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징소리

노동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친구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려면 뭔가를 많이 알고, 똑똑해야 할 것 같단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지식이 없고, 똑똑하지 못한 자신은 인권운동을 생각하면 ‘어렵다’는 것과 함께 ‘나 같은 사람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고. 나를 보면 알겠지만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특별히 똑똑하지 않다고, 우리가 요구하는 내용에 ‘~권’을 붙이면 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인권운동을 만만하거나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그 친구의 활동과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활동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노동운동은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고 있고, 인권운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활동이 아닌가.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내 삶을 흔들만한 굵직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내가 겪은 시간이나 사람과 사건들을 거쳐서 오다보니 여기에 있게 된 것인데 이런 질문은 나를 참말로 궁색하게 만든다.


‘인권이 내게로 왔다’는 코너에 글을 쓰라는 말에 씩씩하게 ‘기일 내에 꼭 넘기겠다’고 대답을 한 후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뭐냐?’ 또는 ‘내가 만난 인권은 뭐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이런저런 활동과 느낌들을 떠올리면서 일단 뱉어봤지만 내용을 보니 기억은 조각나 있고 몇 개의 단어로 된 느낌들만 있어 나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저렇게 엮기도 힘든, 이건 뭐 갈수록 오리무중, 첩첩산중, 사면초가인 상황이 되어버려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지경이다.


인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인권’이 너무나 어렵단다, 친구야.



첫 만남, 학생도 사람이다


더듬어 보면 내가 처음으로 만난 인권은 ‘청소년’이었다. 20대 초반(1996이나 1997년)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어떤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을 통해 파란 화면의 나우누리와 하이텔에 청소년 인권 모임 ‘학생복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5년에 강원도에서 학교를 다니던 한 학생이 입시위주 학교교육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 이후에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자신들의 인권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던 모임이었다.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였던 나는 학생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학생도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사람 선언을 하고 나선 친구들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모임에 가입을 하고 게시판의 글을 읽으며 회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다가 중학교 다닌다던 어떤 이가 남긴 글을 읽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따위 학교를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Revolution!”


오메나, ‘이 어린 것’이 다 큰 나에게도 생소하고 어려운 ‘혁명’을 이야기하다니! 얼마나 씩씩하고 당찬 아이들인가!


‘학생도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이 친구들의 활동에 내가 특별히 뭔가 보탬이 됐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학교에서 얼마나 말을 듣는지, 왜 학교를 박차고 나왔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어하고, 끄덕이고, CD가 들어있는 음악 잡지를 소개받는 정도였을까나?


그렇지만 이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무조건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도, 때리면 맞고 내 잘못이라고만 여겼던 나도, 수업시간에 교실의 의자 대신 잔디밭에 누워서 친구랑 도란거리던 나도, 야간 자율학습이 싫어서 친구랑 도망치던 나도, 그 때의 나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걸 알려줬다. 지금의 나에게 이 때 만났던 친구들은 참 고맙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로 기억된다.


이 친구들과 모임을 알게 되고 나서 지역에서 열리는 ‘시민들을 위한 인권교육’에 참여해 강좌를 듣기도 하고, 청소년 인권캠프에 참여하기도 하고, 어느 학교에서 학생인권 침해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쫓아가보기도 하고, 괜스레 전교조에 전화해 학생 인권에 대한 활동을 왜 안하느냐고 항의 비슷한 일을 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인권은 싸우는 것


여차여차해서 나는 아는 이도 있고 그래서 가끔 기웃거리던 한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만난 인권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찢기고, 피나고, 까이기를 반복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말을 지우지 않고 몸과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전북평등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도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조합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 분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발랄함과 자신감에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제고사 반대, 전교조 탄압 중단, 공무원노조 탄압 중단, 용산참사 촛불문화제, KT촛불문화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집회가 열리는 곳에서 항상 이분들을 만날 수 있다.


2006년, 최저임금을 겨우 받으며 일하던 도청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참 이상했다. 이들을 고용한 회사는 옆 사람의 일을 도와주면 시말서를 쓰게 했고, 배가 고파서 매점에서 빵을 사먹어도 시말서를 쓰게 했다. 조퇴나 지각을 하면 해고한다는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고, 진단서가 없으면 조퇴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으며 언제 밥줄이 잘려나갈지 모른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다. 고용에 대한 항상적인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회사는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10명을 바로 집단 해고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도청 앞마당에 비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고, 한 여름 찜질방 같은 천막과 한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10명 모두 도청을 청소하는 빗자루와 걸레를 다시 손에 잡을 수 있었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단체협상을 맺을 수 있었다.


투쟁이 끝난 후에 이분들은 노동조합을 탄탄히 지켜가며 지역의 다른 연대활동에도 가장 열심이다. 이분들을 보면 인권은 싸우는 것이고 ‘사람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몸과 삶 속에 담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도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도청에서 쫓겨나고, 태풍에 농성장 천막이 날아가고, 경찰들에게 내팽개쳐지면서도 도지사와 사장에게 들이대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싸움 속에서 이들의 비어 있던 인권 목록이 하나하나 채워져 갔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인권은 이미 다 갖추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 이름 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이 말하고 싸우면서 채워 가는 그런 거라는.


나는 착했다? - 인권은 징소리


부끄럽지만 옛날옛날에 여성이고, 예쁘지 않고, 돈도 없고, 무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갖고 있는 나를 ‘착하다’고 여겼다. 왜냐면 나는 남성이 아니고, 독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트러블을 만들지 않았으며 남의 것을 빼앗아 배를 불리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나에 대한 안도감 같은 걸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온 ‘인권’은 이런 나에게 웃기지 말라며 이런 나의 생각은 오만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깨뜨리고, 끌어내린다. 가끔은 다른 이를 끌어내리기도 한다.


언젠가 인권활동가대회에서 누구였는지,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들 장애에 대한 공포가 있죠? 그렇지만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어렵지만은 않아요. 살만 해요.”라던 한 장애여성의 이야기가 또렷하다. 그 말이 내 귀로 들어오면서 머릿속에서 징이 되어 ‘댕~’하고 울렸다. 그 분의 그 말 그대로 나는 장애에 대한 공포가 있었고, 이것은 장애인의 삶이 나의 삶보다 못할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다. 사회의 권력관계에서 장애인에 대응해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나를 대면하게 했던 말이었다. 내가 권력을 가진 위치에 속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착했던’ 나에게 충격이기도 했지만 무지하게 고마운 일이었다.


이제는 내가 착한 사람이고 너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비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이 사회의 수많은 관계들은 권력자와 피권력자, 가해자와 피해자, 착하다와 나쁘다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가를 수 없기 때문이다.


활동을 해오면서 이런 징소리는 종종 듣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나이가 많다고 큰 소리를 친다거나,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하는 곳에 가서 “정류장 턱이 높고 휠체어는 버스에 탈 수 없고 승객들이 불편하니 장애인이 양보하세요!”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진짜 현실을 가늠하는 나에게 징은 ‘댕~ 댕~’ 울려대며 수많은 사회적인 차별을 내 문제로 여기고 있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하고, 깨뜨리고, 끌어내린다,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