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청소년, 학교를 말하다

청소년 인권활동가 3인 인터뷰

조은과 어스, 그리고 거부기(조은은 본명이고 어스와 거부기는 닉네임이다) 세 사람은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 각자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계기는 모두 다르다.
조은은 그 말 많은 외국어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고 이제 막 인권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이며 특별히 집중적인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한 덕분에 집 근처인 강서구에 있는 한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을 잘 만나(?) 청소년 인권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스도 별 일(?) 없었다면 지금 고교 3학년이었을 나이다. 그는 노원구에 살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주변에서 악명 높은, 그래서 외고만큼이나 입시성적이 좋은 어느 남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 학교 문을 스스로 걸어 나와 이제 청소년이란 꼬리표가 몇 개월 남지 않았지만 탈학교 청소년이 되었다.
조은이나 어스보다 한 살 적은 거부기는 분당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역시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로 꽤나 유명한 이우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청소년 인권활동 경력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로 가장 오래되었다.
세 명 모두 자신의 집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소득격차가 그리 크지 않는 서울과 신도시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조은은 대학에 들어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어스는 당분간 청소년 인권활동을 할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며 그걸로 돈도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거부기는 대학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며 자립을 꿈꾸고 있다.



우선 어스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이야기해줄래요?


어스
중학교 때도 그냥, 맞으면 맞나보다, 머리 잘리면 재수 없다, 짜증난다, 애들이랑 그렇게 느끼는 정도였는데 고등학교가 그 근처에서 명문, 그런 거였어요. 엄청 공부시키고 때리고 머리도 (짧게) 밀고 다녀야 하고. 학교(정문) 들어갈 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는 이유로 오르막길인데 오리걸음을 시킨다거나. 그리고 하루 일과를 다 문자로 집에 보내야 돼요. 공부시작, 휴식, 지금 밥 먹음, 이런 게 너무 어이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여름방학 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교무실에서 벌 받고 있다가 화가 나서 선생님한테 “내가 너무 싸가지가 없는 거 같아서 여기 못 다니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보충학습, 너무 싫잖아요. 방학인데 똑같이 일어나서 학교 가야 하고. 짜증날 때 학교 안 나가고, 아프다고 일찍 조퇴하고 그랬는데 가정 통신문인가 그런 거 조퇴하면서 내지 않고 집으로 갔다고 다음날 아침조회 시간에 30분 동안 계속 뭐라고 그러더니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거기서 무릎 꿇게 하고 또 뭐라 그러고, 그래서 짜증이 났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뭐라고 했나요?


어스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 이렇게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그러더라고요. 교문 앞에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반 동안 계속 울었어요. 그러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죠. 그전에도 계속 힘들다, 자꾸 맞는 거 짜증난다고 얘기했었는데 울면서 전화를 하니까 엄마가 잘했다, 잘했다, 너무 놀라셔서 우선 그렇게 말씀하셨고. 며칠 지나서는 그래도 어떻게 학교는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되게 웃긴 게 선생님이 그 뒤에 저를 잡았어요. 학교에서 유명한 선생님이거든요. 저희 반에 저 이전에 자퇴한 학생이 6명이었어요. 그때 소문이 한 반에 10명이 자퇴하면 담임이 잘린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가 나간다고 그러니까 잡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저 뒤에도 두 명인가 더 그만뒀다 그러더라고요. 원래 도장 찍으러 가야 하는데 저는 선생님 얼굴 보기 싫다고 그때도 학교 안 갔어요. 그렇게 끝났어요.


조은은 어떻게 외고에 들어가게 됐죠?


조은
주류를 따라가다 보니까 그렇게 됐죠. 중학교 때 내가 뭘 해야겠다, 그런 건 아니고. 학원 다니다 보니까 어느새 내가 (외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들어가서는 후회는 안 했어요. 되게 부자들만 다니는 학교다, 이런 인식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고, 깨인 선생님도 있어요. 전교조 선생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분도 있고. 학교 분위기는 극단적이에요. 사립이 그렇잖아요. 라인도 심하고. 이사장 라인, 교총 라인, 전교조 라인, 관료적이고.


