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노동의 권리를 찾아서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투자를 활성화해서 7%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한다. 지금보다 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친기업적인 정책과 행보에 노동계의 눈총이 따가웠는지 지난 달 23일에는 한국노총을 찾아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엔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며 노동계를 어르고 달래는 제스처를 보였지만, 진심으로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불안정노동 철폐연대’는 이명박 정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신자유주의적인 관리나 배제는 계속될 거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그 강도는 더 강해질 거라는 우려와 함께.



IMF 외환위기와 파견법


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불안정노동의 문제점을 알리고 노동권을 쟁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MF이후 기업들은 효율적 운영을 위한 체중감량으로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리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파견법을 도입해 비정규직을 대량 생산했다. 파견법 상 파견근로자는 2년이 되는 해에 직접고용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자본은 당시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지난해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대량해고 됐듯이 파견법 시행 2년이 되는 해인 2000년 7월을 앞두고 파견노동자들이 해고되어 길거리로 쫓겨났다. 사회단체들은 ‘파견용역노동자 노동기본권쟁취와 간접고용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파견철폐공대위)’를 구성해 파견법의 문제에 대응했다. 해고된 방송사 비정규노조, 파견업체 제니엘이 길병원에 파견한 노동자들을 상담하며 파견법의 문제점을 사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레미콘 노동자 등 점점 비정규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하는 사례가 늘었다. 2000~2001년 사이 비정규노동자들이 해고가 많아진 만큼 부당함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도 잇따랐다.


정지현 사무처장은 “그런데 단순히 파견법 문제만이 아니겠구나, 여러 가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겠구나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문제의식을 넓혀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라며 2002년 9월 불안정노동철폐연대(이하 철폐연대)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노동이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철폐연대의 활동은 이름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 지원하고 그 투쟁의 의미를 사회화시키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관련 법안과 제도 및 정책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름이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철폐잖아요. 주요 활동이 비정규직 문제를 폭로하는 것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노동이 불안정화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해 있어요.” 정 사무처장은 철폐연대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노동자 등을 비롯한 노동의 불안정화 양상에 대해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알려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 정규직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 해고나 외주화, 비정규직화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결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될 당시 철폐연대는 노조의 조직화부터 농성까지, 투쟁 현장에 함께했다. 철폐연대 사무실에는 초창기 조직된 노조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방송사 비정규 노조 주봉희 현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삭발 사진,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 투쟁 시 연대 공투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명사진만한 얼굴사진을 모자이크한 액자 등. 정 사무처장은 청소용역이나 간병인 노조의 나이 드신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시니까 편안함 같은 게 있었고 질기다는 느낌, 끝까지 함께 할 거라는 신뢰감 같은 거 많이 받으니까…” 그녀들과 함께한 투쟁들이 정 사무처장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노조의 수도 늘어나고 전국화 되는 추세라 모두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지난날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민주노총의 관심 밖이었지만 지금은 자기과제로 받아 안아 조직하는 의미도 있으니 말이다.


비정규노조를 조직하는데 있어서의 큰 난관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불확실성과 생계문제다. 정규직 투쟁의 경우 대개 그리 길지도 않을뿐더러 투쟁기간 동안의 급여지급에 큰 문제가 없다. 혹여 해고되더라도 일정정도 지원이 있다. 반면 비정규직 투쟁은 투쟁자금을 모아놓고 시작을 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면 2~3년이다. 정 사무처장은 “투쟁의 강도를 낮추면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봤어요.”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직도 어려울뿐더러 투쟁기간이나 재정도 만만찮은 비정규직 싸움. 철폐연대가 함께 해 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교육과 계속 붙어있으면서 신뢰감을 주는 거죠.” 정 사무처장은 이것만으로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하는 속에 서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한다. 신뢰야말로 서로 지치지 않게 격려하며 투쟁하고 연대해 가는 원천이므로.



“끊임없는 교육과 신뢰감을 주는 거죠.”


비정규직을 조직하는데 교육은 필수적이다. 파업에 들어간 사업장 내 교육은 물론 일상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이는 문설희, 박현진 활동가의 몫이다. 비정규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조,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곳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그 내용은 매우 방대하다. 우선 비정규직이 무엇인가, 비정규직의 개념과 위험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이 왜 필요한지 투쟁의 의의와 필요성을 알린다. 비정규직법안의 문제점, 비정규직의 권리보장과 관련한 법, 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이런 입법안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게 왜 필요한지 이야기 한다. 또한 이런 과정에 어떻게 주체들이 모여 자율적인 활동을 일구어내야 하는지까지 고민하고 교육했다. 점차 교육내용이 분화되어 지금은 ‘비정규직과 건강권’처럼 세부주제로도 접근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게 그 사람을 스스로 주체가 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을 때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끝나는 것으로는 안 되잖아요.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문설희 교육부장은 교육의 방식, 관점에 있어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6년 제1회 교육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강의식 방식을 넘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9일 진행된 2차 워크숍 또한 교육에 참여할 사람들과 같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교육을 진행했다. 아직 많은 것을 하지는 못했지만, 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비정규 노동운동의 다양한 시도


철폐연대는 지난해 비정규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했다. 비정규노동운동에 대한 지각변동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란다. “비정규, 계약직이라는 게 법에 명시된 게 아니었잖아요. 근기법 23조에도 보면 ‘기간이 없는 근로’를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있고. 그런데 비정규법안이 통과된 게 기간제 노동자가 있다는 걸 전제로 따로 관리하겠다는 것이고… 법이나 제도를 통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거라 투쟁방향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사무처장은 고민이다. 이전에는 법에도 없던 비정규직을 자본이 양산한 것이라고 문제제기할 수 있었던 반면 법에 명시된 지금의 주장과 투쟁방향은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대부분의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되면서 비정규노조의 형태나 위치도 달라졌다. 산별노조 안에서 비정규 노조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역시 고민이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예전과 같은 방향으로 풀 수는 없을 거 같고 여기에 더해 자본의 면역력이 늘어난 만큼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략도 새롭게 마련해야하고….” 정 사무처장이 철폐연대의 숙제를 죽 늘어놓는다.


숙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인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불안정 노동에 처한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내몰리는데 인권운동, 빈곤운동과의 연대가 쉽지 않다. 다른 운동영역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연대활동 또한 철폐연대의 과제다.



불안정한 활동환경도 변했으면


그나마 다행(?)인 건 1~2인 활동가체제인 단체들에 비해 활동가가 많다는 것이다. 8명이나 되니 서로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철폐연대는 후원회원과 활동회원을 포함해 60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역모임을 비롯해 각종 회원모임이 있다. 회원들과의 소통이나 신규회원 교육, 소식지 발행 등은 3인의 조직위원 활동가들이 담당한다. 정 사무처장의 활발한 회원모임, 회원과 함께하는 여러 토론회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여느 단체와 마찬가지다. 띄엄띄엄 지급되는 활동비에 생계유지용 직업을 갖는 것 또한 그렇다. 불안정노동 철폐만큼이나 활동가들의 불안정한 활동환경도 변했으면 싶다.


철폐연대가 지향하는 노동환경은 기존의 정규직화 모델은 아니다. 상대적인 안정을 위해 ‘정규직화 쟁취’라는 투쟁구호를 외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비정규직, 계약직이 하나의 신분이 되고 계급이 되어 차별요소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정규직화 쟁취는 유효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권, 노동3권의 보장은 물론 육체적 건강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폐연대는 어제의 투쟁을 반면교사로 불안정노동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법안 폐기투쟁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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