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병신, 애자, 쯧쯧… 그리고 김형수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
- J.위클리프, 영국 종교개혁 선구자




글 제목으로 마음이 불편하고 눈길 주기가 부담스러운 분들께 먼저 사과를 드린다. 하지만 그런 분이 있다면 여전히 이 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알 수 없는 부담은 장애인에 대한 현실인데, 많은 지식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 스스로는 의식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이 말들은 때때로 종로에서, 실내 수영장에서, 시골 장터에서 늘 또 다른 이름처럼 불리는 사람들의 반응어(語)들이다. 바로 내가. 나에 대한 형이나 동생, 아저씨라는 호칭보다 솔직히 이런 말들에 더 익숙하다. 나를 처음 보고 선배나 후배라는 생각보다 ‘어, 장애인이군’ 하는 이미지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다음, 나의 나이와 지위로 나를 어떻게 부를 지를 고민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 길을 느낀다면 비장애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애인 당사자의 피해의식일까? 아니면 나의 오해이자 단정일까? 과연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 장애를 더 궁금해 할까? 내 나이를 더 궁금해 할까? 내 이름을 더 궁금해 할까?


알몸이 보이는 목욕탕이나 해수욕장, 또는 어느 버스에서 사람들이 힐끔힐끔 두려움에 떨며 내 주위를 떠나는 경험이 사라진 것은 불과 10년 전이었다. 나는 병을 옮기는 신체를 가졌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병신(病身)이라고 부르는구나, 하는 것을 사춘기도 되기 전에 구체적인 생활과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실제로 그 사람들의 반응대로 옴이라도 옮기는 전염체의 ‘병신’인줄 알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까?


한때 저 용어들은 신문에서 아무 문제없이 올랐던 호칭이었고 사람들 입으로 쉽게 뱉어지는 말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그 말을 듣는 누군가를 욕보이거나, 화나게 하거나, 피해의식이 생기게 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보다는 우월감을 얻어야 할 때 쓰는 비속어, 육두문자가 되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불구자’와 같은 말들을, 그것도 배운 어르신들이-동정심이든 거친 호기심이든-나에게 내뱉을 때 이런 단어밖에는 아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문제가 될까?


미국 영화 (2008. 한국제목은 잠자리 맨)를 보면 유명한 장애인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온갖 비속어를 내뱉으며 자기비하를 일삼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패러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가끔 등장해서 사회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미국 영화의 개봉 이후 호킹 박사나 장애인 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소송을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왜 그럴까? 외국의 경우 개그의 소재로 장애인이 등장해도 별문제가 없는 것은 어쩌면 누가 보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라고 인식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면을 폭로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의 장애를 장애인 개인의 게으름이나 실수로 치부하고 그 자신의 장애가 인격으로 동일시됨으로써 자학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어느 유명한 코미디언의 말마따나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걸 볼 때 함께 웃어 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항상 논쟁이 되는 것 아닐까?



낙인을 찍더라도 꿈은 꺾지 마라


어릴 적에 나는 주위 어른들로부터 늘 시계 고치는 기술을 배워서 시계방이나 차리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받고 자랐다. 나는 이 말이 어찌나 듣기 싫었던지 길거리의 시계방조차 쳐다보기 싫었다.