선생님 중에 누가 전교조다, 누가 교총이다, 이런 걸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나보죠?


조은
어느 정도는 다 파악하죠. 누가 교총이다, 누구는 이사장 라인, 누구는 낙하산. (외고)애들이 어느 정도 보수적인 건 맞아요. 정치적인 이야기하는 거 꺼려하는 경향도 있고. 다 부잣집 애들, 이런 건 아닌데 (정치적인 문제는) 극단적이라고 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전교조 교사는 약간 극성이라고 생각하는 애들도 있어요. 전교조 자체가 아니라 그걸 티내는 선생님들. 완전 좌파야, 그러면서 사상을 주입시키려고 그런다고 짜증내죠. 저는 그게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니까 좋지만. (웃음) 애들은 선동이라고 생각하고 막연하게 공포감, 거부감을 갖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강남 쪽으로 가면 또 모르겠어요. 저희 학교는 김포공항 옆에 변두리잖아요. (웃음)


고등학교 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떻죠?


어스
아침 7시 반까지 등교해서 야자하면 11시, 저는 특수반이어서 12시까지 했죠. 욕하고 때리고 그러는 거는 뭐……. 아무 논리도 없고 지지부진한 말들, 또 수업시간에 이러고(차려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해요. 허리 구부린다거나 책상에 팔 올리고 있으면 책상 위에 무릎 꿇게 하고 여기(허벅지)를 때리고.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는데 가르치는 건 잘 가르쳤어요. 학원에서 엄청 유명강사여서 스카우트 됐대요. 그렇게 하면 애들이 공부를 하거든요. 그걸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조은 저희도 7시 반 등교해서 11시까지. 학교에서 살죠. 학교가 집이에요. 필통도 놓고 와요. 1학년은 10시까지지만 스쿨버스가 11시에 출발하니까 11시까지 하죠. 야자는 안 해도 되는데 안 하는 애들은 없죠. 안 할 수 없는 분위기. 그야말로 감옥이죠. 토요일이 2주에 한 번 쉬잖아요. “이번 주가 놀토(노는 토요일)야?” 목요일 날 친구들끼리 그래요. 놀토다 그러면 금요일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고3이 되면 아이들이 놀토에도 학교 나와요. 아니면 늦게 일어나고, 자기 통제가 힘드니까.


그럼 조은은 노는 토요일에는 뭐 해요?


조은
바라던 노는 토요일인데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도서관 가서 이것저것 보고, 책을 늦게 좋아해가지고 책 읽고. 그래도 공부를 해야 돼죠.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너무 슬픈 거예요. 공부를 안 했다는 사실이. 내가 가고 싶은 학교, 과가 있는데 그러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 받고. 1, 2학년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불안감도 심해지고.


거부기는 대안학교에 다니는데 어떻게 거기 가게 됐죠? 그리고 학교생활이 많이 다를 거 같은데.


거부기
제가 처음으로 집회란 걸 나가본 게 중2 때였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아수나로(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도 그때 알게 되고. 논술학원인 줄 알고 나다(교육공동체 나다)란 곳에 갔다가 거기서 알게 됐죠. 그러다 슬슬 불만이 생기고 조용히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싫어서 중3 때 혼자서 두발자유 서명운동도 하고. 그러다 어떤 토론회에서 이우학교 교감선생님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좋다, 그렇게 학교에 콩깍지가 씌워서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그래서 들어가게 됐어요.


부모님 반응이 어땠어요? 별 반대는 없었나요?


