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모욕당한 사람들의 잔인한 봄

올해 2월도 끝자락으로 달려갑니다. 오늘이 2월 26일이니까 2월도 이제 겨우 이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매우 불안한 상황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체포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어딘가로 몸을 피하기도 했고, 용인 둥지골 수련원에서 열리고 있는 인권활동가대회에도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인권활동가들과 만나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술 한 잔 하며 의논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조차 포기해야 했습니다.


결국 조금 전에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은 제가 아니라 용산범대위(용산참사에 대응하기 위해 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저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의 다른 사람 둘에 대해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와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범국민추모대회가 예정되어 있는 2월 28일 이후에 체포영장을 청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며칠 뒤 저는 용산범대위의 활동과 관련해서 체포당하고 구속될지 모릅니다. 시위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으면 수배 상황을 맞게 되겠지요. 제가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것은 두렵지 않고 각오도 되어 있지만, 같이 만나보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에 들어가 본 지가 너무도 오래되고, 책상 정리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군요. 우리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큰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그 아이가 생일선물 대신 아빠와 함께 삼겹살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 작은 약속마저 지키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큰 아이는 삼겹살보다는 집에도 못 들어오는 아빠와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하고 싶어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곧 고등학교, 중학교 2학년이 될 우리 두 딸들이 의연하게 아빠가 가는 길을 맞아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구속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됩니다.



하나도 풀지 못한 용산참사


이런 일들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건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남아 있을 철거민 유가족들입니다. 지난 2월 20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참사 한 달을 맞는 촛불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날씨가 하도 추워서 제대로 말을 다 잇지는 못했는데, 참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이명박 정권은 돌아가신 분들 앞에 한 마디 사죄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검찰 수사본부를 구성해서 20일 동안 수사한 결과는 철거민들이 집단적으로 공모하여 화염병을 던져서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한 명의 경찰 특공대원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는 것이었습니다. 5명이나 되는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의 진압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것이었고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 수사결과를 범대위는 막지 못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피해, 마지막 협상을 위해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은 스스로 자폭한 테러집단으로 매도되었습니다. 망루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하였던 이성수 열사와 같은 분들이 왜 참혹하게 불에 타 죽었는지에 대해서 어떤 해명도, 설명도 없는 그 수사결과를 보면서 유가족들은 얼마나 울어야 했습니까.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잃은 유가족들에게 이 정권이 보여준 것은 시종일관 죽은 이와 남은 이들을 모독하고, 고통을 주는 짓뿐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물었습니다. 왜 사람이 그 속에 있는데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감행했냐고, 망루를 짓고 내려올 철거민들은 옥상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들이 스스로 불을 내서 목숨을 끊었다니, 그리고 내 남편과 아버지의 생사도 확인해주지 않은 채 서둘러 강제 부검한 이유에 대해서, 시신 확인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 불에 타 죽었다는 이들의 몸에서 나온 너무도 생생한 신원확인이 가능한 유품들에 대해서, 그리고 용역깡패가 경찰과 합동작전을 벌인 것에 대해서, 삼성과 대림과 포스코 등 시공업체와 정비업체와 철거용역업체와 구청과 맺은 비상식적인 유착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울부짖으며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와 멸시와 매도뿐이었습니다.


다섯 분의 영정이 나란히 모셔진 분향실에 이제 추모행렬도 뜸합니다. 매일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리는 촛불추모문화제도 백 명이 넘지 않습니다. 매번의 범국민추모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서 열리고, 급기야 지난 2월 21일에는 유가족이 폭행당하고 영정이 박살났습니다. 마음은 초조하기만 한데, 이러다가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용산 사건은 허다한 사건 중 하나로밖에 취급되지 않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몇 킬로미터나 줄을 서서 추모했는데, 여기는 다섯 사람이나 죽었고, 병원에는 부상된 이들이 있고, 이충연 용산 4지구 철대위원장은 돌아가신 아버지 영전에도 오지 못한 채 부상당한 몸으로 구속되어 있는데도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용산 4지구에서 용역깡패들이 참사현장에 미술인들이 내걸었던 걸개그림을 경찰의 비호 하에 철거하고, 다시 철거민들을 폭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6명이나 죽었는데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는 채로 철거와 재개발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한 술 더 떠서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재개발 사업에 속도를 붙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란 자들은 농성 철거민들을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이라며 막말을 쏟아냅니다. 참사 사건의 배경이 된 재개발 관련법과 제도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겨갈 건설자본과 그와 유착된 정치집단은 숨바꼭질하고 있고 필시 정치적 판단을 통해서 경찰 특공대까지 내세워 강제진압을 결정했던 그들은 아직도 법과 질서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군포 연쇄살인사건으로 용산참사를 덮으라는 청와대 보도지침 사건도 흐지부지 지나가 버리고 있습니다. 단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하고, 청와대 행정관 하나가 사직한 것으로 끝낼 수 없는 이 사건은 오늘 우리 사회, 이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보다 더욱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성, 반민주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시대의 단면과도 같은 사건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폭력으로 배제되고 내몰리는 사람들


