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핵을 넘어 생태도시로

전북 부안 등용마을, 에너지 자립을 이뤄가는 주민 이야기

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습니다. 안전하다던 원자력 발전의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일 방사능 누출 소식이 들려옵니다.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언론지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경제적이지도 않고, 더더욱 안전하지 못한 에너지임이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우습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은 ‘원자력 르네상스’ 운운하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섬겨왔습니다. 원전 수출로 나라가 떠들썩하였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없다”고, 이번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생거부안’으로 불리던 고장


지난 수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한 고을이 있습니다. 혹자는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발로 차버렸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인구 6만 명이 사는 조그마한 고을, 부안입니다. 변산 해수욕장과 채석강, 내소사로 제법 알려진 지역입니다. 너른 들녘과 바다, 솟은 산을 고루 갖추고 있어 예로부터 ‘생거부안(生居扶安)’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고장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장 반대운동이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난 1991년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와 전라북도는 ‘서해안 시대’를 운운하며 전북발전의 장밋빛 환상을 뿌려대었고, 개발과 환경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현장입니다. 부안과 군산을 잇는 세계 최장의 33.9km 방조제가 2006년 완공되었지만 아직도 내부개발 계획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서식지를 빼앗긴 상괭이(쇠돌고래)가 집단 폐사하는 등 뭇 생명을 가둔 채 생매장시킨 대책 없는 개발논리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와 함께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있었습니다. 2003년 ‘위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핵폐기장)’ 추진에 반대하며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었었습니다. 생전 데모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평범한 시골주민들이 2년여 동안의 반대투쟁으로, 구속자 55명을 포함하여 300여 명이 사법 처벌을 받고 500여 명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1년이 넘는 촛불집회와 등교거부, 고속도로 점거 등 수많은 반대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주민투표로 이어졌습니다. 2004년 2월 14일 전국의 변호사, 종교, 시민사회, 민중단체 등 각계각층과 함께 전대미문의 ‘지역주민에 의한 독자적인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유권자의 72%가 투표했고 92%가 핵폐기장을 반대했습니다. 이로써 부안 핵폐기장은 사실상 일단락되었지만 이후에도 정부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2005년 9월이 되어서야 종결되었습니다. 오랜 기간만큼 지역공동체의 상처는 깊고 심각했습니다.


정부예산 1천억 원이 투자되어 국내 최초의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와 산업단지가 오는 5월 변산에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와는 다른 차원으로 인근 마을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하여 추진하고 있는 ‘주민에 의한’ 에너지 자립마을이 있습니다. 핵폐기장의 아픔을 딛고 ‘생태도시 부안’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2003년 당시 부안주민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내 고장 부안에 핵폐기장 결사반대!”에서 “대한민국 어디에도 핵폐기장 반대!”로. 그리고는 “정부는 핵폐기장을 포함한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하라! 에너지정책 전환하라!”고.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부안사람들은 전기 안 쓰냐? 왜 당신들은 반대만 하느냐?”고 몰아붙였습니다. “우리가 쓰는 전기의 40% 가량을 원자력이 만들고 있으니까, 어딘가에 방폐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주민들은 억울했습니다. “그럼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에 세우면 될 거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부안 방폐장은 일단락되었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외쳤던 구호를 이제는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부안 방폐장이 일단락된 이후 주민들의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이어졌습니다. 지역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종자돈을 마련하고 주민들이 직접 출자하여 전국 최초로 시민발전소를 세운 것입니다.



외치던 구호를 생활 속 실천으로


2005년 등용마을과 원불교 부안교당, 부안성당에 ‘햇빛발전소 1,2,3호기’가 설립되었습니다. 용량은 각각 3kW로, 연간 3500~3700kWh를 생산하며, 한전을 통해 1kW당 7164원에 15년 동안 판매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주민들이 ‘착한 전기’를 생산하는,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발전사업자가 된 것입니다. 이어서 2008년에는 각각 10kW씩 총 30kW를, 2009년 12월에는 5kW를 추가 설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추가건설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정부가 태양광 발전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게끔 하였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폐지하고 한전 자회사 등 대형 발전회사에게 일정비율의 신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생산하게끔 하는 ‘의무할당제(RPS)’로 전환하였기 때문입니다.


전북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에 있는 등용마을은 약 30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변산 쪽으로 5km만 더 내려가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곳 등용마을에서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41kW 설치되어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태양열 온수기가 있고, 2007년에는 35RT 규모의 지열 냉, 난방 시스템을 설치하여 교육관과 가정집 등 4채의 건물에 냉난방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30평 용량의 태양열 난방시설을 설치하였습니다. 2011년 2월에는 바이오펠릿(나무펠릿) 보일러를 3동 설치하였습니다.