거부기
솔직히 어이없어 했죠. 사실 저도 외고 준비를 했었는데 중2 때부터 성적이 떨어지더니 중3 때 공부를 놔버리고, 그랬는데 엄마도 나름 알아보고 그랬나 봐요. 엄마가 살짝, 은근히 진보적이더라고요. 엄마가 저를 이우학교에 보내고 교회도 보수적인 데서 진보적인 데로 바꾸고, 엄마가 노력을 좀 했어요. (이우학교는) 시험은 안 보고 자기소개서 7장 정도 써야 돼요. 학생도 쓰고 학부모도 쓰고. 그리고 2차는 면접. 학교에서는 (이우학교를) 이우동산이라고 부르는데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이우중학교에서 올라온 애들이 60명 정도이고 20명을 고등학교에서 더 뽑는데 절반 정도는 자기가 원해서, 절반 정도는 부모가 원해서 온 애들이죠. 학교에 대한 불만은 많은데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관심을 둔 적이 별로 없어서 정리를 잘 못하겠어요. 학생자치, 학생자치 그러면서 필요할 때만 그걸 이용해먹는 거 같은데, 제가 밖에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실제로 학교에서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니까요. 애들에 대한 불만은 애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저보다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그러는데 실제로 실천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게 불만이죠. 또 이우동산은 천국이다, 다른 학교랑 비교하면. 생태 시간에 4대강 문제 다루고 철학 시간에 2008년 촛불 평가하고, 두발이나 복장 자유롭고. 그래서 저희 학교 다니다 나가면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들 해요.


한국이 청소년 자살률이 OECD국가 중에 제일 높다고 하고, 성적 비관 자살이 점점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조은
자살하는 아이들, 이해가 되죠. 고3이 되고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거. 진짜 심해요.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걸 끊임없이 조장해요. 학교에서. 요즘 들어서 더 많이 느끼는데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면 예문 하나도 그런 거예요.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에 통과할 거야. 끊임없이 그런 걸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사회인 거 같아요. 진짜 슬픈 거죠. 그런 현실이.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고. 심지어 친구들한테도 어디 놀러가자고 편하게 말도 못하게 하는. 공부해야 되니까. 어디 가자 그래도 싫어해요. 쟤는 자꾸 나한테 놀러가자 그러지, 내 앞길을 망치려고. 미묘하게 그런 게 많거든요. 인간보다 그런 경쟁이 앞서게 된 거잖아요. 그런 거 때문에 진짜 기계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라고는 좀 오히려 기계 같은. 기계가 되어야만 하는.


혹시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조은
저야 이런 활동도 하고 돌파구가 많아서, 뚫어놓은 게 있으니까. 친구들 중에는 우울증이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특히 이렇게 성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면서 끊임없이 자기가 작아지는 친구들이 있어요. 외고는 극단화 되어 있어서 일등부터 꼴등까지 매겨지니까 중학교 때는 나름 잘 한다고 하고 들어온 애들이니까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아요. 우울증 약 먹는 애들이 한 반에 한 명씩은 있어요.


어스는 특별반에 들어갔었다고 하는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겠어요.


어스
특별반이라는 게 1반, 2반 이런 반이 아니라 수업이 다 끝나고 모여서 보충도 따로, 야자도 따로 하는 그런 반이죠. 전교 40등까지, 시험 때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반이고 정식 이름은 경건반이었어요. 식당 건물 2, 3층이 경건반 야자 건물이었죠. 저는 거기 들어가게 된 게 되게 싫었어요. 애들 대부분 “쟤네 불쌍하다, 우리보다 야자 한 시간이나 더 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그런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쟤네는 다르구나, 엘리트구나. 저도 그런 거 느꼈어요. 같이 야자하는 거 보면 저는 너무 싫어서 책 가지고 가서 책 읽고 그랬는데 그러다 걸리면 맞았는데 애들은 듣도 보도 못한 참고서, 엄청 어려운 참고서 가져와서 공부하고, 원서 읽고 있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들어가는 순간 그런 걸 보라고 학교에서 강요하는 거 같아요. 쟤네들을 봐라, 쟤네들처럼 해라. 미래가 보이잖아요. 좋은 대학을 갈 거고, 좋은 직장을 잡을 테고. 그런 이중적인 게 있었던 거 같아요. 학교에서는 범생이라 그러면 찌질해보이고 그러면서도 20년 후에 쟤네들은 나보다 훨씬 잘 살 거라는 걸 아는 거죠. 그런 게 엄청 싫었어요.


