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잔인한 진압 뒤에 침묵, 그러나

나의 조국 버마민중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나의 조국, 버마에서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민주화항쟁에 대한 군부의 탄압은 가혹했다. 지금도 버마에서는 운동가들이 매일 체포당하고 있다.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지도부와 당원들, 1988년 민주화운동 지도자들, 스님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을 포함해 1 만여 명이 구금당했다.


지난 8월 19일 시위가 처음 시작될 당시에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핵심 문제였다. 8월 15일 정부가 갑자기 석유 값을 2배로, 천연가스 가격을 4배로 인상하면서 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해졌고, 갑작스런 연료가격 인상은 버스의 운행까지 마비시켰다. 육체노동자 일당이 한국 돈으로 1,000원 정도인데 비해 버스 요금이 500원에 이른다. 이래가지고는 먹고 살 수가 없는 건 당연하다. 이때 1988년 민주항쟁(8888항쟁)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들이었던 민꼬나잉 등은 시민들과 함께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기 때문에 도보 행진의 규모는 더 커졌다. 이에 군부는 8월 21일에 민꼬나잉을 포함한 88세대 민주화운동 지도자들 13명을 체포했다.
사진 | 버마NLD 한국지부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도보행진을 시작으로


버마는 소승불교의 국가다. 스님들은 새벽에 한 번, 오전 7시에 한 번 맨발로 도보하면서 시민들로부터 공양을 한 숟가락씩 받은 후 사찰로 돌아온다. 매일 시민들이 드리는 공양을 받고 있는 스님들은 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버마의 독립운동과 88년 민주항쟁에서의 스님들의 역할과 희생은 지대했다. 88년 민주항쟁 당시에도 200여 명의 스님들이 살해당했다. 88년 민주항쟁 이후부터 지난 9월 사태 전까지 정치적 수감자 1,300여 명 중 3백여 명은 스님들이었다.


따라서 9월 6일에 파콕꾸(Pakkhoku)시에서는 5백여 명의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평화적인 기도행진을 했다. 군인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허공에 총격을 가했고 평화행진을 무력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 이상의 스님들이 군인들에 의해 연행됐는데, 2,000명 이상의 일반 시민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자 3명의 스님들이 당일 저녁에 석방됐다. 전국승려회연합은 9월 18일, 군부의 공식적인 사과, 경제 문제 해결, 체포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선언했고, 여기에 민주화운동가들과 시민들이 대거 합세했다. 9월 18일은 버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19년이 되는 날이다. 9월 26부터 28일 사이에는 불교국가인 버마에서 스님들이 주도한 평화적 시위가 군부에 의해 무력 진압되었다. 이때 10여 명의 스님들이 총살당했고 민주화운동가와 시민 수천 명이 체포당했다.


군부는 군용 트럭을 몰고 절로 난입해 승려들을 폭행하고 저항이라도 하면 사찰 안에서 총으로 쏴 죽이기까지 했다. 또한 군부의 감옥만으로는 구금자들을 다 가둘 수가 없어 체육관까지 임시 감옥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폭력 진압으로 숨진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 연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희생자 수는 많다. 지난달부터 버마 시위 과정에서 군정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의 수는 1천 명 가량 되고, 구금된 사람만도 1만 명에 달한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도 이런 식의 무자비한 탄압은 없었다. 9월 28일에 UN 특사 감베리는 버마를 방문, 총사령관 탄수웨이와 수치 여사를 만난 후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보고를 했다. 사무총장은 특사의 버마 방문에 대해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확대되는 국제사회의 군부 압박


10월 12일에 유엔 안보리는 버마 군사정권이 민주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것을 강력히 비난하고 수치여사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수감자들을 하루빨리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공식 채택했다. 유엔 안보리는 성명을 통해 버마 군사정권은 국가적인 화해를 이루기 위해 버마민주주의 지도자 NLD 사무총장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해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성명은 버마에서 폭력진압 사태가 발생한 이후 유엔이 취한 첫 번째 조치였다. 특히 그동안 버마 정권에 대한 비난성명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해 온 중국을 포함한 15개 안보리 회원국이 모두 찬성했다. 하지만 버마 군부는 유엔 안보리의 요구를 거절했다. 유엔 특사 감바리는 11월에는 다시 버마를 방문해 수치 여사, 소수민족 대표들, 88세대 민주화운동 대표들 그리고 이번 시위를 주도한 스님들까지 만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유럽연합과 미국, 호주 등이 버마군부를 압박하기 위한 제재조치를 발동했다. 유럽연합(EU)은 2004년부터 버마 군부에게 압박을 가해왔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EU는 정치적 수감자들을 석방하지 않고 소수민족 대표들, NLD와 대화를 시작하지 않을 시에는, 경제봉쇄를 지속하고, 군부와 그 가족들의 유럽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국제 금융기관의 버마 지원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국경지역에 있는 버마 난민들과 버마 NGO 단체들에게 지원해오고 2006년에 버마에 에이즈, 결핵과 말라리아 치료와 예방을 위해 3D 프로젝트를 만들어 1,000억 원을 지원했다.


중국은 2007년 1월 12일에 UN 안보리에 제출한 버마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12일에 UN 안보리의 버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다른 회원 국가들과 함께 찬성했다. 버마 국내와 전 세계의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은 각 나라에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버마 민주화와 안보리의 결의안 지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U와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은 이번에도 중국이 UN 안보리의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운동과 중국산 제품 불매 운동을 세계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중국은 버마 군사정권이 평화적 시위를 보장하고 더 이상 민중들을 구속하거나 학살하지 않도록 압박하라고 요구했다.



버마 민중들은 다시 투쟁할 것


그렇지만 한국의 정부는 아직까지 버마 민주화항쟁에 대한 어떤 반응도 자제하고 있다. 한국은 반인권적인 ‘무기제조기술’과 기계 설비를 버마에 수출하고 무기 공장 설립하여 군부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겪어 낸 ‘민주주의 국가’이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이며 아시아 민주화의 모범국가인 한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한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긴급행동을 구성해서 버마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버마 대사관 등지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NLD 한국지부에서도 현재 버마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버마는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가 소강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버마 민중들의 투쟁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민주화운동 지도자들과 단체들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해외에 있는 버마 민주화운동가들도 버마에 있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과 국제사회의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조국, 버마의 민중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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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샤린 |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대외협력국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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