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한국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의 의미

지난 8월 9~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71차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이하 CERD)가 열려 한국 13, 14차 정부통합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CERD는 같은 날 17일에 한국 정부부고서 심의에 따른 총 27조의 최종견해를 발표하였다. CERD의 최종견해가 발표되면서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 최종견해를 보도하였고, 이는 한국사회에서 ‘단일민족’과 ‘순혈주의’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국제연대위원회는 한국의 정부보고서가 CERD에 제출된 후, 4개월에 걸쳐 관련 NGO들과 함께 반박보고서를 작성, 제출하고 제네바 현지에서 심의과정에서 로비를 통해서 정부의 의견이 아닌 현장 NGO들의 의견을 전달하려 노력하였다.


필자는 반박보고서 전 과정에 관여하며 현지 제네바에서 한국 NGO의 의견을 전달하는 행운을 가졌다. 이 경험을 중심으로 CERD 한국정부보고서 심의 전에서부터 심의과정에서의 한국정부 측의 시각과 NGO의 의견, 심의 이후 CERD의 최종견해와 최종견해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NGO 반박보고서 작성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철폐협약 9조에 따라 2006년 7월에 제13, 14차 한국 정부 통합보고서를 제출하였고, 2007년 3월 말, CERD에서는 한국 NGO들의 정보(LIST OF ISSUES, 반박보고서)제공 여부를 물었다. 이에 민변 국제연대위원회는 긴급하게 관련 단체들과 함께 반박보고서 작성을 위한 팀을 꾸렸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여성인권센터, 민변 이주모임등과 함께 정부 보고서를 분석하였다. 정부의 이번 보고서가 기존의 경우와 동일하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정부의 정책과 법령제정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한국의 이주노동자와 혼혈, 난민, 결혼이주여성 등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반박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반박보고서 팀은 기존의 이슈를 나열하는 수준의 보고서 작성보다는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위원회 위원들을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기 위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NAP(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난민, 혼혈 등 5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이를 중심으로 기본틀을 확정하였다. 세부사항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부분에서는 ①외국인보호소 ②노동정책, 사업장이동과 취업활동 기간의 문제 ③단속, 추방 ④권리구제와 통보의무 ⑤합법화 등 5개 항목으로 집중하였고, 이주여성부분은 ①여성이주노동자 ②성산업과 인신매매 이주여성 ③국제결혼이주여성 등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NAP 부분은 NAP 작성 시 NGO 의견교환 부족 부분과 차별금지법 부분을, 난민 부분은 난민인정협의회의 문제점과 난민처우 부분을, 마지막으로 혼혈인 부분에서는 정부의 혼혈인에 대한 자료와 통계부족과 혼혈인의 차별에 대한 제도 등을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분과 이주여성 부분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게 제기하였다.


약 4개월간의 반박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모든 팀원들의 노력과 수고로 NGO 반박보고서는 작성되었고, 요청된 시간에 CERD에 송부하였다.

한국NGO 대표단과 CERD위원들간의 비공식 미팅. 사진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CERD와 NGO의 비공식 미팅


CERD를 비롯한 유엔인권조약(협약) 감시기구에서는 각 당사국 정부보고서 심의 전에 당사국 NGO 단체들과 비공식 미팅을 약 한 시간가량을 가지면서, 위원들에게 직접 정부보고서 심의 시 정부대표단에게 제기할 질문들과 추천 권고사항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NGO의 입장에서는 NGO 반박보고서를 홍보, 로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이번 CERD 한국 정부보고서 심의에 한국 NGO 대표단으로 민변 국제연대위 오재창 변호사, 박재형 변호사, 이동화 간사 3명이 파견되었고, 한국 정부보고서 심의 이틀 전인 8월 7일에 제네바에 도착해서 CERD 위원들과의 비공식 미팅을 준비하였다.


NGO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시간이기에 한국 정부보고서 전체를 반박하기에는 대단히 짧은 시간임을 인식하고, 약 20분간의 브리핑 시간과 40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1시간을 이용하였다. 브리핑 시간에 민변 대표단은 반박보고서를 중심으로 앞서 언급한 주요 이슈들을 브리핑하였다. 이에 CERD 위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부분에서 고용허가제의 문제, 여수화재사건, 한국의 소수인종과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구체적인 사례, 화교의 현재 한국 상황 등 대표단이 미처 예상치 못했던 질문들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CERD 정부보고서 심의


NGO 들과 비공식 미팅이후 바로 한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CERD 심의가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 측에서는 외교통상부, 노동부, 법무부, 현지 유엔 직원 포함 총 10명의 대표단이 참석하였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처럼 정부대표단은 금년 7월의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 시행령 공포, 5월 NAP 확정, 2005년 출입국 관리법 개정,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외국인근로자인권대책위원회 설치, 2006년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위한 통역지원센터 설립 등 그동안 제정 및 개정된 제도와 법령들을 중심으로 정부보고서를 발표하였고, 차별금지법, 난민 처우에 대한 정책, 혼혈인에 대한 종합적 대책 등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CERD 위원들에게 주지시켰다. 정부의 보고내용의 결론을 간략하면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 순혈민족이었기에 인종차별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이 되면서 한국 내에서 타인종과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시작되었고, 이마저도 한국 정부의 노력에 의하여 계속 개선중이라는 것이다.



