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별기회]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특별기고 |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원들에게

지난 6월 말 뉴코아, 이랜드, 홈에버 등에서 비정규직이 대량해고 되면서 뉴코아-이랜드 노조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노사 간 협상이 수차례 있었으나 결렬되었고 마침내 7월 20일 경찰은 홈에버 월드컵점 및 뉴코아 강남점 점거노조원 강제해산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에 월간 <사람>은 뉴코아 강남점 농성장에 대한 인권단체 현장조사단으로 참여한 유해정 활동가의 기고를 싣는다.

사진 | 참세상



미안합니다.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공권력 투입 소식에 달려간 매장에서 새벽을 맞이한 뒤 해 뜬 뒤 칠 일은 없을 거라며 되돌아와서. 미안합니다. 불과 3시간 뒤 21일간의 농성이, 14일 간의 점거가 경찰의 진입으로 막을 내리던 시각, 옆에서 함께 팔짱끼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옷은 다 들춰져 경찰들에 끌려나오는 걸 보면서도 경찰을 뚫지 못해 ‘이 나쁜 놈들아’하고 울먹이는 것밖에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당신들은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다시 거리에 나설 텐데 공권력 투입 하루 만에 정상을 되찾은 매장을 보며 이를 막지 못한 분함에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 나, 너무 미안합니다.


온통 이상했습니다. 몇 차례 파업장을 찾았을 때도, 심지어는 외부인의 개입을 차단시키기 위해 경찰을 동원한 것도 모자라 모든 출입문과 방화셔터문을 용접하거나 걸어 잠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권침해 조사단으로 갔을 때도 조합원들이 보인 반응이 너무 생경했습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두 짜기라도 한 듯 “아뇨”라고 말하기에, 배기기만 하던 바닥 잠도 이젠 익숙해졌다며 작은 세면대에 머리를 감는 것도, 수건으로 대신하는 샤워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공기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며 배시시들 웃으시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언제 투입될지 모른다며 나가고 싶지 않느냐고 짓궂게 물었을 때 “두렵지만 나가진 않겠다”는 말도, “쫓겨나면 다시 들어오겠다”는 말도 설마하며 의심했습니다. 스무 분을 넘게 인터뷰하고 매장 안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힘들지 않다는 것을, 두려워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맞잡은 손이 얼마나 단단하던지 마치 해방구처럼 따스하더이다. 참 오래간만에 맛본 설렘과 행복이었습니다.



이랜드 노동자로 산다는 것


“90만원이요. 야간이라서 조금 더 받는데, 밤 11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7시에 퇴근해요. 야간에 일하면 조금 더 주니까 밤낮이 바뀌어도 어쩔 수 없죠. 여자에, 나이 오십이 넘으면 정말 직장 구하기 힘들어요. 돈이 부족한 분들도 계시니까 당장 다음 달 생계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많아요. 8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요. 바쁜 날은 쉬는 시간은커녕 종일 화장실도 못가요. 갑자기 사람이 아플 때도 있는데, 아프다는 이야기도 못해요. 휴무처리도 안되고.”


“3개월 수습 거치고 10개월 계약하면서, 일하면서 불미스러운 일 없으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정년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법 통과 되고 7월 되기 하루 전날 전화해서 나오지 말라고 했죠. 나이든 사람들은 다른 데 갈 데도 없는데, 그런 동료들 생각하면 안타깝고 눈물 나요.”


2006년 11월에 통과돼 지난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사측은 뉴코아 킴스클럽에서 전체 계약직 350여 명 중 330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또한 홈에버(전 까르푸)를 인수할 당시 100% 고용승계를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올 1월부터 지난 5월 초순 사이에만 350여 명의 계약직이 일자리를 잃었지요. 그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지난 5월에는 주차, 보안, 카트관리업무에 종사하던 용역직원 500여 명을 정리하더군요. 비정규직 보호하겠다는 법이 비정규직에게 겨눈 칼이 되었고, 그 최대 피해자는 화장실 다녀올 겨를도 없이 6~8시간을 버텨야 했던 그래서 모두 방광염을 앓게 된 당신들, 바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하나다


하여 대부분의 농성자들이 비정규직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정규직은 남아있을 수 있으니, 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해 왔으니 농성을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지요. 하지만 보기 좋게 제 예상은 빗나가 버렸습니다.


“13년 동안 일했어요. 바쁠 때는 쉴 틈 없이 10시간을 꼬박 일해요. 정규직이고 한 달에 150만원을 받으니 여자치곤 좋은 직장이지만 이건 잠깐이고 비정규직들 다 해고시키면 정규직들이라고 해서 다 아웃소싱 안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지금 조건에 만족한다면 그냥 살 수는 있겠지만 어딜 가나 비정규직이 아웃소싱되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아웃소싱으로 변하는 것은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해서 저라고 마냥 정규직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워서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당신들은 누구보다 명쾌하게 자본의 흐름을 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자랑스러웠던 건 사람내음 때문이었습니다.


