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망법,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말라고?

7월 28일부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망법) 시행에 따라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시행된다. 이미 어떤 사이트에서는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인터넷 상에 게시물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본인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부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와는 달리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본인을 확인한 이후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도 게시물을 작성할 수 있으므로 공개적으로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악플의 원인은 익명성 때문인가?


뉴코아-이랜드 노조 파업이나 아프간 한인 피랍사건, 신정아씨 학력 위조사건 등 굵직굵직한 것들뿐만 아니라 연예인 사생활 관련 뉴스 등에서도 게시판에 올라가는 댓글의 공격성은 이미 도를 넘은 듯 보인다. 어떤 그룹의 노래가사처럼 여자 하나 성형중독 만들거나 누구하나 변태로 몰아대는 것은 게시판 안에서는 껌 씹는 거만큼 쉬운 일이다. 특히 그 익명성과 직접적이지 않은 관계를 대상으로 한 ‘뒷담화’의 가벼움은 타인에 대해 어떤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 따져보자. 익명성 때문에 막말하기 쉽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안 보이니까! 내가 뭐라 해도 해코지 당할 위험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케빈 베이컨의 6단계로 알려진 Small World Theory1)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3.5명만 거치면 모든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한다. 내 숙모의 사촌언니는 가수 이현도의 어머니고, 나는 명세빈과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내 친구의 언니는 가수 조규찬의 대학교 후배였다. 말이 쉬워서 익명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인터넷을 거쳐 발생하는 범죄가 모두 익명성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벌어지는 수많은 사기 사건들은 실상 범죄자들이 그 익명성을 활용했다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그 사람들의 말을 신뢰해준 사람들이 너무 순진했기 때문이다.2)


안 보이는데서 막말하는 ‘뒷담화’의 위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어떤 공동체든 가십(Gossip)은 그 동네의 불문율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였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혹은 너무 보수적이었던 공동체의 분위기 때문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동네 눈이 무서워 열녀문을 부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평생 수절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사실 가십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그 가십 때문에 피해 받은 사람들 때문에 법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방법이다.



악플을 빌미로 통제를 욕망하는 국가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고, 뒷담화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좋은 기제가 된다. 당연히, 접근이 쉽고 주제도 명확히 보이는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뒷담화나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뒷담화의 순기능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막는 것부터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댓글이 주는 뉘앙스가 사회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감정을 백퍼센트 전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언어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 어투 등 다양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오직 글자로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제 댓글들이 욕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난잡한 댓글들이 주는 문제는 오히려 댓글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댓글을 쓰게 만드는 상황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원문의 내용이나 필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 하지 않고 대충의 줄거리만으로 필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나 넘겨짚기로 허황된 추측과 예측을 사실인양 말해 버리는 것. 이것은 익명의 댓글을 허용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습관이 문제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더 황당한 것은 망법을 통한 사상검증이다. 이미 정통부는 20여개 단체에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너무 식상한 말이지만,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사상의 자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더 식상한 예시이지만, 브라질의 룰라나 이탈리아 공산당이 받는 지지를 보면 ‘사상의 자유’가 갖는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북한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북한을 소재로 했던 TV 드라마들은 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방영불가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집회도 했다하면 불법이고, 내 사상을 얘기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고, 뒷담화 좀 하려고 자신의 신분을 만천하에 공개해야 한다면 그건 ‘자유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 ‘통제’국가이다. 댓글이 주는 악영향은 실질적인 악영향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불안증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통제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하고, 모든 것을 제도의 틀 안에서 조정하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진짜 민주주의라면 누구의 생각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린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정통부의 몫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통부의 망법 발효, 한마디로 ‘Mission Impossible’이다.

덧붙이는 말

1) 헐리우드의 배우들은 6단계만 거치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이야기. 예를 들면, 나는 병역거부연대회의 활동가인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오리)를 거쳐 병역거부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이었던 이석태 전 청와대 공직기관비서관을 거치면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된다. 한 단계 더 거치면 부시와도 연결된다! (반갑진 않지만) 2) 이 말은 진심이 아니다! 사실 문제는 익명성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신뢰를 파괴해버리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신뢰를 파괴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지 그 기회를 부추긴 인터넷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발상이 우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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