용산 철거민 살인은 여러모로 폭력의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철거민들의 생명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소모품인 “경찰 하나 죽은” 것이, 수족처럼 움직일 김석기 내정자의 사퇴만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철거민들의 생명도 경찰의 생명처럼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진압이 시행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경찰이 철거민들의 생명을 생각하고 진압작전을 펼쳤더라면 그렇게 서둘러서 무리한 특공대 투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안전 매트리스라도 준비했을 것이고, 최소한 1차 발화 이후 진압작전을 중단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 철거민들이 죽은 뒤에도 그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보았다면 매우 정중하게 시신을 다루었을 것이고, 부상자를 처리했을 것이고, 유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들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철거민들과 같은 민중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차별적인 인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건설사 사장 출신입니다. 지금도 건설현장에서 한 해에 몇 백 명이 죽어나가는데 예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밤샘 공사를 밥 먹듯이 했던 그 시절에 노동자 몇 명 죽는 것에 연연하다가는 돈만 날린다는 인식이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법과 질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무마하기만 합니다.


그에 따라 철저하게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겠다고 다짐한 경찰이 나섰고, 아마도 정권 위기 상황을 대규모 검찰수사로 모면하겠다는 수사기획이 세워지지 않았을까요. 이미 내려진 결론에 따라 검찰은 수사를 착수했고, 그 결론대로 따라갔습니다. 언론이 쏟아냈던 수많은 의혹은 그대로 덮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은폐수사, 편파수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이 이번 사건의 본질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심지어는 진보진영의 일각에서도 권력의 폭력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불법이고, 폭력이기 때문에 이 사건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양비론적인 시각이 현재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마련이라는 요구에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사실 권력과 보수언론이 쳐 놓은 폭력 프레임은 이번 사건에서만이 아닙니다. 경찰과 검찰의 폭력, 그리고 이를 승인하는 법원의 판결로 정작 폭력에 내몰리는 것은 생존권을 비롯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난한 국민들입니다. 언어와 구조적 폭력으로 가난한 이들을 강제로 배제하는 일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조그마한 폭력은 금세 체제를 전복할 만한 테러로 규정되고는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폭력을 동등하게 비교하고, 그러므로 둘 다 문제라고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폭력 프레임, 결국 이 프레임은 구조적 폭력을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폭력은 이 사건의 몸통을 은폐하는데도 철저하게 이용됩니다. 용산 4지구를 포함하여 국제빌딩 일대의 개발을 통해 건설시공업체들에게 돌아갈 개발 이익은 대강 4조 원대로 추정됩니다. 재개발 지역에서 모든 돈은 건설시공업체들에서 나옵니다. 정비업체니, 철거용역업체니 하는 것들은 시공업체들의 철저한 수하일 뿐입니다. 행정기관은 당연히 유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개발 이익이 정치권으로 흘러가서 비자금으로 조성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재개발 사업은 좁은 지면에 모두 언급하기 어려운 복마전입니다. 그렇다 보니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보상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내모는 일에 혈안이 되어 조직폭력배를 동원합니다. 그렇게 동원된 조직폭력배와 상대해야 하는 철거민들은 공포의 시간을 버텨내야 그나마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입자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더욱더 힘들게 다가옵니다. 세입자들은 거의 알거지로 쫓겨날 판이니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전철연 회원들 중에는 노인층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이상림 씨는 칠순 노인이었고, 밤샘 규찰을 서며 순천향병원을 지키는 60대 전철연 회원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개발자본과 폭력배와 아마도 그를 뒷받침해주는 정치세력만이 이익을 보는 용산 4지구 개발을 중단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폭력 없이 지역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재개발 계획이 세워지고, 그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 용역들이 물러나야 하고, 경찰은 공정한 법집행자의 위치로 돌아와야 합니다. 시청과 구청이 나서서 이 지역에서 갈등과 배제의 모델인 재개발의 모델을 상생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계획과 일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목숨 여섯이나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은 것에 값할 수 있는 거겠지요. 국회는 재개발과 관련한 법제를 재검토하고, 정부는 현행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인간을 중심으로,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틀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용산 4지구에서조차 재개발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갈등이 재연되고, 폭력이 난무할 것이고, 또 다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게 됩니다. 용산참사의 해결 없이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지난 1년 동안 너무도 분명하게 확인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저항권을 발동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려고 합니다. 그 일로 인해서 저의 신변은 위협받게 된 것이겠지요.


이제 글을 줄이고 내일의 투쟁을 준비하러 떠나야 할 때입니다. 올해 상반기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용산참사 문제가 묻히지 않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을 구조적인 폭력으로 강제하는 이런 일을 거둬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용산참사가 잊히지 않고 늘 새롭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 안녕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외롭지 않게, 죽은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들과의 연대를 진지하게 실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일에 어디에 있든 늘 함께 하며 살겠습니다. 그럼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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