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살만한 도시인가, 죽어야 사는 도시인가?

노점상을 바라보는 언론매체 비판

2004년 서울시청 앞에 덩그런 잔디마당이 탄생하였다. 나무 그늘 하나 없고, 벤치 하나 없는 ‘서울광장’이라 이름 붙여진 그 공간은 ‘광장’이 가진 본래적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이 당시 이명박 시장의 치적으로 남는 전시행정의 전형으로 잔디 무서워 맘대로 들어가기도 힘든 공간이다.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권리는 잔디에 뒤덮였고, 혹자는 서울광장을 시청사의 앞마당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하였다. ‘서울광장’은 치적 중심의 시장 주도의 사업은 물론, 도시경관을 중시하는 신개발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 시장의 신개발주의 망령을 도시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이명박 대선후보 홈페이지



이명박이 환경영웅?


그리고 지난 10월 16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가 <타임>지가 선정한 ‘2007 환경영웅’을 수상하였다는 기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명박 후보가 ‘환경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자 한나라당은 발 빠르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자화자찬하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가 ‘환경영웅’에 수상되었다는 브리핑을 끝내자마자 <연합뉴스>는 “李, 타임지 선정 `환경영웅상’ 수상”이라며 속보로 이 사실을 알렸고, 다른 언론매체도 이명박 후보의 수상 사실을 보도하였다. 어떤 평가도 없이 <타임>지의 보도자료와 한나라당의 브리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이명박 후보의 ‘환경영웅’ 수상 기사는 너나할 것 없이 똑같았다. “청계천 복원과 서울숲 조성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내용과 “지난 해 5월 <타임> 아시아판은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 후보의 사진을 표지에 싣고 커버스토리로 이 후보를 다룬 바 있다”는 내용까지 거의 모든 매체가 판박이였다. 삽질의 아이콘, 신개발주의의 대명사인 이명박 후보의 ‘불도저’ 행정과 개발정책에 대한 비판은 모조리 삭제되고 말았다. 한술 더 떠서 <중앙일보>는 “지구를 살린 ‘환경영웅’ 45인”(10월 20일)이라는 기사를 통해 <타임>지가 발표한 내용을 발췌하여 “2002년 서울 시장에 취임한 이 후보가 서구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깨끗한 환경을 시민들에게 안겨줬다고 평가했다”며 서구중심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또한 “이 후보는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취임 직후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 서울의 외관을 변모시킨 환경 친화적인 시민 휴식공간을 만들어냈다고 타임은 소개했다”는 앞뒤 맞지 않는 기사를 그대로 내보내기도 하였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그밖에 나무를 쓰러뜨리거나, 뿌리를 뽑거나 눈을 치우는 등의 작업에도 사용된다’는데 ‘불도저’가 어떻게 ‘환경 친화적인 시민 휴식공간’과 연결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여하튼 이명박 후보가 ‘환경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기 전부터 ‘청계천 복원’으로 이미 ‘신개발주의’의 세례를 받은 시장과 군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개천 복원은 물론 도시경관을 앞세우며 그리고 그것을 ‘친환경, 친생태’라 칭하며 삽을 들고 있다. 시·군·구 등에서 ‘친환경적 시민의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포클레인과 불도저를 앞세워 노점상과 영세상인, 빈민들의 터전과 생존의 공간을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김없이 언론매체는 노점상을 흉물스런 거리의 애물단지로 규정하거나 혹은 갈등을 일으키는 이익집단으로 평가한다. 지난 10월 8일 “대구 도심이 세련된 모습으로 디자인된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예로 살펴보면, “대구 도심지 문화공간이 세련되고 보기 좋은 이미지로 디자인”되는 과정에서 “노점상과 간판이 난립하는 도심지”가 “걷고 싶은 명품거리로 조성”된다고 설명한다. 새롭게 조성되는 대구 도심은 ‘세련’과 ‘명품’으로 표현되지만 노점상은 ‘난립’하는 이미지로 평가된다. 이것이 바로 노점상을 바라보고 있는 언론의 태도이다. 또 “서울 거리가 ‘디자인’을 입는다”라는 8월 22일자 <머니투데이> 기사에서는 “디자인 서울 거리 조성 사업은 거리의 모든 구성 요소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문화와 소통’, ‘삶과 지역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로 만드는 작업”이며, 이 작업은 “불법간판, 불법주차, 불법 노점상 등 거리미관과 보행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들을 예방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도시경관을 위한 혹은 관광 상품 개발을 위한 ‘디자인 서울 거리 조성 사업’에는 ‘문화’, ‘소통’, ‘공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지만, 노점상은 ‘불법’, ‘방해’, ‘장애요소’에 다름 아니다.