이우학교도 대입성적이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대안학교에서는 경쟁이 없나요?


거부기
원래 똑똑한 애들을 뽑으니까 성적이 좋은 거 같은데, 고3 되면 대입을 준비하고 재수를 해서라도 거의 다 대학에 들어가요. 사교육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졸업하고 사교육으로 들어가는 거죠. 자살 같은 건 없어요. 확실히 나름 대안학교이니까, 공부 이상의 것을 추구하니까. 우선 학원을 안 다니니까 그 시간에 집이랑,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고 선생님이랑 상담도 많이 하니까. 한 반에 스무 명밖에 안 되니까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잘 알거든요. 고1 때는 얘기 정말 많이 했어요. 잘 들어주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니까. 엄마도 처음으로 (선생님과) 제대로 다 얘기 할 수 있었다고 좋아하셨어요. 근데 2학년 되면서 상담하기가 꺼려져요. 선생님에게 얘기 못 하겠는 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선생님은 잘 모르는 게 있잖아요. 말하기도 애매하고. 작년 담임선생님 같은 경우는 엄마랑 싸웠다 그러면 “그럼 엄마의 마음은 뭘까?” 그렇게 착하게 들어가니까 점점 얘기하기가 꺼려지죠.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는 애들도 있고, 남아서 공부하는 애들도 있고. 하교시간은 자유로워요. 등교도 8시 반이고. 경쟁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 중학교는 등수를 아예 안 쓰고 고등학교는 어쩔 수 없이 쓰기는 하는데, 선생님이 오히려 하지 말라고, 지금부터 왜 그러냐고 하지만 애들은 (경쟁을) 해요. 고1 같은 경우 프로젝트 활동이 있는데, 작년에는 신파극을 올리는 거였어요. 학생들이 연출하고 연기하고. 무지 힘들죠. 그 다음 주가 시험기간인데 프로젝트에 열심이면 시험공부를 못하니까 프로젝트 열심히 준비하는 애들이 따로 있고 시험 준비하는 애들 따로 있고, 그러면서 불만이 쌓이고 그런 거 같아요. 아무래도 고등학교니까 경쟁이 없지는 않죠.


조은 나도 그런 거 하고 싶은데, 지금도 시험공부 해야 하지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깨알 같은 글씨를 외우면서 내가 너무 한심한 거예요. 수학이 극단적으로 그런데, 물론 좋아하는 애들도 있지만 솔직히 원리 중심도 아니고 답만 맞추면 되는 거잖아요. 시간 안에 기술을 습득해서 찍던 풀던. 너무 한심한 거예요. 공부하는 방식 자체가. 그런 생각이 들면 한숨을 땅이 꺼져라…….


대입만이 아니라 원하는 대학을 간다고 해도 또 경쟁을 해야 하고 대학 나와서 취업에도 경쟁이 있고. 그런 걸 다들 알고 있잖아요.


거부기
실감은 못 하는 거 같아요. 대학가서 더 힘들다 그러지만 제가 대학에 간 게 아니니까.


조은 저 같은 경우는 문화인류학과를 가고 싶거든요. 연세대학교. 거기에 조한혜정 교수님이라고 그분에게 배우고 싶어서 꼭 거길 가고 싶죠. 그런데 거의 대부분, 저같이 유별나게 여기 아니면 안 돼, 그런 애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점수에 맞춰서 각광받는 직업 갖고 싶어 하는 애들이고 깊은 성찰을 하는 거 같지 않아요. 또 대학도 경쟁의 굴레 속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런데 걔네는 또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애들이어서 그걸 부정하지도 않는 거 같아요.


지난해부터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이런 거 많이 논란이 됐잖아요. 정작 학교에서는 어때요?


거부기
학생인권조례는 우리랑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애들이 생각하니까 별로. 교육감 선거 공약 보고 “김상곤, 진짜 좋다. 돼야 돼.” 이런 이야기는 하는데 사실 우리한테 뭐 더 좋아질 게 있나 싶어 하죠.


