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어느 누가 문법을 좋아하랴마는

『인권의 문법』 (조효제 지음, 후마니타스)

정 색을 하고 논쟁해본 일은 없지만 대개의 편집자들처럼 월간 <사람> 편집인도 문법, 특히 맞춤법에 관한한 보수주의자인 듯하다. 좋게 말하자면 원칙에 충실한 것이지만 같이 잡지를 만드는 처지로서는 영 피곤한 일이 아니다.


문법도 법이기에 늘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들과 긴장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일반 법률과는 달리 문법은 언어대중의 변덕과 무원칙 앞에서 무기력하게 후퇴를 거듭한다. 본래 말과 글이란 옳고 그르고 하는 판단의 대상이기 이전에 소통의 도구인 탓이다. 하지만 말과 글의 질서가 혼란스러울 때 소통이 왜곡되거나 아예 차단된다는 데 문법의 존재이유가 있다.


저자가 “뜨거운 주제의 건조한 분석”이라고 밝히고 있는 『인권의 문법』은 인권을 둘러싼 소통을 염두에 두고 나온 책이다. 언어를 배울 때 문법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듯 이 책은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봄 직한 문제들을 대부분의 이론서들과는 달리 목에 힘주지 않고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 책의 미덕은 이론가 혹은 저자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권위를 벗어버린 겸손함과 거기서 나오는 친절함에 있지 않나 싶다. 또한 “필자는 언젠가 지하철에서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라는 광고를 본 적도 있다”는 각주처럼 통상적인 주석과는 다른 저자의 코멘트를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소통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대중과 눈을 맞추고 인권운동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딱딱한 문법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쩌면 이 혼탁한 속세에서 인권의 통속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400여 페이지가 예상외로 쉽게 넘어갈 수도 있다. 물론 문법을 잘 안다고 해서 말하고 쓰기가 절로 되는 건 아니란 사실을 이 책의 저자도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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