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국가인권위원회, 죽거나 나쁘거나

1.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7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진정사건 조사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안건을 각하했다. 2010년 7월 7일 국무총리실의 불법적인 사찰로 인해 전 인생이 파탄 난 김종익 씨 측의 호소를 6개월이 넘게 유기하고 있다가 종국에는 심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떠밀리게 된 것이다.


민간인 사찰은 국가폭력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최고의 장치다. 일반추상성을 지향하는 법과는 달리 폭력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행사된다. 그래서 법과 폭력, 이 두 개가 결합할 때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발생된다. 여기에다 잔혹한 폭력이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누구에게나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위협이 모든 사람에게 인식될 때 그 폭력은 만능의 위력을 갖게 된다. 민간인 사찰은 그 밀행성·잠행성으로 인해 마치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말하는 판옵티콘(Panopticon)처럼 공포를 일상화시키고 폭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자기가 감시의 대상인지 여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일상 모두를 폭력의 주체에 종속시켜 버린다.


이런 민간인 사찰을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간이 경과되었다는, 그리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형식상의 이유로 방기해버렸다. 진정인 뿐 아니라 전 국민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들고 그들의 모든 일상생활을 권력의 의지에 굴종하게 하는 민간인 사찰의 폐해를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내팽개친 것이다. 그리고 이 각하결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존재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전체주의에서의 인간성 말살이나 권위주의 정권의 압제가 하나같이 이런 밀행적 사찰에 기반을 둔 것이었음을 인지한다면, 그래서 이 사찰이 모든 인권 억압의 출발점임을 인식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결정은 그 자체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의 기구로 존재하기를 포기하였다는 의사표시에 다름이 아니다.


1993년 비엔나에서 개최되었던 유엔 세계인권대회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원칙’을 선언하고 우리나라 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을 요구하기 시작한 때로부터는 17년, 그리고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그 존재를 드러낸 때로부터는 10년이 채 되지 못하여 시나브로 그 존재가 지워지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국가인권위원회를 형해화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수구세력들의 이런저런 계책과 음모들이 이제 그 위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길게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자체에 딴지를 걸던 법무부로부터, 여전히 시민사회의 탈정치화를 주류전략으로 삼고 있는 보수적 정치집단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느껴왔던 수구적 정치세력의 합작이 아직 신생의 상태를 벗어나지도 못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식물기구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2.
애당초 1993년부터 공대위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종용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권위주의체제로부터 어렵게 이루어낸 민주화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것, 즉 절차적 혹은 선거제 민주주의의 성취에 불과했던 1987년의 성취에 그 실질을 불어넣자는 것일 따름이었다. 국순옥 선생의 말처럼 수직적 권력의 문제인 주권을 수평적 인권개념으로 통제하지 못하면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일 수 없음을 우리 시민사회는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87년의 지향이 민주화라고 한다면, 그 민주화는 인권으로 충만된 절차, 인권으로 향도(嚮導)된 정치, 인권으로 통제된 권력을 이루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설립운동 초기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인권의 집행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뿐 아니라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구여야 했다.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에 관한 UN 핸드북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성격을 ‘사법적’이거나 ‘입법적’인 것이 아니라 좁은 의미에 있어서 모두 ‘행정적’이라고 규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국가권력이나 국가주권에 의해 창조되거나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권을 국가에 대하여 ‘집행’하는,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국가외적 기구인 것이다.


사실 87년 체제가 직면하는 권력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해방 이후 과도하게 성장한 우리나라 국가체제에서 국민의 전 생활을 억압했던 권위주의적 권력이 물러나간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는 민주화의 실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론적으로야 시민사회의 위상이 제대로 확립되어 진정으로 민주적인 국가공동체를 구성해내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우선 시민사회는 여전히 정치로부터 경원의 대상이었다. 87년 체제 자체가 기존 정치권력과 시민사회의 타협의 산물이었던 터에, 게다가 3당 합당의 형태로 진행된 보수 세력의 야합은 권위주의적 통치의 잔재를 온전히 보전하게 만들었고, 그에 이은 정권교체 역시 48년 체제로 특징 지워지는 반공체제의 편향된 정치구조를 혁파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다. 건국 당시부터 시민사회를 부정하며 오히려 시민사회 위에서 군림하는 우리의 정치체제가 한두 번의 정권교체만으로 불식될 수는 없었다.