조은 저희는 그런 얘기 진짜 많이 하거든요. 여자애들끼리 있으면 4대강 이야기하면서 미쳤다, 미쳤다, 모두 동의해요. 왜 저래? 우스갯소리로 잠을 다섯 시간밖에 안 자니까 그런다고, 역시 사람은 잠을 많이 자야 한다고, 우리도 다섯 시간 자면 저렇게 미친다고. (웃음) 솔직히 무상급식 이런 것도 애들도 거의 공감해요. 가난한 집 애들이 분명 있는 거고.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방에 가면 많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야, 솔직히 밥 못 먹는 애가 몇이나 되냐? 무상급식 가지고 왜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애들 공부 많이 시키고, 사교육 잡을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도 있죠.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는 나온 적도 없고 있는지도 몰라요. 애들이 길들여져 있어서, 인권 이런 이야기 나오면 기피해요. 자기 권리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튀는 행동 하는 애들 이상하게 보는 거죠. 체벌이나 이런 것에 대한 불만은 당연히 있지만 거기까지. 겁도 많을 뿐더러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해서 고분고분해진 애들은 뭔가 자기 입지가 흔들리는 거 두려워하고. 애들이 길들여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아래 학년에 머리 왁스 바르고 그러는 애들, “걔네들 왜 그래?” 그런 식으로 보고. “왜 깝쳐? 나도 그냥 사는데 그냥 살지.” 그런 거죠.


어스 학생인권조례 가지고 작년에 학교 앞에 선전전을 나가고 그랬어요. 가서 서명을 받는데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 이러면 몰라요. 두발자유, 체벌금지라고 하는 순간 빵 터지죠. 좋아하는 거죠. 뭐라고 말해야 될까 잘 모르겠는데, 사실 내용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더 중요한 문제인데 학교 나가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두발자유, 체벌금지밖에 없어서 되게 뭔가 엄청 슬프고, 짜증도 많이 나고 비참해지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마치 학생들이 좀 대상화 되는 거 같은, 뭔가 계몽시켜야 되는 집단, 그런 느낌이 들어서 더 슬퍼요. 그래서 요새는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서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우리들 사이에서 많이 해요.


알몸 졸업식 뒤풀이 문제로도 사회가 들썩 했잖아요. ‘왕따’에 이어 ‘빵셔틀’이라는 말도 생겼고.


어스
저는 그때 활동을 막 시작하던 때였는데, 무서운 10대란 이야기 많이 나왔잖아요. 전 그게 폭력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엄연히 폭력이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입혔을 테고. 걔네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닌데 그럼에도 걔네들한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어른들을 보면 그렇죠. 학교에서 그렇게 얻어맞고 다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못할 수도 있는 거죠. 어쨌든 그렇게 됐을 때 그 개개인들이, 그 가해자가 개새끼가 되고 끝나버리는 그런 식의 태도나 해결방식은 되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학교 안에서 폭력이 일어났다면 학교 안을 다시 돌아봐야 되는 거지, 그 아이들이 죄인이 되어버리고 끝나버리는 그런 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스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그런 졸업식 뒤풀이가 있었나요?


어스
아니요. 사실 그런 게 있다는 거 저도 TV 보고 알았죠. 교복은 찢었던 거 같아요. 그거는 해소였어요. 정말로 해소였고 해방이었고. 그걸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은 그런데 빵셔틀이 뭐지?


거부기 쉬는 시간마다 빵 심부름, 매점 가서 하는 빵 사와야 하는 애들. 심하게는 200원 줄게 가서 사와. 반에서 찐따들한테.


