거나 법의 테두리에서 그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미등록 노동자로써 존재하기에 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져 왔는지는 의심이 간다.
사진 | 참세상


이들은 다양한 민족출신과 국적을 가졌으며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그 전달자로서 역할만을 했기에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어려웠고 그만큼 한국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또는 그 사회에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기에 힘에 부치는 법적 현실에도 1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 이주노동의 역사는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거리에 보이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생소한 높낮이의 언어들, 화려한 문자들로 채워진 상품과 식당들이 한국사회에 낯설음과 신선함을 주었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 대해 ‘틀림’이 아닌 ‘차이’로 인식하는 발전을 가져옴에 따라 그들의 존재가 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2000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은 한국인과 가족이라는 구조 속에 결합하게 됨으로서 더욱 가깝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지게 하면서, 그 안에서 부여되는 그들의 권리에 대한 논의를 공적인 장으로 끌어냈다.



급한 김에 가져온 ‘다문화’라는 말


국가가 세워지고 현대법이 틀을 갖추면서 인간이 가지는 권리와 사회구성원이 가지는 권리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정의되는 존재의 형식과 그 존재들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논의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 볼 수 있는데 한국사회도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외국인배우자들의 한국국민 만들기를 기저로 한 정책과 적응프로그램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사회와 국가는 동화정책을 근간으로 이민정책을 펼친 국가들의 실패사례를 보면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급히 차용하게 되었다. 용어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도 전에 다문화, 다문화사회, 다문화가족 등의 용어가 남용되고 있으며 그만큼 한국사회의 법과 제도, 인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함에 대한 이해가 다양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과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 남성들은 국적을 선택하기 전까지 국민으로 규정되지 않음으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조항에서 일차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인간다운 생활의 포괄적인 정의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거주의 권리,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사회보장과 복지의 권리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인배우자들의 체류는 한국인배우자의 신원보증이라는 형식을 통해 한국에 머물게 됨에 따라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배우자의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신분 상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2중, 3중의 차단막이 존재하는 한국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법은 안정적인 체류를 위해서는 한국국민이 되는 길을 강조한다. 그나마 영주권을 위한 신청자격이 2년 체류기간으로 단축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격취득을 위한 합법적인 체류기간과 신원보증이 가지는 힘은 외국인배우자들의 체류의 불안정함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고용허가제로 체류자격을 취득한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체인 사업주에 의해 체류가 좌우되고, 사업장변경이 자유롭지 않아 거주의 권리가 수동적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관계마저 형성되지 않은 기존 미등록 노동자는 그 사회의 체류기간, 사회, 경제발전의 공헌도에도 불구하고 거주 권리를 보장받기가 어렵다.


또한 이들 사이에 자녀가 한국에서 출생하고 자라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이 자녀들의 거주 권리는 극히 제한적으로 한국인의 혈통과 국적소유자를 제외한 이들에게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문이 넓게 열려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가진 외국인들 특히 국제결혼을 통한 외국인배우자들은 노동할 권리를 비롯하여 직업훈련의 기회, 실업급여 등 법적 테두리 내에서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단일 언어와 문화의 이데올로기 속에 이뤄진 체제는 타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높은 벽이 될 수밖에 없다. 의도된 바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요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채 한국인 중심의 교육과정 및 제도는 외국인들에게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주노동의 역사가 있어왔으나 평가절하 되어왔던 그들의 지위는 직업훈련의 기회나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시키는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주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제약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이주자들의 이주 동기는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57.7%의 국제결혼가정이 저소득층으로 조사되었다. 당연히 이주한 국가에서 경제활동의 욕구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은 그들의 강점을 살린 노동기회를 박탈하고 더 나은 조건으로 변화를 꿈꾸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이주자들이 한국사회와 경제에 가져올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단순 노동력으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과 국적이라는 함정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성원들은 세대를 이어간다. 이주자들이 한국사회에 편입되면서 그 자녀들도 새로운 구성원들이 되고 있다. 이주자들 사이의 자녀, 이주자와 한국인 사이의 자녀, 한국인 사이의 자녀들이 있다. 부모의 국적에 따라 자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또 우리는 국민과 국적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다른 문화적 배경과 국적을 가진 부모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회에서 성장하며 한국적 가치를 학습하게 되면 한국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다가오는 다문화사회를 창조하고 구성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이주노동자 또는 미등록 노동자인 자녀들은 한국국적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에 국적을 가진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공교육의 기회가 권리로 부여되지도 않는다. 다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을 뿐이다. 설령 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하더라도 다시 한번 이들을 소외시키는 배타적인 교육내용에 노출되게 된다.


이것은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국어를 익히는데 어려움 겪는 것은 기본이고 제2외국어로 영어 또는 선진국의 언어만이 배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 외의 언어를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현실은 부모의 언어에 대해 가치를 두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살색’이라는 지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과내용에서 단일민족을 삭제하라는 논의가 있었다. 무심코 흘리며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단어, 문구 또는 교육환경들이 하나의 차이를 드러내고 그사이에 우위를 점하는 차별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눈에 띄는 몇몇 단어들을 변경했다고 다문화주의 교육이 이뤄지고 과정이 편성되는 것은 아니다.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석이 더 깊이 그리고 새롭게 이뤄져서 교육에 흡수되어야 하고 그 내용의 전달자들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배제와 소외가 재학습되지 않는 환경이 될 것이다. 반면 자유경쟁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이러한 환경들이 공평하게 주어지진 않으며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회구성원들에게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고 이것이 사회보장과 복지이다.



이제 ‘국민’을 넘어선 사회복지에 눈을 돌려야


사회보장은 위에서 언급했던 거주의 권리, 노동할 권리, 교육의 권리를 비롯하여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하고 말할 수 있다. 사회권을 포함한 사회보장을 이야기할 때 항상 그 전제가 국민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겠으나 국민을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으로만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국민은 당연하게도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을 의미했으며 예외적으로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도적인 차원이나 국제협약 일부분의 이행정도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변화가 생겨났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국제결혼 배우자들이 국적을 가지기 전까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은 국민의 개념을 확장시켜 한국국적의 자녀를 양육하는 외국국적의 여성결혼이민자도 포함시켜 2007년부터 그 대상자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한국국적의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하더라도 국민을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에서 보다 확장시켜 외국인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라고 보고 싶다.


우리가 사회보장과 복지를 논의할 때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을 서로가 나눠가지는 것이기에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어느덧 다문화사회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고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인 노동자로서 지위를 획득하고, 국제결혼 가정이 늘어나면서 다문화가정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우리가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착각을 가지게 하였다. 그렇다면 착각이 아닌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자처하기 위해서는 다문화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모두가 나누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다른 문화를 가져오고 기존 전통가치들과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이주자들이 다문화사회의 구성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개념을 보다 확대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국민의 사회보장과 복지를 증진시킬 의무가 있는 국가는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이주자들에 대한 사회복장과 복지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증진에 노력해야 우리사회가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