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인권교육 법제화, 끝이 아닌 시작일 뿐

만드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싹을 틔운 지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인권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영역도, 교육 주체도 다양해졌으며,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인권교육의 ‘붐’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교육의 확대가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잘 순응하며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드는 교육 정도로 인권교육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인권교육의 개념과 가능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기도 한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주도로 인권교육의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도 법제화를 통한 인권교육의 확대가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교육의 체계화와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조처로서 법제화는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제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법제화가 추진되어야 하며, 그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권교육 법안 들여다보기 - 소극적 규정 곳곳


지난 4월 인권위가 정부에 의안 제출을 요청한 인권교육법은 ‘인권교육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모두 15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인권교육의 정의 및 인권교육의 기본원칙 제시 △모든 사람에게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와 국가 등에 인권교육 실시 의무 규정 △위원회 산하 인권교육에 관한 주요 사항을 수행하는 ‘인권교육위원회’, 인권교육의 협의·조정을 위한 ‘인권교육관계자협의회’, 인권교육의 효율적 지원을 위한 ‘인권교육원’ 설치 △실행체계로서 인권교육에 관한 종합계획 권고안 마련과 이 권고안 존중 △대통령이 인권교육 기본계획을 중앙행정기관의 장 등에게 세부시행계획 수립하도록 함 △인권교육에 관한 사항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현장조사 및 실태조사와 이에 따른 시정요구 △인권교육 촉진을 위하여 각급 학교, 인권관련 단체 및 교육·연구기관 등에 대한 지원방안 마련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인권교육에 대한 권리가 모든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국가가 이를 적극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보다 구체적인 법률을 통해 명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권교육법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행 인권위법으로는 인권교육에 대한 소극적 규정으로 인해 인권교육을 강화·확산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인권위가 스스로 인정하여 인권교육 법률 제정의 이유로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련된 법안조차 소극적 규정에 머무르고 있다.


공공기관 등의 소속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을 규정한 제7조를 보더라도 공공기관 내 종사자에 대해 인권교육을 실시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을 뿐 인권교육을 어떻게 실시할지, 그리고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강제규정이 없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공공기관 소속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인권위가 인권교육법 제정의 이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공공기관의 자발성에만 기대 인권교육을 체계화하고 확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1)이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 교육의 횟수, 내용, 방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공공기관 내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의무규정으로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로서 남녀고용평등법 제23조의22) 규정처럼 공공기관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를 과태료에 처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물론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인권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만 더불어 의무를 불이행 했을 때 이에 대해 과태료에 처하는 규정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법안의 실효성의 문제는 인권교육 실태 조사 등의 규정인 제14조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인권교육 이행 여부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공공기관 등에서의 인권교육 실시를 강제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현장조사 및 실태조사 등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언급하여 이마저도 모호하다. 실태조사 기간이나 조사 후 조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조항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실시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조항의 성격을 바꾸고, 나아가 실태조사 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인권교육 실시 후 당해 기관이 인권교육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신설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이 형식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법제화가 선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더불어 보고서를 바탕으로 인권교육 경험을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현장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실질적인 인권교육의 체계화를 꾀할 수 있다.



인권교육 법제화를 위한 조건 만들기


그렇지만 법안의 내용을 보완해 법제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법제화가 곧 인권교육의 확산과 체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권위는 인권교육 법제화를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에만 치중했을 뿐, 법제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들은 마련해 놓지 못한 상황이다.


인권교육의 원칙과 개념,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교육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어 아래로부터 호응을 받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특히 인권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공기관 등의 현장에서 법제화로 인해 인권교육이 실시될 경우 또 하나의 업무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법률 제정 외에 대중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인권교육의 개념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홍보활동과 토론회 등을 개최해 나가야 한다.


인권교육에 대한 정책을 제안·실행하고, 체계화시켜 나갈 수 있는 인력을 육성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법제화와 동시에 학교나 공공시설 등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인권교육에 대한 요청이 봇물 터지 듯 밀려들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할 인권교육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 또한 현실이며, 결국 인권과 인권교육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들이 대거 활용될 수밖에 없다. 자칫 법제화 이후 정부 주도의 인권교육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면서 인권교육의 발전·강화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교육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 사이에 경험을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핵심 인력을 육성하려는 계획이 인권교육 법제화 추진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자리가 형식적인 모임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인권위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 지난해 인권위가 인권교육가들을 위한 인권교육 실천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지만, 이마저도 졸속으로 준비하면서 인권위의 용역 사업을 발표하는 자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법제화의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계획하고 수립, 집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또한 인권위가 민간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부부처와의 협의체를 만드는 등의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참여가 단지 인권위가 필요할 때만 ‘소집·해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와 견제가 일상적으로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난 4월 진행한 인권교육법 관련 공청회3)와 같이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형식적인 통과 의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협의체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법제화의 기본 토대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법제화 자체보다 과정이 중요


인권교육 법제화는 민간 인권교육 진영보다 정부 차원에서 먼저 추진되어 현재 인권위 주도로 법률 제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인권교육 활동가들에게조차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 인권교육 법제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권교육이 제도화 될 경우 따라오게 될 여러 가지 우려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제화 또한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권교육 법제화의 전제조건이 완벽하게 마련될 때까지 법제화를 유보해야 한다는 것도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지금도 인권교육 현장에는 인권교육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도적 지지기반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인권교육가가 많다. 인권 및 인권교육을 접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일회성 교육에 그치고, 인권교육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워 안정적으로 인권교육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권교육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구도에 빠지게 될 경우 인권교육 제도화에 대한 해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법률 제정 운동을 넘어서 인권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차근차근 법제화의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마련하는 것이 민간 인권교육 진영에게도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말

1) 남녀고용평등법 시행령 제9조【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① 사업주는 남녀고용평등법(이하 ‘법’이라 한다)제8조의2제1항제1호의 규정에 의하여 직장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을 1회 이상 실시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교육의 내용 방법 기타 필요한 사항은 노동부령으로 정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할 우려가 현저히 낮거나 규모가 영세한 경우 등 노동부령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업의 사업주가 실시하여야 할 교육의 횟수, 내용, 방법 등에 관하여는 노동부령으로 따로 정한다. <전문개정 99.3.17> 2) 남녀고용평등법 제23조의2【과태료】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개정 99.2.8> 1. 제8조의2제1항-직장내 성희롱의 예방을 위한 교육의 실시-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한 자 3) 실제 공청회에 참여한 인원은 발제자, 토론자(8명)와 인권위 직원(10여 명)이 대부분이었으며 외부에서 겨우 10여 명 참여했을 뿐이다. 공지만 되었을 뿐 의견수렴을 위한 노력과 의지가 인권위에 없었고, 결국 민간 인권교육 진영과의 신뢰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서 공청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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