조은 사실 전 그런 걸 경험해본 적은 없고 다들 착했는데. 노는 애들도, 좀 나쁜 애들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게 다 고등학교 오며 없어지잖아요. 중학교 때는 진짜 모든 애들이 싫어하는 왕따, 괴롭히는 것도 있고 놀리는 것도 있고. 괴롭힘 당하는 애들은 약간 잘 난 척한다거나 지나치게 튀는 행동을 한다거나, 좀 외모를 지나치게 꾸민다거나. 솔직히 심각한 폭력을 가하는 애들은 없어요. 무시하거나 놀리는 거죠. 많은 애들 앞에서 아, 개 이름을 거론하면서 너 쟤 같아, 망신을 준다거나. 이런 식인 거 같아요. 때리거나 돈을 뺏는다거나 이런 거는 주로 모르는 애들한테 하지 않나? 노는 애들은 주로 지들끼리 놀죠. 선배들, 고등학교 오빠들이랑 사귀고. 저희 학교 주변에 막장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그런 오빠들이랑 사귀고 같은 반 학생들에게 폐를 끼친다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고 점심시간에 들렀다가 그냥 가고 그런 식이니까.


어스 보긴 많이 봤죠. 왕따 당하는 아이들, 삥 뜯는 것도 봤고, (왕따 당하는 얘들은) 성적 가지고 그러는 거는 못 봤는데 잘난 척한다거나 대부분은 그런 거 같아요. 약간 좀 엉뚱한 애들 있잖아요. 대화가 잘 안 통한다거나, 말 안 하죠. 얘기 안 하고 말 걸면 무시하고 그러는 게 왕따죠. 저도 빵셔틀이란 말, 그렇게 빵셔틀 하는 애들이 많은 줄은 몰랐어요. 그냥 장난처럼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마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다들 강서구, 노원구, 분당,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데 비교적 빈부격차나 그런 건 없었겠네요?


조은
특별히 못사는 애들은 티가 나거나 그러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거부기 전체적으로 다 잘 살죠. 그런데 분당이 성남시 분당구니까 구성남이라고 불렀는데 분당이 아닌 성남에서 오거나 광주에서 오는 애들은 좀……. 사회(선생)가 개념이었어요. 개념이 없어가지고 “너희는 분당 사니까…….”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가 좀 못살았거든요. 아마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분당이 워낙 치맛바람이 세서 선생님 말실수 하나에도 바로 전화 오니까 그런 것도 많지는 않았고. 빈부격차는 고등학교 오니까 더 심각한 거 같기도 해요. 잘사는 애들은 확 잘살아요. 집이 정말 넓다든지, 뼛속부터 자기가 원래 잘 산다고 생각하고. 판교 사는 애가 있는데 “판교는 아직 교통이 불편하지 않아?” 그러면 “괜찮아, 기사님이 오니까.” 그러고. 돈 개념이 좀 없어요. 쉽게 상처 주는 말 하고, 물건 소홀하게 써버리고. 어디에 싼 밥집이 있다더라 그러는데 그게 7~8천 원. 이런 돈 개념 없는 거.


조은 그런 애들이랑 친하게 지네. (웃음) 저희 동네에서는 여의도여고를 중학교 친구들이 많이 가거든요. 거기는 여의도 애들이 오고 영등포, 신길 애들이 오는데 영등포, 신길 애들은 많이 친해지는데 여의도랑은 가슴 깊이 친해지지는 않는데요. 엄마들도 영등포, 신길 애들이랑 친해지는 거 싫어하고. 학교에서도 무슨 사고 치면 “너 영등포, 신길이지?” 그런 불만이 많더라고요.


무상급식도 그렇지만 아예 대학 갈 형편이 아닌 애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학생과 부모, 선생님, 이렇게 모인 교실도 있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때요?


조은
이야기해도 모를 거 같아요. 그런 애들이 있을까? 선생님부터 “밥 굶는 애가 요새 어디 있냐?” 그러니까. 저희 학교도 국회의원 딸도 있는데 그런 애들 보면 뭔가 달라요. 가져오는 음식부터 유기농. 뭐 하나하나가 다 명품이고. 전혀 아무렇지 않게 돈을 막 쓰고. 그런 애들이 모르겠죠. 누가 밥을 굶는지. 그렇게 관심 가지려고 힘쓰는 애들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왜 돈이 없어? 너는 왜 못해?” 그런 식이지.