결국 최근 유행처럼 불고 있는 신개발주의에 대한 언론매체의 평가는 관대하다 못해 극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서울시를 모범으로 하여 모든 시군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경관과 그들만의 ‘친환경’ 공간을 시급하게 조성해야 해야 하는 조급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기사에서 드러나는 언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면 ‘세련’된 ‘명품’의 수혜자는 우리가 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공간은 우리의 삶의 터전과 현 사회의 문화적 호흡이 묻어나는 공간이 아닌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그들만의 공간이 되고 만다. 마치 잔디 때문에 맘대로 들어갈 수 없는 서울광장 마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매체는 ‘명품’을 향한 갈망과 욕망을 스스로 드러내며 빈민계층에 대한 그리고 공간의 생태적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지 않는다.



노점상으로 표현하는 언론매체의 공식 같은 감수성


때때로 미디어는 노점상을 ‘불법’, ‘장애요소’라는 이미지보다는 ‘가난’과 ‘서민정서’로 해석하며 동정과 시혜의 눈길로 혹은 정서적 측면의 감수성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자릿세, 가게운영권… 영세상 갈취 210명 적발”이라는 <경향신문>(1월 12일자) 기사에서 보듯이 노점상에게 자릿세를 요구하는 조직폭력배 혹은 권력집단에 대한 고발보도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한모씨(34)등 남대문 시장 경비원 5명은 지난해 8월, 노점상 박모씨(46)가 시장 개장 시간보다 일찍 노점을 폈다며 자릿세 명목으로 12만원을 갈취하는 등 2000년부터 6년간 상인 23명으로부터 모두 1억6560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들은 자릿세 외에도 명절 떡값과 휴가비 등을 갈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차는 바다를 보러 간다… 동해남부선의 매력에 빠지다”(세계일보, 1월 12일) 기사에서는 “죽도시장은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 대구 서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재래시장으로 불리는 곳. 점포만 2,600개이며, 노점상도 800명에 이른다. 사람 냄새,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죽도시장은 포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하다”라며 노점상이 늘어져 있는 곳을 ‘관광명소’라 지칭하기도 한다.



어디 이뿐인가. 쌀쌀한 겨울철만 되면 군고구마, 군밤, 붕어빵, 어묵 등 따뜻한 간식거리를 부각하며 노점상이 가지고 있는 서민적인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킬 때도 있다. 또한 TV 드라마에서 가난한 주인공의 부모가 노점을 하는 경우를 어렵잖게 목격할 수 있으며 노점상을 통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노점상하며 더 힘든 이웃돕는 어느 새터민 부부”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2007년 1월 1일자 기사를 살펴보면 노점상에 대한 언론매체가 보이는 정서적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아파트 앞. 청색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가 영하의 추위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율무강정과 가래떡, 땅콩, 뻥튀기가 가지런히 놓인 이 이동식 노점의 주인은 안철수(가명·48) 씨”,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땅콩과 뻥튀기를 팔아 그가 손에 쥐는 돈은 하루 평균 3만∼5만 원.” “노점상은 엄연한 불법. 안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속반에 수차례 걸렸고 그때마다 4만 원의 벌금을 냈다.”


때로는 성공스토리에 기반을 만들어주는 데 노점상은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노점상은 ‘가난’을 절대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대통령 후보들에게 더욱 유효하다. “‘내가 더 못살았다’ 가난 대결?”(조선일보, 10월 18일)이라는 기사처럼 말이다. “이 후보는 자서전과 평소 강연 등에서, 중학교 때부터 경북 포항 죽도시장 등에서 뻥튀기, 붕어빵, 과일 등 각종 노점상을 하며 부모를 도왔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에 와서도 일용직 노동을 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했고, 새벽마다 이태원 재래시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등교(고려대)했으며, 이때 얻은 기관지 확장증과 영양결핍 때문에 군까지 면제됐다는 일은 이 후보가 ‘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할 때마다 즐겨 말하는 소재다. 요즘도 길에서 붕어빵 상인을 보면 꼭 직접 구워본다.”