또한 이런 판국에 불균형하게 급성장한 경제력은 정치권력에 의한 억압에다 경제권력, 자본권력에 의한 억압을 가중시켰다. 당연히 권력의 공백은 재벌과 투기세력 그리고 토건세력들로 채워졌다. 제5공화국 당시 국제그룹이라는 재벌도 대통령 말 한 마디로 해체되던 것이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의 총수와 그 아들까지도 대통령에 출마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더불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금권통치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주택 200만호 건축→세계화→IMF 극복 및 구제금융→FTA→4대강 공사 등으로 흘러가는 일련의 이벤트들은 자본이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는 공적 권력으로 전이하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권력이 남긴 공백은 관료제의 약진 없이는 온전히 충전되지 못한다. 정치권력의 약화는 그를 숙주이자 숙적으로 삼았던 관료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기회가 되었다.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의 쇠퇴와 더불어 최대의 권력기관으로 급성장한 검찰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무슨 무슨 마피아로 불리며 장관 길들이기까지도 서슴지 않는 정부부서의 행태들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이 법으로 포장되어야 하는 것이 선거제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법치의 외연이라고 한다면, 관료들은 이 법의 이름을 어떤 때에는 정치권력에게 또 다른 때에는 자본권력에게 빌려주고 그럴듯 하게 포장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해온 것이다.


3.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향한 요청은 바로 이런 상황으로 인해 더욱 절실하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권위주의체제가 물러났다고 해서 인권이 덜 침해되거나 혹은 그 침해 정도가 더 연성화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권침해의 주체가 더욱 다양해지고 그 침해 양상이 더욱 정교해질 따름이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작업장에서 내몰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그렇고, 기존의 생활가치를 보전하고자 노력하던 용산 철거민들의 처지가 그러하다. 식량과 위생의 주권을 외치던 촛불집회는 군인들의 동성애처벌조항 철폐를 외치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다양한 삶의 요청이 안보와 질서라는 이름으로 혹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하고 왜곡당하며 질곡에 머물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료들은 법의 이름으로 이런 억압과 왜곡을 정당화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는 여기서 당위가 된다. UN인권위원회의 「파리원칙」(1991)은 국가인권기구의 기능으로 인권에 관한 법제도와 정부정책에 관한 자문기능,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기능, 그리고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기능을 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국가공동체의 모든 가치지향들이 인권이라는 최우선적 가치를 향해 끊임없이 조정되고 그 안에서 통제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혹은 인권의 핵심가치로 규정되는 인간 또는 인간됨 그 자체가 궁극의 가치로 작동해나갈 수 있는 체제를 구성하는 것이 인권기구의 중심기능이 된다.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직면하고 있던 숱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우리 역사상 최초로 공식화하였다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안보나 성장이 아니라 인권이 최우선적 가치이며, 국가도 민족도 아닌 개개의 인간 그 자체가 최고로 존엄한 존재임을 모든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그래서 1987년의 변화가 선거제 민주주의의 확립을, 1989년의 헌법재판소 설치가 입헌주의의 확립을 의미한다면, 2001년의 국가인권원회 설치는 우리나라가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기를 이룬다. 위헌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속 없는 국가기구가 됨으로써 국가 밖에서 국가를 통제하는 국가 안의 진지를 확보하고, 국회와 대통령, 대법원이 골고루 참여함으로써 불완전하나마 정파적 분할을 완화할 수 있는 인선방식을 채택하고, 경색된 사법절차를 버린 채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진정체제와 공개적인 심의구조를 둠으로써 접근성과 탄력성, 공개성과 책무성 등 인권의 필수요소로 거론되는 절차적 특징들을 비교적 온전히 구성해냈다.


더러는 대통령에 대한 국정보고의 문제라든가 상임위원회와 사무처의 관계 등과 같은 몇몇 지엽적인 문제의 시시비비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이나 작동, 그리고 접근성이나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는 별다른 하자 없이 나름의 효과를 발휘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립여자대학교의 독신조항을 폐지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사형제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하고 테러방지법의 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촉구하거나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많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개선을 권고하는 등 우리 사회 가장 민감한 부분에 대해 인권이라는 척도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제시해왔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이나 사원을 채용할 때 키나 몸무게, 용모, 연령, 학력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학생의 두발을 통제하고 일기검사를 실시하는 것, 학교 안에 우열반을 두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결정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양상들을 지적하고 인권침해는 국가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서도 가능함을 공표하는 역할 또한 수행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은 그 담론 형성의 기능이다. 상당히 많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들은 국가기관이나 기업체들에 의해 묵살되고 간과된 것도 사실이다. ‘권고권’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권력일 수 없는, 무의미성의 권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인권위의 존재는 많은 권력들에게 견제와 경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권의 담론이 권력의 대항담론으로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음을 시민사회에 널리 공표하는 기능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하나 하나는 대중매체를 통해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되며 권력이 내세웠던 그 모든 판단기준의 상위에 인권이 존재하고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귀한 역할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이런 역할은 정치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의제설정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안보나 성장과 같이 지금까지의 권력들이 의존해왔던 토대 자체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동시에, 보다 가치정합적인 대안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며 그 대안이 유효한 정치의제로 다루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장을 구성함으로써 인권정치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게 된다. 국가보안법에 관한 논의만 하더라도 국가 내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그 위헌성을 공식화함으로써 시민들의 의식 확장에 기여했다. 진보적인 사람들마저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자 정치수뇌부에 병역미필자가 많아서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다고 비판할 만큼 군사문화가 내면화된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도 인권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은 모두가 ‘예견하고 기다리던 충격’에 다름 아니다. 살색에 관한 차별결정은 인권은 우리 상식조차도 의심하여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시켰고, 학생인권에 관한 결정들은 이 사회에 무의식으로 편재하는 숱한 억압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재 정치화하는 중대한 계기들을 마련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촉진한다. 수직적 권력의 담론들을 수평적 인권의 담론으로 여과해 냄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일구어내며 그 민주주의의 일상화, 편재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의 본래 목표는 의당 인권 그 자체의 실천이겠지만, 권위주의체제로부터의 이행과 더불어 48년 체제가 가지고 있던 반공과 보수라는 이념적 편향성마저도 털어내며 다양한 삶이 다양한 모습으로 정치화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로 구동되고 있는 것이다.