이에 위원회의 참석 위원은 한국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질문을 제기했다. 가장 많이 그리고 공통적으로 제기한 질문은 정부 보고서 43조, 44조, 46조의 ‘단일민족’(ethnically homogeneous State) ‘순혈’(pure-blooded) ‘혼혈’(mixed-blooded)용어 사용이었으며, 이에 의한 한국 내에서의 타인종과 타민족에 배타성과 이에 기반을 둔 현상적, 실체적 차별행위였다. 더불어 NGO에 의해 제기된 NAP 확정과정에서의 한국 인권단체들과의 의견교환 부족, 차별금지법 미제정, 난민인정과정에서의 통역 부족, 높은 불인정율과 긴 처리기간, 난민인정협의회의 비독립성, 고용허가제의 폐해, 외국인보호소의 인권탄압, 외국인여성의 E-6 비자문제, 인신매매된 외국인여성 피해자에 부실한 대책 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한국 정부대표단은 심의 이튿날 CERD 위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단일민족’과 ‘혼혈’, ‘순혈’용어사용에 대한 한국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한국근현대사에서 존재하여 왔던 혼혈인과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을 감추었고, 차별금지법과 난민에 대한 통합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하면서 질문을 피했고, 외국인보호소의 인권탄압과 고용허가제의 폐해, NAP의 의견교환 부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하면서 자신들을 방어했다.


그 과정에서 관찰자 자격으로 참관했던 한국 NGO 대표단은 정부 답변에 많은 질문과 잘못된 점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CERD 한국 담당 보고관 케말의 마무리 발언으로 한국 정부보고서 심의는 끝나 버렸다.



CERD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 그 의의와 한계


8월 17일, 20여 일간의 CERD 71차 세션이 마무리되면서 각 당사국 심의에 대한 CERD 최종견해가 발표되었다. 한국 정부보고서에 대한 CERD의 주요 최종견해는 제 12조 대한민국의 단일민족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 문화 및 정보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채택, 13조 차별금지법 마련 및 채택, 14조 비시민권자들에 대한 권리와 자유 보장, 15조 공정하고 신속한 난민지위인정절차 및 난민에 대한 포괄적인 조치, 16조 외국인여성 인신매매 근절 및 외국인 여성의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미등록 외국인 여성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정보와 지원 협조 제공, 17조 국제결혼여성 권리보호 및 국제결혼중개업소 규제, 18조 고용허가제 폐해 우려 및 이주노동자인권보호를 위한 조치 마련 등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CERD는 최종견해 초반부에 한국 정부의 여러 가지 법령제정과 정책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 주요 최종견해에서는 한국 NGO가 제기한 대부분의 쟁점사항들을 포함시켰고 이전 한국 정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보다 많은 권고를 한국정부에 안겨주면서 한국사회의 광범위한 인종차별 현주소를 지적하고 한국정부의 이행노력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종견해에도 불구하고, 이번 CERD의 최종견해는 그 도출 과정과 최종견해 그 자체에서의 한계가 명확하다.


일단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짧고 제한된 CERD 당사국 정부보고서 심의일정(71차 CERD 세션, 10일 동안 8개국 정부보고서 심의)은 각 당사국내의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들게 하고, 당사국 NGO에 의해 반박보고서가 제출된다 하더라도 CERD 위원들이 NGO 보고서를 사전에 검토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최종견해와 권고사항들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예를 들면 NGO에 의해 집중적으로 제기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문과 추천 권고사항은 최종견해 18조에서 대단히 광범위하게 권고됨으로써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에는 부족한 최종견해가 되었다.


또한 CERD 뿐만 아니라 여타의 유엔 인권조약(협약) 감시기구의 최종견해는 말 그대로 권고사항이기에 당사국이 최종견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을 옮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사국을 강제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법에 의하면 한국에서 비준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명시하지만 민감한 사안(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 외국인보호소 운용, 이주협약 비준)에 대해서는 한국정부는 심의과정에서 밝혔듯이 국내법과의 상충과 한국 내 여론을 핑계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고, 최종견해상의 관련 권고 또한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례에서 알 수 있듯이 CERD 측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차기 한국 정부보고서 심의 때 다시 그 부분을 지적, 우려를 표명하며 다시 권고를 내리는 것 외에는 다른 강제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엔 인권조약(협약) 감시기구의 최종견해를 가지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구체적인 최종견해 권고사항을 이행시키며,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들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의 더 많은 노력과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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