그날 고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리고 “요즘도 길에서 붕어빵 상인을 보면 꼭 직접 구워본다”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홍보영상물을 통해 중학교 시절 교복을 입은 채 뻥튀기 노점상을 하던 모습을 부각시키며 ‘서민을 대표한다’며 떠들고 다닐 때 즈음, 지난 10월 12일 부인과 함께 13년 간 붕어빵 노점상을 하던 이근재 씨가 고양시 한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건이 있기 전 고양시는 주엽역과 화정역 일대에서 용역직원 300여 명과 공무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노점상 집중 단속을 벌였다. 그러나 이근재 씨의 사망소식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양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언론매체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진 | 참세상


그러더니 10월 16일 이근재 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을 시행한 고양시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자 조금씩 보도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6일에는 “전노련 집회 찾은 민노당 권영길 후보”(<연합뉴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일정을 소개하는 기사로 시작하더니 집회의 물리적 충돌로 마무리를 하였다. “전노련 고양서 시위… 경찰과 대치”(<연합뉴스>), “[단신] 노점상 단속 항의시위 경찰 5명 부상”(), “노점상 3300여명 고양시서 격렬시위”(<조선일보>), “고양시청 앞 전노련 집회… 심야까지 충돌”() 언론매체는 고양시의 무차별적인 노점단속에 대한 문제, 이근재 씨의 사망원인 등에 대해서는 뒷전이었다. 계속되는 집회에도 불구하고 언론매체는 연일 집회에 대한 중계식 보도로 일관하였다. “전노련, 고양시청 앞 또 대규모 시위…충돌 우려”(), “고양시, 노점상 야간시위 앞두고 긴장감 감돌아”(<노컷뉴스>), “전노련 고양시청에서 이틀째 격렬 시위”(<뉴시스>), “노점상 시위… 고양시 일대 교통혼잡”(), “전국노점상연합회 이틀째 시위”() 그러더니 결국 언론매체는 이근재 씨 자살을 둘러싼 공방 및 노점상 단속에 대한 고양시의 입장을 대변하였다[“고양시 ‘노점상 단속 중단없이 진행될 것’”(<조선일보>)].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노점 상인들의 주장은 삭제된 채 전형적으로 집회를 보도할 때 주로 이용하는 스포츠 중계 방식의 내용이 얼마 되지도 않는 기사를 채우고 있다. 고양에서 무슨 일이 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언론으로써의 ABC는 없다. 고양시의 폭력적인 노점 단속의 문제점과 현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그저 죽음과 물리적 충돌에만 시선이 멈출 뿐이다.



‘세련’된 ‘명품족’을 선망하지 마라


노점상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예상된다. 시군구에서 앞 다투어 도시경관 조성 사업을 계획하고 있고, 국제사업 등을 대거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도 빠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는 지난 21일 난데없이 국제산업디자인단체 총연합회 총회에서 2010년도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되었다.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세계디자인수도 지정으로 도시 이미지 개선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서울시, 결국 ‘명품족’을 위한 ‘도시경관’으로 공간의 의미를 왜곡하고, 서민·빈민층의 삶을 위협할 것이다. 그리고 2010년도 초대 세계디자인수도를 뽐내기 위해서 대대적인 도시정비를 할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계적인 ‘디자인센터’를 짓겠다는 야욕을 비롯하여 2009년까지 서울시내의 가판과 구두수선대, 교통카드판매대와 휴지통, 노점상까지 ‘도시미화’를 위해 없애거나 정비하고자 하는 신개발주의의 욕망은 도무지 끝이 없다. 그리고 서울시를 모범삼아 이곳저곳 시군구에서 모델을 만들어갈 것 역시도 뻔하다.


이와 같은 신개발주의는 ‘세련’되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친환경’,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 ‘도시의 미관’ 등 말이다. 따라서 언론매체는 보다 예리하게 집중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세련’된 ‘명품족’을 선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징후 아니 증상이 언론매체에서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삶의 터전과 생존권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신개발주의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노점상을 둘러싼 사회적.문화적 의미와 정책적 대안 등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노점상을 둘러싼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재한 채 그저 노점상에 대한 정서적 측면만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언론매체가 보인다면, 명품아파트에서 살면서 아파트 내 공원과 녹지를 향유하는 ‘명품족’이라는 것을 기자 스스로가 드러내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서울시청사에서 ‘서울광장’ 앞마당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그 결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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