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투쟁의 주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진보운동

원고 청탁서를 훑어본 바로는 비정규직 철폐의 과제가 진보운동에서 어떤 의의와 위상을 지녔는지 말해 달라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나 나는 원론을 단순히 읊는 글이 무슨 읽힐 맛이 날지 의문이다. 그러니 요즘 이 투쟁이 왜 시원하게 진전되지 못하는지, 우리의 고민을 더 담아 보겠다.



“부탁하지 말고 꾸짖으세요!”


얼마 전 내가 속해 있는 전교조 지회가 한 행사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이랜드노조 어느 분회장이 찾아와 ‘연대’를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연세가 쉰은 넘었음직한, 곱게 늙은 아주머니였는데 어려운 처지를 털어놓는 그분 말씀을 한참 듣노라니 답답한 마음이 일어서 한 마디 댓거리를 했다. “소식을 잘 압니다. 그런데 분회장님은 이랜드 싸움을 생존권 투쟁으로 설명하셨는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더 큰 뜻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연대해 달라고 ‘부탁’하지 마시고, 왜 ‘보장받은 노동자’들이 함께 하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꾸짖으세요.”

사진 | 코스콤비정규지회

또 다른 우울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듣는다. 코스콤 비정규노동자들의 싸움을 코스콤 정규직 노조가 오히려 가로막고 나서자, 사무금융연맹이 얼마 전 참다못해 그 노조를 제명시켜버렸다. 기아자동차 정규노조는 비정규 노조와 통합 합의를 깨고, 직가입한 비정규직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여 노/노 갈등이 벌어졌다. 이랜드 이야기를 하자면 민주노총이 8월에 대의원대회를 열어 ‘이들이 쌀을 팔 돈이라도 대주자’고 결의했건만 돈이 불과 5분의 1밖에 걷히지 않아, 첫 달만 대주고 감감 무소식이다.


왜 이렇게 연대가 되지 않을까? 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싸움을 변변히 풀어내지 못할까? 여러 가지로 짚을 수 있겠으나, 단칼로 자르자면 노동운동의 사상과 기풍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뿌리에 있다. 독점 대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해 왔다는 보수세력들의 손가락질이 불순한 메시지는 섞여 있어도 상당한 진실을 드러내는 비판임을 부인할 수 없는데, 우리 노동운동이 이 지경까지 온 원인을 ‘주체들의 흐리멍덩해진 태도’에서 찾지 않고 어떻게 운동의 진전이 이뤄질까.


이렇게 ‘독하게(?)’ 말하는 까닭은 차별철폐 문제가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1. 11 민중대회에서 권영길 씨는 “비정규 악법을 폐기하고 차별을 없애는 법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설령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과연 그런 법을 만들 수 있을까? 당장 수많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데? 자본가들이 ‘치부할 몫’이 줄어든다는 문제뿐 아니라, 해외 자본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진다는 문제도 있는데?


열린우리당은 다수당이었는데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지금처럼 ‘의회 진출’에 연연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다수당이 되더라도 그런 입법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비정규 차별철폐는 정당 의석수의 문제라기보다 87년 대진출에 비견할 거대한 대중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연대의 마음 없이는 단결도 어림없다


문제는 (자본에 견결하게 맞설) 주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먼저 비정규직 주체! 열악한 처지에 갇혀 있는 비정규직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투쟁을 엄두내지 못했고, 일부 사업장에서만 노동운동이 일어났다. 투쟁이 일어난다 해도, 지금처럼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이 충분히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형편에서는 패배하기 일쑤다. 자본가는 굳게 단결해 있고, 노동자들은 정규와 비정규직으로 날카롭게 분단돼 있는 지금의 지형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비정규직 투쟁의 목표를 ‘당장 노동권(생존권)을 실현’하는 데만 놓는다면 이 투쟁들은 십중팔구 패배하기 마련이다. 당장의 국지전들에서 이기든 지든, 차별철폐 세상을 위해 분기할 투사들을 길러내는 데 목표를 둘 때라야 우리는 조심스레 내일을 말할 수 있다.


협소한 목표는 협소한 노동자들을 길러낸다. 생존권 투쟁만 원하는 노동자는 그 싸움에 패배할 때 운동을 떠난다. 인간해방의 목표를 품고 비정규 차별철폐에 나서는 노동자들이라야 눈앞의 패배를 겪더라도 물러서지 않는다. 어떤 투쟁이든 그 과정에서 주체들이 변혁의 가능성에 눈 뜨고 변혁을 갈망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라야 승리의 단서가 마련된다. 이랜드 분회장이 ‘하소연’ 조로 연대를 요청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도 이들이 아직 당당한 투사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정규직 주체! “이제 노동운동은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들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대체로 맞다. 처지가 덜 어려운 사람은 아무래도 투쟁을 미적거리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정규직 노동자들한테는 기대 걸지 말자’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투쟁의 흐름이 올라오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고, 이들이 함께 하지 않고 노동자가 승리할 수는 없으므로.


민주노총에게 진정성이 있다면 그들이 가진 돈과 일꾼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써야 한다. 미국의 서비스노조는 그런 치열한 조직화 사업을 결단했고 성과도 거두었는데(영화 ‘빵과 장미’) 민주노총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 비정규직들이 민주노총의 주체 세력으로 성장한다면 지금처럼 비정규 투쟁이 지리멸렬해질 까닭이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할 일은 민주노총이 소외받는 노동자들을 과감하게 품어 안도록 사업기조를 혁신해내는 일이요,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을 통해 그런 정치투쟁을 벌여내는 일이다.


지금은 농민과의 계급동맹보다 (정규/비정규) 노동자 간의 단결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그런데 ‘연대하려는 마음’이 먼저 형성되지 않고서는 단결도 언감생심이다. 민주노총 대다수 조합원들에게 연대의 마음이 있었는데도 이랜드 후원금이 그렇게 걷혔을까? 그들이 인간해방의 갈망을 널리 공유할 때라야 ‘연대의 마음’도 싹터 오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특집의 결론에 약간 수정을 가하고 싶다. “사회 진보의 신념을 품고, 차별철폐에 노력하자”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미 ‘진보’는 구 열린우리당 세력이 참칭하지 않았는가. 다음과 같이 외치자. “자본주의 폐절과 사회주의 실현의 포부를 품어라! 그래야 비정규 차별철폐의 싸움에 본때 있게 나설 수 있다! 혁명 없이는 개량도 없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은교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연구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