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신자유주의 아래 신음하는 대학

징계 학생들의 투쟁에 더 많은 지지와 연대를

2006년은 대학가에 난데없는 학생 징계 바람이 몰아친 해였다. 항공대, 동덕여대, 고려대, 한국외대, 한신대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진 주요 대학만도 다섯 군데에 이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진제공 | 부당징계학생자치 탄압 반대 학생시민사회연대


그 배경에는 대학사회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이 있다.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 대학 간 통.폐합, 학생회나 노동조합 같은 대학 내 자치단체 불인정 등이 대표적 폐해다.



대학사회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


2006년 교육부가 집계.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국 122개 사립대의 2005년 등록금 인상률은 1997년에 비해 계열별로 44~53% 인상됐다. 이것은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지수 증가율(27.9%)의 두 배에 이른다. 여기서 학생들이 겪었을 고통은 알고도 남음직하다.


한편 정부의 정원정책 실패로 대학 신입생이 대거 부족해지고, 이 과정에서 도산하는 대학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대학에 대한 국고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에 통.폐합시키는 방식으로 이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치 도산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듯이 말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전문대 학생들은 도서관 등 학교 시설 사용 불가, 총학생회 투표권 불인정 등 온갖 차별을 당하고 있다.


기업의 대학 진출도 전에 없이 활발하다. 그러나 기업의 대학 기부금은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 집중돼 있고, 그나마도 대부분 기업 홍보를 위한 건물 신.증축에 사용돼 학생들의 실질적 혜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학 교과과정이 기업 입맛에 맞게 바뀌는 등 폐해가 많다.


대학 당국의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교수, 학생, 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거나 억압당하기 일쑤다. 지난해 학생 징계가 있었던 대학들은 바로 이런 대학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맞선 투쟁이 있었던 곳들이다.
항공대와 동덕여대에서 대학 당국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한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다. 항공대는 국립대에서 사립대로 전환하면서 몇 년째 학생들의 부담이 대폭 늘고 있었고, 동덕여대는 등록금 환원률이 전국 최하위일 정도로 교육 여건이 열악했다. 특히 동덕여대 당국은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학생회를 부정하며 거의 1년 가까이 대화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고려대 당국은 고려대에 통합된 보건전문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허용하라고 요구한 학생들에게 ‘출교’라는, 사실상 학생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징계를 내렸다. 징계 대상이 된 학생들은 2005년 이건희 명예박사 학위 수여 저지 시위에 앞장섰던 이들로, 고려대 당국이 당시 사회 여론 때문에 징계하지 못했던 것의 사후 보복으로 ‘출교’를 시켰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외대에서는 대학 당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발해 노동조합이 파업에 나서고 학생들이 이에 연대하자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다. 외대 당국은 학생이 배포한 유인물을 문제 삼으며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조차 억누르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신대에서는 대학 당국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리고, 징계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내라는 황당한 요구를 해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징계가 내려진 맥락만 간단히 살펴봐도 대학 당국의 징계가 교육적 목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징계 절차도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각 대학의 ‘학생징계규정’이 대부분 70~8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제정된 것으로 대학 당국에 유리한 조항만 가득하고 학생 인권보호는 뒷전이다. 그래서 징계 절차도 대부분 징계권을 쥔 교수들이 징계 대상 학생을 빙 둘러싸고 취조하듯 진행된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게 하거나, 심지어 학생을 출석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징계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학생에게 징계 사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징계를 받은 학생이 징계 결과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할 권리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징계는 대학 당국이 저항하는 학생들을 탄압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다.



징계 문제를 넘어 신자유주의화를 지적해야


그럼에도 대학 당국의 징계가 앞서 말한 다섯 학교에 그친 것은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물러서지 않고 투쟁한 결과다. 가장 좋은 사례는 항공대와 동덕여대일 것이다. 두 대학 모두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대학 당국 스스로 징계를 철회해야 했다. 동덕여대는 투쟁의 성과로 올해 등록금을 동결시킬 수 있었다. 고려대의 경우 7명의 출교 학생들이 1년 넘게 천막 농성을 하며 초인적인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고된 투쟁 때문에 몇몇 학생들은 무릎과 허리 수술을 받아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과도 작지 않다. 출교 학생들의 끈질긴 투쟁 때문에 대학 신자유주의화의 전도사 어윤대 총장은 지난해 총장 선거에서 낙마해야 했다. 고대 출교 학생들의 천막 농성은 대학 신자유주의화 반대 투쟁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외대는 징계 학생과 대학 당국의 ‘진실 게임’에서 사실상 대학 당국이 패배했다. 애초 대학 당국이 학생을 징계할 때 내세운 명분이 ‘보직교수가 조합원을 폭행·성희롱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었지만, 올해 4월 국가인권위는 보직교수의 성희롱을 사실로 인정했고, 5월에 법원은 징계 무효 판결을 내렸다. 외대 당국은 이에 불복해 항소를 한 상태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듯하다. 한신대 당국은 학생들의 투쟁과 여론의 압력에 밀려 “무기정학 기간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에서 후퇴해 “일단 한 학기분 등록금을 내면 복학할 때 이월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대학 당국의 부당 징계는 징계 학생들의 가열찬 투쟁 때문에 오히려 대학 당국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대학 당국이 비민주적이고 반교육적이기까지 하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징계 도미노’가 더 이어지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징계 철회 운동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려면 지지와 연대가 더 광범하게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징계 학생들이 속한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학생 징계 문제, 나아가 대학 신자유주의화의 문제를 계속해서 환기시켜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징계 학생들과 연대하기 위해 진보적 학생.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부당 징계·학생자치 탄압 반대 학생시민사회 연대’(공동대표 박거용 교수, 김세균 교수, 최순영 의원)라는 모임을 꾸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징계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부당한 징계가 철회되고, 대학 안에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학문.사상의 자유와 공공성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