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소통에 관하여

소통이란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이라는 게 사전의 정의입니다. 인간은 혼자만 살 수 없고,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의 관계 맺기에서 소통은 아주 기본적인 요소이죠.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이후 관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운동에서도 소통은 기본입니다. 활동가 간에, 단체 간에, 서로 다른 운동 간에, 그리고 운동과 대중 간에 소통이 이루어져야 운동이 살아납니다. 소통이 안 되고 막힌 조직, 그런 운동은 점차 고사됩니다. 소통을 통해 관계 맺는 방법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연대를 이루어야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소통을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소통을 가로막는 요소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소통의 정답은 없지만, 그것의 기본은 진정성입니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한 자락 깔고 이해를 타산하는 소통은 관계를 왜곡시킵니다.


요즘에 한 통일운동단체와 인권단체들 간에 이 소통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단체의 기관지에 성소수자를 왜곡하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단체는 진정성 있는 해명을 자꾸만 피해왔습니다. 같은 글에 실렸던 이주노동자 단체에는 해명도 하고, 사과문도 정중하게 보낸 것과는 달리 성소수자 단체에는 매우 성의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대화나 교육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될 터인데, 자꾸 문제를 복잡하게만 만들어 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낳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갖는 단체와 어떻게 얼굴 보면서 연대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통에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드러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등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움으로 서로 풍부해지겠다는 정신이 깔려야 합니다. 표리부동해서는 소통의 진정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이런 소통이 안 됨으로 운동의 위기는 심화됩니다. 이번에 열린 사회운동포럼의 모토가 ‘소통/연대/변혁’인 까닭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호 특집은 국가주의를 다루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한편에서는 국가의 폭력성이 극에 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묘한 감시망을 저인망 그물코처럼 촘촘하게 짜댑니다. 이제 정보기술에 의한 감시망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지대는 사라집니다. 쌍방향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인터넷에 대한 통제도 상상을 초월하고, 선거 시기에도 의사표현은 극도로 제한됩니다. 지배계급은 국익이라는 이름의 국가주의로 민중의 의식을 마비시켜 갑니다. 이런 국가주의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국가주의의 현 상황에 대해서 진단해 보았습니다. 이런 국가주의의 저주를 풀어내는 비법이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 연재는 쉬는 대신에 『인권의 문법』 저자와 특별대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효제 교수와 나누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나누지는 못했지만 책에서는 접하지 못한 솔직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의 대담이 인권운동을 하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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