4.
너무도 미약한, 그래서 무시하면 그뿐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오늘과 같은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이런 정치역학에 기인한다. 수직적인 권력담론에 틈을 내고 그 결을 거슬러 새로운 대항담론을 구성해내는 능력, 그것이 인권의 힘이며 또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고 있던 태생적 한계들을 암세포처럼 증식시켜 국가인권위원회를 무너뜨리는 트로이 목마로 활용하게 되는 이유도 이런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실상의 권력이 못 마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출범 당시부터 정치권의 이해부족과 법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법관료들의 조직이기주의 그리고 대중적 무관심이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는 타협 속에서 법제화와 조직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중에 가장 크게 나타나는 한계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구성 방식이다. 원래 국가인권기구의 구성은 민주성과 책무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관한 파리원칙은 “인권을 위해, 인종차별에 맞서 활동하는 비정부단체, 노동조합, 관련 사회 및 직능단체, 사상 및 종교단체, 대학, 전문가들, 의회, 정부부처의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에 따라” 국가인권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인권의 보장과 증진에 관여하는 다양한 시민사회들의 참여가 국가인권기구를 조직하는데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이런 권고를 일언지하에 배척해버린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라는 인권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국가기관만이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에 관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권력분립의 틀에 따라 다양한 국가기관이 참여하고 또 국회의 추천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분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 나름 민주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아무런 실체도 없는 반론에 불과하다. 애당초 우리의 헌정체제는 1948년 출범 당시부터 좌익척결을 기치로 진보진영을 소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뜩이나 활성화되지 못한 시민사회는 철저하게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과정에서 배제된 채 과대 성장한 국가에 의해 획일적으로 통제되어왔다. 그 결과의 하나로 아직도 국회의원의 당선여부는 시민사회와의 연계성이 아니라 계파보스와의 관계 혹은 중앙당의 공천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의원들의 지지기반은 OO시 △△구 주민들이 아니라 자신을 공천해 준 아무개정당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3권 분립이라는 형식에 맞춘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은 그 자체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저들에 의해서 저들만의 의지와 전략을 가지고 지명되거나 임명되는 사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될 뿐이다.