“5년간 똑같은 일을 어쩌면 저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돈은 더 적게 받고, 티타임도 못가지시고. 그분들을 가차 없이 버리고 우리만 살겠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힘든데 그만둘까, 내가 한심해보이지 않냐고 했더니 신랑이 그만두면 너 혼자는 편하겠지만 너랑 같이 일 해온 직원들 생각을 해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가서 꼭 이기길 바란다고 집에 못 들어오는 거 서운하지만 네가 정말 이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직원들이랑 지내도 괜찮다고. 혹여 이 일로 불리한 일을 당해도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한 노동운동가의 말처럼 “말로는 '하나'임을 떠들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정규직의 알량한 위선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온몸으로 증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장 점거가 불법이냐고 물으신다면


투쟁하는 동안 화병이 났다고 말했지요. 몸은 힘들지 않은데 불법이라는 말만 들으면 화가 치민다고. △1주일 미만의 초단기 계약, ‘0’개월 백지 계약서 요구, 계약서의 근로계약기간 변조 등 해고를 위한 편법, 불법 계약의 난무 △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대량 해고 △위장도급의 의심이 가는 계산원 업무의 용역 전환 △차별 회피를 목적으로 한 직무급제 도입 △18개월 이상 근무한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기로 단체협약에 명시하고서도 이를 무시하고 해고를 강행하는 등의 불법을 행한 것은 회사인데, 1년에 130억씩 십일조를 낼만큼 갑부인 것도 회사인데, 사람들이 ‘쇼핑권’을 운운하며 “너희만 먹고 살려고 하는 짓”, “불법”이라고 말할 때면 한판 붙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고요. 그리곤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문에 쇠고랑 채우고 용접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용접했다는 소리 듣고는 얼마나 겁이 나던지 소름이 돋더라고요. 무슨 일이라도 나고 불이라도 나면 경찰들은 비껴주기라도 할 텐데 짐을 쌓아놓고 용접한 출입구는 열리질 않잖아요. 그 소리 듣는 순간 정말 회사에 실망해서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정말 우리가 이 정도 값어치도 안 되는 사람인가 싶고…. 지난 12년 동안 여기서만 일했는데, 왜 이런 대우밖에 못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제가 너무 한심하고 지난 시간이 억울하고 분해요.”
사진 | 참세상


“너무 화가 나요.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물 파손을 우려해서 경찰을 부른 거잖아요. 여기 급하게 오느냐고 가방도 제대로 못 챙겨서 왔는데 경찰들이 그걸 다 뒤지더라고요.”


“엄마가 왔었는데도, 우리가 엄마 얼굴 한번만 보고 싶다고 했는데, 경찰이 안 된다고 하고. 반찬을 해가지고 왔다고 해도 이것도 반입이 안 된다고 했어요. 가족과 만나는 게 전혀 안 돼요.”하며 끝내들 울어버리셨죠. 하지만 사측과 경찰은 그도 모자랐나봅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 “○일까지 복귀 시 선처하겠다. 집행부가 아니라도 불법행위를 주도한 세력은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줄 것이다.”라고 회유, 협박하더니 가족들에게 파업에 계속 동참을 하면 개개인들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편지를 보내고, 실제로 경찰에 조합원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더군요.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출석 통지서를 보냈고요.


그래도 제 눈에 상처보단 ‘힘’이 보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런 게 단결이구나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언니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집에 아예 안 들어갈 순 없어요. 해서 되도록이면 언니들부터 집에 다녀오는 것으로 해서 교대를 했는데 경찰이 막고 나서는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더 답답하실 거예요.”라는 말에 “아이가 병원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나가긴 해야 하는데, 경찰이 완전 봉쇄를 해버려서 들어올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철심을 박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는 이기려면 단결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나 한사람 빠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마음이 흐트러질 거니까 수술 동의서 쓰고 간호사하고 의사한테 잘 부탁한다고는 말만하고 막 뛰었어요. 12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거 못하면 몇 시간 더 기다려야 하니까요. 차 밑이라도 어떻게 서라도 들어와서 저 사람들이랑 교대해줘야 한다는 생각만, 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라는 오십대의 아줌마의 말이 왜 그리 뭉클하던지요. 해서 알았습니다. 사측이 아무리 깨려고 해도 쉬이 당신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위로하기 위한 승리가 아니라 정말 당신들이 승리했음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기력하게 손들고 있었을 동안 당신들이 온 힘을 다해 800만 비정규직의 대표로 싸워왔음을.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기적인 해고와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악법이라는 것을. 하여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14일, 21일에 걸친 매장 안팎에서의 조합원들의 투쟁을.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매장 매출 제로 투쟁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그들과 손잡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온 몸의 연대를. 하여 이기는 싸움보다 지는 싸움을 더 많이 해 온 우리지만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공권력 투입이 예정된다는 소식에 매장 앞에 모여 비 속에서도 노숙농성으로 새벽을 맞이해 준 수많은 사람들께. 고맙습니다. “노조간부들 어때요, 불만 없어요?”하는 불순한 질문에 “우리 간부들이요? 최고죠.”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해준 노조 간부들께. 고맙습니다. 80만원 인생으로 살아왔지만 사람이 무엇인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분노라는 것이, 연대라는 것이,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준 당신들께, 그래서 심장이 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심을 내게 해준 이랜드 조합원 바로 당신들께, 나 너무 고맙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온한 일상을 꿈꾸며,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