거부기 저만해도 분당 사니까, 애들이 어디 산다고 하면 다 아파트 사는 줄 알았고, 그렇게 생각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빈곤은 도와줘야 될 대상, “어머, 굶는대. 불쌍하다, 모금하자.”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런데 그런 걸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은 좀 있어요. 너희가 운 좋은 거다, 선택받은 거다. 하지만 애들은 그냥, 솔직히 어떻게 다 잘 살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현실을 잘 못 본다고 그럴까. 우리가 서민이라고 느끼고 더 밑이 있을 거라고 상상을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부모님들과의 관계는 어때요? 조은은 어머니가 교사라고 했는데.


조은
아빠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원래 (아빠와는) 말 잘 안했고 제가 볼 때 엄마는 전형적으로 모범생 스타일. 옛날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엄마가 항상 애들을 가르치다보니까 상처받은 게 큰 거예요. 애들을 싫어하세요. 애들한테 질렸다 그래야 하나. 답답하면서 동시에 측은한 마음? 요새 승진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세요. 교감 승진하고 싶다고. 되게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말라, 오늘을 즐겁게 살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그러는데 엄마는 진짜 승진하고 싶어 해요. 왜 그러냐고 하면 수업 안 해도 돼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엄마도 희생양인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애들이랑 소통이 없고 막연히 선생님을 애들은 싫어하고. 짓궂고 철도 없고 말을 막 하고 그런 것 때문에 엄마가 많이 상처를 받은 거 같고. 엄마는 “넌 세상을 모른다.” 그러고 그럼 “엄마, 내가 보여줄게.” 이렇게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거. 엄마는 막지는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거부기 요즘에는 제가 피해요.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는데 서로의 생각 차이를 확실하게 아니까 맨날 거기서 막히니까. 저는 엄마가 저를 억압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게 “같이 사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면서 억압하고. 계속 싸우니까. 좀 지쳐서 이야기를 안 하게 되요. 예를 들면 “대학에는 가야 하지 않냐?” “집에는 몇 시까지 들어와야 한다.”


어스 저는 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랑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같이 이야기는 하지만 항상 가면 하나를 쓰고 있는 거 같은. 지금도 다 벗어버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학교 그만두고 한 6개월을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뒹굴뒹굴 거리다 술 먹고 들어오고. 새벽 5시에 자서 오후 3시쯤 일어나고. 그러다가 하자 작업장 학교라는 대안학교를 가게 됐고 거기서 청소년 인권활동을 알게 됐거든요. 처음에는 도서관 간다고 거짓말하고 회의하러 가고, 그러면서 괴리감이 있었죠. 밖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서. 그래서 지난 3월쯤에 엄마한테 다 말했어요. 좋은 대학 갈 생각 없고 이렇게 활동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고 싶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갈등이 심해요. 그래도 지금이 말하기 전보다 좋아요. 차비 없어서 고생이고 빌빌거리며 살고 있지만.


조은 저희 아빠랑은 시도조차 안 해요. 아빠는 용산을 보면서 저런 떼쓰는 사람, 그렇게 말해요. 아빠의 생각은 도대체 터치를 할 수조차 없어요. 대화조차 하기도 싫고. 그냥 “다녀왔습니다.” “밥은 먹었냐?” “네.” 그게 끝이에요. 좀 기성세대도 그런 거 같아요. 아예 안 들어주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랑은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변화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대화를 할 수 있고 하려고 하죠. 그런데 청소년이 말하면 안 들으려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많이 당선됐어요. 서울에서 곽노현, 경기에서 김상곤. 많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나요?


조은
저는 역적인 셈인데, 아마 외고가 없어지지 않을까. (웃음) 지금 외고는 공부 잘하는 집단에 불과하고 그런 거라면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외고 이야기는 정두언, 한나라당에서 먼저 나왔으니까. 교총에 우두머리 선생님이 “아니, 이원희를 뽑아도 (외고는) 폐지고 그래도 곽노현을 뽑을 수는 없고.”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외고가 (교육문제의) 주범은 아니예요. 외고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보다는 결과물이죠. 대학이 평준화되지 않는 이상 외고가 없어져도 외고 형식의 학원이 생길 거예요. 사실 외고를 마녀사냥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변하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부기 작년에 인권조례 추진되고 있었잖아요. 아수나로 카페 보면 “두발자유 언제 되요?” 같은 질문이 많이 올라와요. 그런데 조례가 시행이 되더라도 선생님이 그대로라면 변화는 별로 없을 거 같고, 아이들도 받아먹기만 하는 거라면 잘 모르겠어요. 자기가 목소리를 내면 좋겠는데 해주는 거라면 좋지 하는 자세라면.