에너지자립마을이란 2015년까지 마을에서의 에너지 사용량을 대폭 절감하여 30% 이상을 줄이고, 총 사용에너지의 50%이상을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 마을을 의미합니다. 2011년 현재 설치된 41kW의 태양광발전은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의 약 60%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08년부터 해마다 전기를 포함한 마을에너지 절약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백열등을 고효율 전구로 교체하고, 멀티 탭(대기전력 차단장치)을 나눠주어 전기를 아끼는 등 구체적인 절전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절약이 습관이 되어있는 노인들께서 해마다 10%씩 줄여 총 30%의 전기를 아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만에 끝내고 생색낼 일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문제이기에 길게 보면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을의 전력사용량을 절약하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상 기대한 만큼 전기사용량이 줄지 않은 것입니다. 이유인즉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유가로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보일러 가동을 멈추고 전기장판에 의지하여 겨울을 보내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전기장판 사용을 못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난감해하던 끝에 생각한 것이 집을 고쳐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저소득층 주택단열 개선 시범사업(Weatherzation)’으로 어렵게 홀로 사시는 할머니 댁을 수리 하였습니다. 문과 창문을 2중창으로 교체하고, 천정과 벽에 단열재를 시공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집일수록 집도 오래되고 부실하여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기 마련입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설치에 앞서 주택단열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당장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 형편에 집수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는데 에너지를 통하여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보게 되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함께 팔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지금도 가난하고 어려운 농촌의 독거노인들은 추운 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건만, 지자체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복지예산의 집행이라곤 ‘전기장판 무상공급’이 대부분입니다. 옹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안 곳곳에서는 ‘유채꽃 축제’가 열렸습니다. 농민들이 경작한 바이오디젤용 유채, 그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는 때에 열린 행사입니다. 막대한 예산으로 치르는 대형 축제가 아니라, 작지만 마을마다 열린 축제에는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바쁜 농번기 일손을 잠시 멈추고 찾은 농민, 유치원 아이들부터 노인요양원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화사한 꽃밭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노랗게 꽃을 피운 유채는 수확을 하여 바이오디젤 공장으로 시집을 갑니다. 그곳에서 석유를 대체하는 식물성 기름, 바이오디젤로 제조되어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는 착한 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안에서는 유채꽃밭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7년에 시작되어 3년간 진행되었던,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바이오디젤용 유채생산 시범사업’이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논과 밭에서 석유를 생산한다는, ‘착한 바이오디젤용 유채’를 생산한다는 농민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격려하기는커녕, 태양광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없앤 것과 마찬가지로 3년 동안의 시범사업이 종료되기도 전에 “경제성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현재 바이오디젤은 생산, 가공, 유통, 판매, 소비 모든 것이 불법이 되었습니다. 농민 스스로 유채를 심고 거두어 바이오디젤로 가공하여 ‘자가소비’하는 것조차 불법입니다. 지역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바이오디젤용 유채를 심으면서, 오랜 기간의 선험적인 실천을 근거로 정부와 지자체를 앞서서 이끌어왔는데, 그나마 있던 쪽박마저 깨버린 꼴입니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100년 계획


다시 등용마을 이야기입니다. 마을의 부안시민발전소에서는 주말과 여름방학 기간에 ‘재생가능 에너지 체험학교 및 캠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숲과 바람과 태양의 학교-재생가능 에너지 체험학교’는 햇빛 에너지로 태양광 발전기와 태양열 조리기, 바람 및 운동 에너지로 소형 풍력 발전기와 자전거 발전기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러한 소형발전기의 제작과정에 참여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직접 다루고 만지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외부 전력이 없이 생산된 전기로 생활을 합니다. 밤에는 촛불로 생활을 하는 ‘전기 없이 생활하기’와 ‘내가 만든 전기로 영화보기’등을 진행합니다.


‘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마을’이지만 결국 등용마을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목표는 ‘마을공동체의 회복’입니다. 아무리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 마을이 된다 치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빌리지(Green Village)사업’이나 ‘저탄소 녹색마을’이 있습니다. 수많은 지원금으로 에너지 자립마을을 추진하더라도 주민들이 참여하여 함께 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금의 약발(?)이 떨어지고 나면 무슨 돈으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등용마을은 지금 마을주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공부하고 미래를 계획하느라 한창입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주민에 의한 마을 만들기’에 성공한 사례에 대해 강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마을 만들기 모범지역 현장을 방문하여 답사를 합니다. 여름에는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어르신 캠프’를 진행하고, 겨울에는 마을 작은 영화관을 여는 등 마을공동체를 향한 발걸음을 조금씩 내딛고 있습니다. “진작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버린 농촌에 언제까지 젊은이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마을의 노인들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면 젊은이들이 알아서 들어올 것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등용마을 중·장기 계획’을 주민 스스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에 불과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우리 마을 발전 100년 계획’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뜻과 지혜가 모아진다면 다음에는 ‘하늘이 알아서 도울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보다 주민의 자각과 준비가 우선입니다. 앞으로도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나가고, 나무 펠릿 보일러 설치와 축산분뇨를 활용한 소형 바이오가스 열 병합 시설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핵과 3천억 대신 선택한 아름다운 고향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의 ‘핵 악령’이 대한민국 도처를 떠돌며 한바탕 지역 공동체를 짓쑤셔버리고 지나간 곳이 모두 다 그러하듯 부안도 주민간의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탓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생업을 내팽개치고 싸운 덕에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경제는 가히 바닥을 맴돌 지경이었습니다. 한 조사기관에 의하면 지난 2003년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으로 532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손실되었다는 연구보고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부안은 바뀌고 있습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희망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는 지난 부안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촛불집회와 각종 행사에서 교육받고, 스스로 외쳤던 구호인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라!”를 솔선수범하여 앞서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MB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은 과거 70년대 새마을운동을 연상케 하듯 전국 방방곡곡에 구호로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뚜껑을 열고 실상을 들여다보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녹색’은 간데없이 온통 ‘개발’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과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사실상 녹색을 구실로 진행되는 ‘고탄소 회색성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 미래담론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내용으로 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부안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부안 주민들은 ‘원자력-핵폐기장’이 아닌 ‘재생 가능한 에너지-태양광, 풍력’을 선택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주겠다고 약속한 3000억 원의 지역발전 지원금 대신 ‘산, 들,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향’을 선택하였습니다. 주민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 자각, 민주적인 경험은 사라지거나 잊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이렇게 조금씩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부안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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