어머니와 함께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대학에서 학생회관에 앉아 있을 때 자신의 종교를 믿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는 선교를 접하게 되면 그 동안 고통을 겪으며 병원을 다닌 것들을 그 사람들이 무시하는 태도가 너무나 불쾌했고 기적 운운하는 것도 매우 모욕적이었다. 장애가 내 인생의 멍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내 ‘장애’를 구원과 기적이 필요한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을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에게 가장 민감했던 말은 어느 친했던 친구의 말이었다. 내가 스쿼시라는 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자 대뜸 “너에게 스쿼시는 불가능하잖아? 위험해”라고 친구는 말한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하도 육두문자도 아니었지만 철들고 나서 가장 마음에 상처로 남는 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능력과 나의 장애를 고려해서 애틋하게 배려한다고 한 말이겠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내 꿈을 공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그 친구가 상상력이 부족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사회 지도층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잊을만하면 하시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말들이 당사자들에게 더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모욕을 배려심과 동정으로 은폐하면서 오히려 그런 것들을 널리 퍼뜨리고 사회적으로 교육시키기 때문이다. 근래 가장 유명한 사건은 이명박의 장애인 낙태발언이었지만 일상적으로 영향력이 큰 것은 각종 종교 설교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그 이데올로기에 따라 설교 시간에 하는 발언들일 것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장애는 기적과 구원의 대상이고, 어느 종교에서는 죄이자 업이라고 말하는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문둥병이라고 잘못 부르는 한센병은 현대에 와서 의학적으로는 단순 전염성 피부병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문둥이’란 단어는 그 어떤 모욕적인 말이나 차별적인 말보다 그 힘이 세다. 문둥병이란 호칭은 단지 당사자에 대한 차별을 넘어 아직까지도 자식들이 파혼을 당할 수 있는 세대 간 차별이나 전 지구적인 모욕을 야기한다. 오죽했으면 지난 1월 일본의 유엔친선대사가 “폐기된 용어를 차별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문둥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촉구하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결의문까지 발표했을까. (한센병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사회화시키는 가장 강한 무기 중 하나가 영화 <벤허>라고 나는 확신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DVD를 빌려 보시라.)



모범 답안은 없다


1990년대 가장 진보적인 호칭으로 등장했던‘장애우’란 말이 지금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이유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비대칭적이며 비굴한 존재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자각이 높아진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먼 미래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한 것처럼 ‘애자’라는 말이나 ‘병신’이라는 단어가 모욕이 아닌 겸손의 표현으로 회자할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별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패션쇼에 나온 연예인이나 받을 만한 눈길세례를 나에게 보내고 내 뻗정다리가 궁금해서 만져보는 행위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로 몸에 살이 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입장을 바꿔 당해본다면 한 사람의 가슴에 복수심이 불타게 할 만한 강도를 가진 모욕이다. 나랑 같이 거리를 걷거나 등산을 가거나 데이트를 한 번이라도 해본 비장애인들은 함께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리적인 편의시설이 없음도 아니요, 활동보조도 아닌, 나와 동행함으로써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고 고백했었다.


나는 그 시선을 30년 넘게 받으면서, 수용하고 이해하는 척하면서, 때로는 나보다 더 중증장애인을 나 스스로 놀리고 쳐다보면서 견딜 수 있는 내공과 보호막을 만들어왔다. 그래도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과 장례식장에서 조문하는 것에 대한 난감함을 처리하는 것에는 여전히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를 놀리고 측은해하면서 자신의 건강함을 확인하려고 하는 그 순간 나는 기회를 주지 않고 외치고 싶다. “네, 저 애자 맞아요. 장애인 맞다니까요.”


이렇게 내 자신이 나를 지칭할 낱말을 정하고 내 입으로 말하기까지, 수많은 따돌림과 작은 폭력들 속에서 만들어진 수십 가지가 넘는 별명을 적은 일기장, 수없이 자살을 생각하며 과학실에서 몰래 가져온 청산가리 시약병을 간직해야 했던 내 사춘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아니 언론과 사회가 배려와 격려를 이유로 자기들 멋대로 붙여놓은 딱지를 하루 종일 눈물콧물 흘리며 하나하나 떼어내고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던 그 시절의 내 삶, 내 육체가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장한 어버이 상’에 관심을 갖지도 않으셨고 비장한 인간 승리를 요구하며 “장애는 굴레이며 패배”라고 외치는 교육을 내면화시키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의 장애보다 내 이름을 먼저 불러준 사람들, 넌 군대 가지 않아서 좋겠다고 펑펑 울면서 부러워 해준 정말 용감하게 솔직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내 애인이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스스럼없이 자신의 졸업식에, 가족 상견례에 초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법이나 금칙어가 아니다. 그 시선과 평가 자체를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시스템과 문화이다. 무식한 국가가 모욕죄나 금칙어 등을 함부로 남발하여 되레 모욕의 효과만 높이는 것은 정말 ‘바보’이며 목발도 제대로 못 짚는 헛발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지위와 권리를 높이고 교육과 제도를 통해 그들의 자부심을 강하게 해주고 그들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일이다.



당신의 편견에 도전하라. 아니면 그것들이 당신에게 도전할 것이다.
-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 시즌 1, 4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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