이 점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성격 자체가 바뀌게 되는 현재의 상황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인권위원의 인선과정은 시민사회의 철저히 분리되어 손쉽게 임명권자 혹은 지명권자의 입맛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인권위원을 만들 수 있으며, 따라서 현실정치에서의 세력분포는 그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세력분포로 이어지고 그 결과 정치로부터의 독립은 요원한 환상에 불과하게 된다.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 그 자체가 현실정치의 복제판으로 그들의 투쟁을 대신하는 또 다른 정치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 다른 한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존재목적에 어울리는 독자적인 인권규범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통상적으로 인권의 요청은 헌법의 기본권 요청과 상당부분 중첩된다. 그러다 보니 국가인권위원회가 다루는 사안들을 인권의 논리가 아니라 헌법의 논리로 접근하기 쉽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국가 밖에서 혹은 국가를 넘어서는 지위에서 인권을 보장하고자 설립한 기구가 국가의 헌법논리에 함몰되어 오히려 국가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하였던 은평 뉴타운 개발 사업에 관한 주민들의 진정을 법과 절차를 준수했다는 이유로 기각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가 그 전형적인 예다. 기각결정에서 이 사업이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공익에 봉사하며 광범위한 주민 의견수렴과 동의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한 것은 헌법판단에 불과할 뿐 인권판단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해당지역 주민들의 주거권이나 생활권, 환경권, 나아가 생활가치의 복원에 대한 권리와 같은 인권사항들이 이 조치들에 의해 어떻게 변경되었으며 어떻게 침해되었는지를 국가인권위원회는 우선 판단했어야 했다. 이러다보니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소의 선례들을 학습하는 사례연습기구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법률뿐 아니라 헌법 혹은 헌법해석까지도 그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오히려 헌법 해석의 틀에 스스로를 묶어둠으로써 인권의 해방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 또한 예견되었던 것이다. 인권위원의 자격을 법률가 특히 변호사에게 개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법률가 집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률가의 양성체제를 미루어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법률가는 실정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관료적 훈련만 받아왔을 뿐, 인권에 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과 인권감수성의 함양은 오로지 개인의 열정에만 의존하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 상당부분 법률가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 그 자체가 실정법해석의 수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을 한정하겠다는 의지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 점은 다시 오늘날 국가인권위원회 폐해를 극단에까지 치닫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지 10년이 다가옴에도 독자적인 인권판단의 기준을 정립하지 못하고 헌법의 해석론이나 헌법재판소 결정기준들에 의존하는 한편 인권과 인권법의 구분 혹은 인권과 기본권의 구분조차도 명확히 하지 못함으로써 우리나라 인권레짐 자체의 안정화를 도모하는데 상당한 한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만일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독자적인 인권기준을 확립하고 이로써 헌법과 헌법재판소 결정 그리고 입법행위까지 유효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의 경우처럼 그렇게 쉽사리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악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5.
최근 많은 사람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떠나갔다. 두 명의 상임위원이 사퇴했고 한 명의 비상임인권위원도 그 뒤를 따랐다. 전문위원이나 자문위원 등 국가인권위원회를 보좌하고 협력하던 많은 사람들도 또 그러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기구축소 운운 하며 흔들어대던 바람에 이제 퀭한 간판만이 겨우 남아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의 존재이유조차 스스로 부정한 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양자택일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판국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사망선고를 하기도 전에 그의 재활용 여부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성급한 일이다. 물론 재활용의 방법이야 다양하게 열려 있다. 대대적인 수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정치권은 물론 경제 권력의 각성까지도 이루어져야 한다. 인권이 무엇이며 그것이 다른 어떠한 국가가치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라는 전 국가적 합의 또한 도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로 대한국민 인권선언 정도를 선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혹은 헌법을 개정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만들고 그 인권선언을 헌법의 전문에서 끌어들여 국가인권위원회의 행위준거로 삼도록 규정하는 한편, 형식적인 권고권뿐 아니라 시정명령권과 같은 실질적 권한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참 좋은 희망사항이다.


기왕에 꿈을 꾸는 김에 조금 더 나아가보자.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는 키워드다. 하지만 지금처럼 3대 국가기관이 나누어 먹기 식으로 쪼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선출하거나 아예 국민들이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물론 후자의 방식은 이러저러한 난점들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제외한다면 현재로서 최선의 방식은 국회선출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수결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권은 다수자의 의사에 대한 소수자의 자기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위원의 선출은 2차에 걸쳐서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1차는 인권위원의 절반에 대하여 국회 본회의가 일반의결정족수에 따라 선출한다.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2차의 선출절차를 따르되 여기서는 ①원내 제1당은 배제되며 ②나머지 의원들은 원내교섭단체(제1당의 원내교섭단체는 제외) 또는 이 목적을 위해 일정수 이상의 의원들이 연합한 의원단체가 동일한 의결권을 가지고 합의한 명부를 대상으로 투표하고 그 결과에 의해 인권위원으로 선출한다.


예컨대 현재의 의석분포로 보면, 인권위원의 절반은 국회 본회의에서 일반의결정족수에 따라 선출한다. 나머지 절반의 인권위원 선출과정에서는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혀 관여할 수 없다. 그 의원들을 제외한 원내교섭단체들(현재는 민주당 1개뿐) 또는 의원연합(가령 그 연합에 필요한 의원수를 5명 이상으로 한다면 자유선진당이나 미래희망연대등은 독자적인 구성이 가능할 것이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은 연합하여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등이 각각 1단체 1표의 의결권을 가지고 인권위원 후보자 명부를 구성하고 이를 한나라당 의원들을 뺀 나머지 의원들의 투표에 의해 그 선임을 확정한다(물론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내 다수당 특히 제1당과 제2당간의 야합을 막기 위함이다).


또 다른 희망사항으로는 이런 국회의 선출과정에 시민사회의 항시적인 참여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인권위원의 추천 혹은 검증을 위한 시민추천위원회나 시민검증위원회의 구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희망사항들은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멀리 있다. 고사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바라보아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그냥 하나의 꿈이거나 아니면 또 다시 수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 지난한 과정일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은 꿈꾸기보다는 꿈을 깨는 것이 더 절실해 보일지도 모른다. 더 나빠지기 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권한다툼을 벌이기 전에 국가인권위원회를 국민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일, 인권이라는 숭고한 이름이 그들의 탐욕으로 더 이상 오염되기 전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살처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먼 미래에 그 나마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재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