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한상희의 쇳소리] 다이 하드, 그 음지의 권력

국가정보원의 모토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이었다가 얼마 전 ‘정보는 권력이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음지의 정보가 양지의 권력을 구성하는 오랜 구태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최근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과 관련하여 국정원이 부패척결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국내정보수집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2년 전 소위 ‘안기부 X파일’ 사건의 파문이 아직도 눈에 선한 상태에서, 바다이야기 사건이니 JU와 같은 다단계사업의 비리사건이니 하는 일반치안사건까지도 국정원이 정보수집하고 그 치죄의 과정에 관여해 왔다는 공식발표조차 그 뒤를 따른다.


그러고는 이런 부패척결활동은 국가안보를 위한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고 선언한다. 대통령훈령이 그 근거가 되며 종래의 관행이나 업적이 그 정당성의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국정원의 국내정치개입의 길을 열어주며 이들을 변명하고, 심지어 개혁을 표방하였던 현 여당조차도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편들고 나선다.


그동안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남북의 대립구도가 변화하고 우리의 인권의식이 고양되면서 국정원은 폐지되거나 혹은 대폭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가 되어 왔다. 특히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최대의 원천이었던 국내정보파트의 폐제는 보수적인 정파들조차도 납득하던 의제였다.


하지만, 선거판은 철새들이 날뛰는 만큼 기억력도 순간에 그치게 만든다. 과거의 폐악이 어떻든, 자신들의 공약이 어떻든 당장 필요하다면 혹은 현재 자신의 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정원의 그 암울한 권력을 회생시켜 나간다. 그 뿐 아니다. 되려 야당의 한 거물급 정치인의 비리의혹에 대한 논란을 틈타 우리 국정원은 부패척결이니 뭐니 하면서 국내정치과정에서 음으로 양으로 개입하던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공식화해 나가고 있다. 국정원법이 알지 못하는 권력을 이런 저런 빌미로 거머쥐고 이제 명실상부한 양지의 권력으로까지 비약하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국정원은 검찰과 경찰, 청렴위, 고충처리위 뿐 아니라 금감위나 공정거래위까지도 포괄하는 국가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피로에 의하면 전체주의는 사적인 도덕을 통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대의 국가장치는 정보감시이다. 이제 국정원은 공무원의 부정부패까지 감시한다. 음지에서 양지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난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오른 팔, 왼 팔을 다투며 권력을 전횡하듯, 이 민주화의 대명천지 아래서 이제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이 서로 양지의 권력과 음지의 권력을 분점하는 구도가 서서히 굳혀지고 있다.


2년 전부터 소위 87년 체제의 종말에 관한 각종의 징후와 예언들이 지면을 채우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 한 끝에서 서서히 부활하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은 이 87년 체제의 부재론 내지는 무효화론을 요청한다. ‘죽었다’던 이들이 죽기는커녕 어떤 위력에도 맹목의 생명으로 부활하는 이 ‘다이 하드’의 현장에서 몇 되지 않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상희 | 건국대 법대 교수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