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형사소송법, 인권에 눈을 뜨다

바뀐 형사소송법의 주요 내용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은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15회에 걸친 일부 개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피의자·피고인 그리고 피해자의 인권옹호 측면보다는 문자 그대로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를 규율하는 것에 급급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4월 30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법률안을 의결하였다. 형사사법의 기본법인 형사소송법이 차지하는 비중에도 불구하고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연구·검토를 거쳐 전면적인 개정이 된 적이 없었다가 이번에 비로소 전반적인 검토를 통한 개정이 이루어졌다. 형사소송법이 드디어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의 주요 내용



가.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1)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보장 등
변호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도록 하였고, 수사기관이 신문에 들어가기 전에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변호인 조력권을 고지하는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였다. 또한 수사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수사과정 기록 제도를 도입하여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피의자·참고인의 조사 장소 도착 시각, 조사 시작 및 종료 시각, 그 밖에 조사과정의 진행경과 확인에 필요한 사항을 조서 또는 별도 서면에 기록한 후 편철하게 하였다.


(2) 인신구속 제도의 개선
우선 긴급체포 제도를 개선하여 긴급체포 후 지체 없이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긴급체포 후 피의자를 석방한 경우에는 석방사유 등을 법원에 사후 통지하도록 하였다. 이는 기존에 대부분 긴급체포한 피의자를 40시간 정도까지 최대한 체포상태로 둔 후에 일괄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관행을 없애고 최대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하도록 하는 취지이다.
한편 보석 조건을 다양화하여 현행 보증금 이외에 서약서 제출, 보증금 납입 약정서 제출, 주거 제한, 출석보증서 제출, 출국 금지, 피해 공탁 또는 담보 제공, 보증금 납입, 기타 조건 등 다양한 보석 조건을 도입하여 피의자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건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구속 전 피의자심문’ 제도를 개선하여 피의자가 신청한 경우에만 한정하였던 것을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경우로 변경하고, 구속 전 심문조서를 공판조서에 준하여 작성하도록 하였다.



(3)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 확립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공판준비 절차를 도입하여 공판기일 전에 쟁점 정리, 입증 계획을 수립하거나, 공판준비기일의 개최가 가능하도록 하였고,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여 공소제기 후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검사에게 공소 제기된 사건에 대한 서류 등의 열람·등사 신청이 가능하고, 검사도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관련 서류 등의 열람·등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집중심리제도를 명문화하여 2일 이상 심리가 필요한 경우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연일 개정하고, 변론종결 기일에 판결을 선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한편 공판정의 좌석위치를 획기적으로 변경시켜 검사와 피고인·변호인 좌석은 서로 마주보게 위치하고, 증인 좌석은 법대 정면에 위치하며, 피고인 신문 시에는 피고인도 증인석에 앉도록 하였고, 구두 변론주의 원칙을 명문화하였다.



나. 증거법 체계 정비



(1) 증거재판주의 명문화 등
증거재판주의를 명문화시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의한다고 선언하였고,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집한 증거의 사용을 배제한다고 하는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을 명문화시켰다. 또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요건을 개선하여 조서의 진정성립 인정은 피고인의 법정 진술 이외에 영상녹화물 기타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도록 하는 증명체제로 전환하고, ‘특신상태’를 증거능력 부여 요건으로 추가하였고, 피의자를 조사하거나 조사에 참여한 자의 법정 증언을 허용하였다.



(2) 영상녹화 제도 도입
피의자 진술의 영상녹화와 관련하여 촬영고지 후 영상녹화가 가능하나, 조사의 개시부터 종료까지의 전 과정 및 객관적 정황을 녹화하도록 하였고, 영상녹화물의 증거사용에 있어서 공판기일에 피고인 또는 피고인 아닌 자가 진술함에 있어 기억이 명백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기억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다. 범죄 피해자 보호조치



(1) 재정신청 전면 확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피해자 측에서 고등법원에 바로 기소를 구하는 제도인 재정신청제도에 있어서 대상범죄를 기존에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중 직권남용·불법체포감금·폭행가혹행위죄에 한정하던 것을 모든 고소사건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재정신청을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검찰 항고절차를 거쳐야 하나, 항고 후 3월 이내 미결정 사건, 공소시효 임박사건(1개월) 등은 예외로 하였다.



(2) 공소시효 연장
범죄가 있은 후 일정 기간 동안 기소하지 않고 있으면 범죄자에 대한 국가의 소추권이 소멸하는 공소시효 제도가 기간이 짧아 범죄자를 부당하게 보호한다는 비판이 있어 공소시효 기간을 연장시켰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 25년, 무기징역·금고는 10년 → 15년, 10년 미만 징역·금고는 5년 → 7년 등으로 각 연장되었다.



(3) 신뢰관계 있는 자의 동석 등
우선 피해자를 법원이 증인으로 신문하거나, 수사기관이 조사하는 경우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할 수 있게 하고,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의사 결정능력 등이 미약한 피해자의 경우 필요적으로 동석하게 하였고, 아동 등 일정한 범위의 피해자의 경우 비디오 중계방식 또는 차폐장치를 통하여 증인을 신문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피해자, 법정대리인 등의 신청이 있는 경우 공소제기 여부, 공판 일시·장소, 재판 결과, 구금 관련 사실을 신속히 통지하게 하였고, 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강화하여 법정진술권의 주체를 피해자 외에 법정대리인, 피해자 사망시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를 포함하도록 확대하고, ‘피해의 정도와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대한 의견 기타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였다. 또한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 보호 또는 신변 보호를 위하여 비공개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4) 재판기록 공개
피해자 및 그 변호사 등은 권리구제 필요성 등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판기록의 열람·등사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한편 재판확정기록의 열람·등사와 관련하여 누구든지 ‘권리구제, 학술연구, 공익적 목적’이 있는 경우 재판기록의 열람·등사 신청이 가능하나, 심리 비공개 사건, 국가안보, 사생활 비밀·영업 비밀 침해 우려, 소송관계인의 부동의 등의 경우에는 열람·등사 제한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남겨진 과제


이번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 과정에 변호인 참여를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인신구속 제도를 개선하며, 공판중심주의 심리절차를 법문화하는 등 형사피의자·피고인 그리고 피해자의 인권이 일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를 부인하더라도 영상녹화물 등 다른 방법에 의하여 조서의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어 조서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확장시켰고, 특히 경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이전 판례에 의하면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던 데에 비하여 조사하였던 사법경찰관이 공판정에 나와 신문내용에 관하여 증언을 하게 되면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관행과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를 확인하는 ‘조서재판’이 강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또한 재정신청을 원칙적으로 고소사건에만 한정하여 고발사건을 제외하고 있고, 재정신청인에게 피의자의 소송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도록 하며, 지정변호사제도를 폐지하고 검사가 공소를 유지하도록 한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이번 개정으로 형사절차에 관하여 피의자·피고인과 피해자의 인권에 있어 큰 진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개정내용이 법문에 머물러 있지 말고 현실에서 적극 활용되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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