조은 그렇게 교육받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 사립은 학교 싫으면 나가, 이런 거니까. 인권조례가 추진된다고 했을 때 학교랑 애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한데 허울뿐이기 쉽죠. 솔직히 지금 상태로 봐서는 학교가 변화에 부응할 거란 생각은 잘 안 들어요. 내가 다녀본 것으로는 학교는 정말 보수적인 집단이구나, 학교만큼 보수적인 곳이 없구나. 심지어 선생님도 복장에서 억압을 받는데, 청바지, 짧은 치마 못 입고. 그런 학교에서 학생들이 과연 그 변화를 부응할 수 있을까?


거부기 작년에 김상곤 추진할 때 학생참여 기획단에 들어갔는데 아무 힘도 없었어요. 학생들 목소리 듣는 거, 학생들이 직접 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곽노현은 잘 하려나? 잘 못하려나? (웃음)


도대체 학교를 어떻게 하고 청소년은 뭐를 해야 할까요?


조은
극단적으로 변화하기는 힘들고 우선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 학교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죠.


거부기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나는 폐교시켜버릴 거야. (웃음) 저는 가장 먼저 필요한 거는 학생이라고 보지 않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너는 아직 어리니까 잘 모르잖아, 아직 청소년이니까, 어리니까. 그러면 말이 안 통해요. 인식부터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돈, 돈이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못 해요. 자립도 해야 하는데.


어스 저는 자퇴하면 세상이 멸망할 줄 알았어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게 될 줄 알고. 학교 밖을 모르는 거죠, 주류에서 벗어나면 죽음이 되어버리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할 줄 모르고, 내가 말할 수 있다는 거, 말해야 된다는 것도 모르고. 청소년에 대한 말들, 그런 말들은 청소년이 하는 말이 아니예요. 청소년은 한마디도 못하는 거예요. 저는 못하기 때문에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에 대해서 계속 말하려는 노력, 같이 말하려고 하는 노력. 그런 게 필요한데 정작 그걸 강요할 수 없어요. “왜 너희가 말 안 해?”라고 요구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정신없죠.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


- 인터뷰를 마치며 -


10대의 어느 시절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루신의 『광인일기』란 책을 읽었다. 서구열강에 침탈당하는 청나라 말기 중국의 무기력한 세태를 식인풍습에 빗대며 “이제 아이들만이라도 구해야 한다”고 그 소설은 끝맺었던 것 같다. 책장을 덮으며 절대로 기성세대들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났다.


몇 해 전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라는 책을 낸 김순천 작가로부터 “10대를 만나보니 그들의 무기력이 너무나 절망스러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까닭은 10대의 문제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스란히 이 사회 문제의 축소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 끄트머리에 불쑥 튀어나온 ‘돈 이야기’에 대해 조은과 어스, 거부기는 할 말이 참 많았다. 조은은 대학에 들어가면 학자금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20대를 부채와 함께 시작할 것이란다. 어스는 당장 생활비와 활동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사회의 전세 값과 최저임금은 거부기의 자립에 대한 꿈을 한갓 몽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성세대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아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비관에 빠진다. 이제 오로지 청소년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는 길만 남았을 뿐.
오늘 내가 만난 이들만이 아니라 심야에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거리의 청소년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 영구임대아파트와 시골 소도시에서 일찍이 학교 문을 나와 묵묵히 가계를 책임지는 청소년들도 떠오른다. TV 카메라에 갇혀 있거나 신문기사 속에 따옴표로 묶이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도 다음 기회에는 꼭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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