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성폭력범죄, 국가형벌의 강화가 답은 아닙니다

‘키라’에게


지난 5월에 열렸던 17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를 기억하지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 열린, 전례가 없었던 국회였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한미 FTA와 민생법안들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열렸던 그 임시국회에서 저로서는 막고 싶었던 3가지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첫 번째 법안은 13세 미만 여성 강간죄의 법정형을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상향 조정하고 13세 미만자를 성폭력하고 살해한 자에 대한 법정형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명확히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자에 대한 법정형을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입니다. 두 번째 법안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거나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범죄자에게 붙이기로 한 전자발찌의 부착시기를 10월 26일에서 9월 1일로 두 달 가까이 앞당기고 부착기간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일명 전자발찌법)’ 개정안이고 세 번째는 소아성기호증 등 정신성적 장애를 가진 범죄자를 15년 내에서 수용 치료할 수 있게 하는 ‘치료감호법’ 개정안이 그것들입니다. 모두 성폭력 범죄자들 특히 13세 미만의 아동들에 대한 성폭력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반영된 법안들입니다.


올해 초 혜진이와 예슬이의 가슴 아픈 죽음에 이어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의 동영상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저도 그 충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답니다. 도대체 왜 저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어쩜 아이들에게 참혹한 폭력을 쓰고 그 끔찍한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저런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사형폐지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지? 순간순간 많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지요. 힘든 시기였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 한 명 찾을 수 없었지요. 6년차 인권활동가로서 과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창피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고민을 길고 깊게 하기도 전에,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기자들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지요. 정부와 일부 의원들이 형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유영철 등의 사형집행설 등이 흘러나온 후부터 고민을 정리할 틈도 없이 기자들과 통화하고 대응을 준비하고 성명서를 쓰기에 바빴습니다.


사형폐지 운동과 피의자, 구금시설 수용자 인권옹호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맞은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우군은 없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런 이들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일간지 한두 곳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천주교인권위원회 홈페이지와 사형폐지 홈페이지에는 수십 개의 비판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글은 당신이 혜진, 예슬이의 부모라도, 당신의 여동생이 그런 일을 당했어도 사형폐지를 주장할 수 있겠냐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이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심한 욕설과 모욕적인 말들이 있었지만 별로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나도 그를 용서할 수 없었을지 모르니까요. 아마 그 일은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답은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가해자 인권’만 옹호하고 ‘피해자 인권’은 등한시하는 편협한 인권활동가라는 말에는 꼭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가해자 인권’이란 말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권운동이 이야기해왔던 것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의자 인권, 구금시설 안에서 미결수용자와 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인권입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니 통틀어서 ‘가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말해 왔던 것은 피의자 신분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 수용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이를 ‘가해자 인권옹호’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용어상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요.


피해자 인권을 등한시 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사실 좀 억울해요. 법무부 인권국에 구조지원과가 생기고 각 검찰청 산하에 민간단체의 형태로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생기게 된 것은 고작 3~4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런데 사형폐지운동을 하는 많은 종교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피해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일상 복귀를 위해 많은 애를 써왔어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외국 사례들을 연구하고 직접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어요. 이 일을 처음 시작하신 사형수들의 대모라고 불리는 조성애 수녀님은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 갔다가 문전 박대를 당하시고 몇 시간씩 집 앞에 서 있기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요즘은 피해자 가족들의 자조모임도 만들어졌고 피해자 가족들이 세상과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신적, 경제적 안정과 함께 제도와 시스템으로 그들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들의 인권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언행에 깃들어 있는 가부장성 때문에, 반성폭력 운동을 깊게 고민해보지 못한 내 부족함 때문에, 이 문제는 내게 늘 딜레마였습니다. 경찰이 성폭력 피해여성의 진술을 취조하듯 캐묻고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몇 번이고 되물어 기어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해자와 3자 대면을 시키면서 가해자의 뻔뻔한 큰소리를 옹호해주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운동사회 안에서도 성폭력이 빈번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지요.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지요. 성폭력 사건의 분명한 가해자들인데도 뻔뻔하게 여전히 활동하고 있거나 시간이 흘러 사건이 잊힐 때쯤 되면 은근슬쩍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들도 종종 목격합니다. 법으로 할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응징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지요.


성폭력범죄자들을 비롯한 모든 범죄자들은 법이 존재하는 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 피해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겠고요. 하지만 저는 강력한 형벌체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범죄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또 미리 계획된 범죄가 아닌 경우 내가 이 일로 인해 받게 될 법정 형량 등을 고려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형벌의 강화는 범죄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정부가 범죄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로만 돌리고 빠져나가려는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항상 형벌의 강화였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입장을 표명하게 되면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내 전화 통화 내용을 엿(?)듣고 있던 택시기사님으로부터 “왜 그런 인간들을 사형시켜야하는가”란 제목의 일장연설을 시작하시고 동아리 후배들은 “선배가 하는 일중에 사형폐지 운동만은 동의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성폭력 처벌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이야기들 하십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으로 구치소에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성 판사의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으면 ‘곱징역’을 산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여전히 법관들 중 남성이 많고 사회적 분위기가 성범죄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는데 법원이 너무 관대하기 때문에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도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징역 3년을 받을 일을 했는데 징역 2년을 받았다고 해서 ‘겨우 징역 2년밖에 안 받으니까 다음에 이런 나쁜 짓을 또 해도 되겠구나’하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그동안은 징역 2년을 받았던 범죄에 징역 3년을 선고한다고 해서 ‘징역을 1년 더 살게 되면 너무 무서우니 이런 짓을 저지르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겁니다.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면 그 사람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 사람이 범행을 저지르려고 할 때 막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수치심으로 다시는 재범을 저지르지 않게 될까요? 저는 그냥 순간 후련한 것 말고 어떤 변화가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금은 단지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벌이 강화된 것이지만 이는 더 넓게 많은 범죄들에 대한 강력한 형벌체계 형성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형벌이 강화되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경찰과 검찰이 다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얼마 전 인권단체들과 반성폭력운동을 해온 단체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는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정부의 형벌권 강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갔었는데 아동성폭력범죄의 예방을 위한 대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거기서 미묘한 입장 차이들을 확인하기도 했고 결국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된 의견서를 발표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공간이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저는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이제 제가 풀리지 않던 부분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자연스레 제 논리도 풍부해지고 내공도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키라에게 “왜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는가?” “국가 형벌권의 강화가 어떤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성폭력 범죄를 얼마나 혐오하며 성폭력을 ‘자상한 애정표현’이나 ‘격렬한 섹스’정도로 생각하는 인간들을 용서하지 않으며 살아가는지 키라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난 여전히 13세 미만의 여성아동을 강간 살해한 범죄인도 사형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전과 14범인 사람이 출소하더라도 전자발찌를 채우는 일은 반대합니다. 아동성폭행이 일종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법이 정한 형벌을 다 치룬 후 다시 치료감호소에 15년이나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지요. 직장 내 성희롱 처벌이 기업의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그 처벌을 완화해달라는 기업인들이 있고,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유죄 판결을 받아도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불법 여성 접대부를 고용한 술집의 사장이 온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예능프로에 계속 나와 인기를 누리고, 성매매업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주인이 대통령인 나라. 이런 사회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성폭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난 생각해요.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그 개인에게 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범죄에는 우리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가 이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함께 치유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성범죄를 줄이는 일도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를 일상에 적용시키는 일도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자주 만나서 얘기해봅시다. 언제 다시 키라의 그 환상적인 기타연주를 들으며 옛날 노래도 부르고 술 한 잔 하면서 허심탄회한 속 이야기 나눌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명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