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원천봉쇄, 원천봉쇄당하다

‘집회 상경 농민 원천봉쇄는 경찰 직무법 위반’ 판결에 대하여

지난 3월 10일 충북 제천시 농민회 등 농민단체 회원 20여 명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미FTA 반대집회 범국민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은 농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있는 봉양읍 주민자치센터의 입구를 봉쇄했다. 이에 농민 두 분이 입구를 막고 있는 교통순찰차 1대와 경비 지프차 1대를 파손시켜 구속됐다. 그러나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이전의 판례와 달리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마이너리트 리포트


전직 경찰이었던 한 남자는 지금 경찰에 의해 쫓기고 있다. 경찰에 있을 때 상당한 엘리트였고 지위도 높았던 그가 경찰에 쫓기는 이유는 바로 살인예정자이기 때문이다. 살인예정자? 그렇다. 얼마 전 범죄예측기가 그가 곧 살인을 저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목숨을 걸고 범죄예측기의 예측을 집행했지만, 이제는 목숨을 걸고 예측과는 달리 자기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는 범죄예측기계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예측과는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진리는 그가 범죄예측기의 예측을 집행할 때 집행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항변이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로 인한 선택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인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가’하는 것도 보여준다. 그가 현재 살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곧 살인을 저지를 것이기에 지금 그는 체포되어야 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굳이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절도의 목적으로 준비하여 집을 나선다는 사실을 경찰관이 알게 되었다고 하여도, 이에 대하여 설득하거나 회유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집에서 아예 나가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는 있는가?



어디서부터 처벌하고 금지할 수 있는가


형법 등 국가의 강제력을 규정한 법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문제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결과를 낳았고, 범죄결과를 낳은 그 행위를 행위자에게 객관적으로 귀속시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마디로 이는 어떤 범죄의 결과에 대해 어떤 행위까지 처벌, 즉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인과관계의 폭을 한없이 넓히면 범죄자를 낳은 어머니나 아버지까지 처벌할 수 있을 것이고, 폭을 너무 좁히면 범죄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가 없거나 매우 적게 될 것이다.


형법의 역사를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폭을 합리적으로 줄여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범죄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비난받거나 처벌받았다. 범죄자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차 범죄자 개인의 행위를, 그리고 그중에서도 보다 직접적으로 범죄와 연관된 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인정 폭이 좁혀진 이유는 바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었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공권력의 작용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인간의 행동 중에 범죄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고, 중요한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하거나 금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가 기본권에 관해서 발전한 것이 바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다. 이는 어떤 행위가 제한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해 발생할 해악이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하고, 그 행위로 인해 해악의 발생이 절박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기본권 중에서도 보장의 정도가 강한 정신적인 기본권(언론의 자유, 집회나 결사의 자유 등)의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원칙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이 원칙에 입각하여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의 합헌성을 심사하고 있다.
사진 | 참세상



계속되어 온 원천봉쇄와 상경저지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경찰은 지금까지 대규모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소위 원천봉쇄라는 것을 해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각 지방에서부터 제지하여 왔다. 올해는 한미FTA저지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등을 이유로 대규모 집회가 잇따라 개최되었기에 경찰의 원천봉쇄 및 상경저지 역시 잇따랐다. 특히 올해 초에는 제주도에서 한미FTA저지 집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려는 농민들을 막기 위해 이륙직전의 비행기까지 강제로 세워 세간의 비난을 산 적도 있다.


경찰은 이런 행위들을 하면서 법원이 이를 문제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는 법률적 이유를 들어 왔다. 법원이 이를 문제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2001년 대우자동차 파업 때 시위에 참여하고자 했던 거제도의 노조원들이 저지당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경찰들의 행위에 의한 손해를 배상해 달라고 청구한 것에 대해 법원이 경찰의 행위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을 말한다. 즉, 이 당시 법원은 처음부터 금지된 집회 또는 관할 경찰서장에 의해 금지통고가 된 집회를 개최하거나 금지된 집회에 그 정을 알면서 참가하는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경찰관은 이에 대하여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에 따른 ‘범죄의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경찰관이 노조원들의 상경을 저지한 것은 경찰이 취할 수 있는 예방조치의 범위 내이기에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원천봉쇄할 수 있는가?


확실히 경직법 제6조는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과연 이 사건 원천봉쇄를 비롯하여 경찰이 그 동안 해왔던 원천봉쇄나 상경저지 조치가 구체적으로 위와 같은 법률상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관하여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의 판단을 중심으로 살피도록 하겠다.


먼저 ①“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 법원은 “목전(目前)이라 함은 말 그대로 ‘눈앞에서’라는 명백, 현존성의 의미인 바, 이 사건 원천봉쇄 조치는 집회 예정시간인 15:00경으로부터 무려 5시간 30분 전인 09:30경에 서울에서 150km나 떨어진 제천에서 취해졌기에 농민들이 미리 준비된 승합차로 바로 상경하려 했다는 사정까지 감안한다 할지라도 이른바 불법집회에 참가라는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②‘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법원은 “이 사건 서울집회의 금지통고 이유는 위 인정과 같이 추상적으로 추론될 뿐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입증된 바가 전혀 없고, 금지통고가 된 집회에 참가하려고 준비하는 행위에 불과한 상경행위가 그 자체로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음은 물론, 서울집회가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집회가 교통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하여도 이로써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데다가 위와 같이 경직법은 경찰관이 범죄예방을 위해 관계인에게 경고를 발하고 나아가 그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그 범죄행위의 명백.현존성과 중대.긴급성을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으므로, 집회참가자에 대하여 각 지역에서 출발을 제지하는 이른바 원천봉쇄라는 경찰관의 직무집행이 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권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강제하는 권력적이며 침익적 작용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가능성이 크므로, 경찰권의 발동 및 행사는 반드시 법률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적용함에 있어서도 엄격한 해석이 요구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자의적인, 그리고 현실적 편리함만을 내세운 경찰력의 집행이 국민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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