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끝나지 않는 전쟁

많은 사위들이 그렇듯 처가에 가면 장인어른과 술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건설회사에 다니다 은퇴하셨고 정주영의 열혈 팬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자인 장인과 9시 뉴스를 틀어놓고 술을 마실 때면 저는 그저 벙어리 신세가 되기 일쑤입니다. 아주 가끔 요즘 젊은 사람들 생각을 물어보실 경우에야 에둘러 제 의견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조심스럽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술자리에서 한국전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장인은 전쟁 통에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오신 분인데 남녘에 내려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충남 공주 근처라고 합니다. 왜 하필 공주였나 여쭸더니 그쯤에서 인민군이 피난 행렬을 앞질러 가더랍니다. 그 시절 장인어른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죽음이 지척에 있었던 피난길의 기억은 아주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넝마주의공동체를 이끌었던 윤팔병과 철학자이자 변산공동체인 윤구병 형제 이야기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일병부터 구병까지 아홉 형제 중 여섯은 좌익으로, 부역자로 몰려 처형되거나 실종되고, 일곱째는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흔한 관용구로 어찌 전쟁을 겪은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윤팔병, 윤구병 형제의 아버지도 제 장인의 어머니도 자식을 많이 낳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장인어른에게서 피난 시절 이야기를 들은 후 이른바 ‘반공 할아버지’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요즘 꽤나 유명한 반공 할아버지 한 명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KBS에서 6.25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전쟁과 군인>이란 다큐멘터리가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랐고 좌익 척결에도 앞장섰던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작진의 해명이 참 구질구질합니다. “(백선엽이) 독립군을 실제로 죽였는지, 민간인을 잔인하게 고문했는지는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당사자’가 백선엽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피학살자 유족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자라면 정말 비겁하고 후자라면 참으로 무책임합니다.


지난해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나온 여러 책들 중 눈길을 끌던 두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과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라는 책인데 두 권 모두 구술 인터뷰를 통해 민초들이 실제로 겪었던 한국전쟁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헤쳐나가야 했던 20대 초반의 여성, 그러나 국가의 공식 기억에서 철저히 지워지고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장한 어머니’로 추켜세워졌지만 현충일 행사에서 엄숙한 추모분위기를 망친다고 곡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군경미망인, 전쟁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옮아온 가정에서 폭력과 함께 살아야 했으면서도 정작 보훈 대상에서 제외되어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던 상이군경미망인, 그리고 남편이 왜 죽었는지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냉가슴으로 60년을 버텨온 피학살자미망인,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그나마 지난 6월 30일 울산지역 보도연맹사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울산 보도연맹사건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요구는 시효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보상책임이 없다”는 고법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며 되돌려 보낸 반가운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실을 은폐해왔던 국가가 이제 와서 시효가 지났다며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고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사법부가 그래도 KBS보다는 덜 비겁하여 다행입니다.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면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고 변명하기 전에 그 당사자를 찾아 나서고 그들이 어찌 살아왔는지, 왜 아직도 말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5월 《사람》에서는 앞으로 《사람》이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를 독자 여러분께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응답해준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노인 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사실 특집으로 ‘노인 인권’을 다뤄보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우리의 준비가 부족해 미뤄졌더랍니다. 하지만 이번호에 실린 ‘부양의무 기준, 죽음의 제도’라는 글을 읽으며 이 주제가 언제까지 미루어 둘 수만은 없는 사안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망신창이가 된 한국사회를 그래도 이만큼 살만하게 만든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는커녕 고작 지하철 공짜표를 가지고 ‘과잉복지’ 운운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노인들은 하루하루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59년 전에 전쟁은 멈추었지만 이들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사실 지면이 넘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방방곡곡 전쟁이 아닌 곳이 없지만 또 하나의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의 싸움입니다. 며칠 전부터 자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으로 85호 크레인의 안부를 확인하게 됩니다. 제발 무사히 그이가 내려왔으면 합니다. 그런데 다섯 차례 뭇 생명을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김진숙 씨에게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선뜻 말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크레인 아래인 이곳도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요. 김진숙 씨가 서 있는 크레인 위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중 어디가 더 위험한가요?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김진숙 씨도 바로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 누군가 절박하게 외치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그리고 어렵지만 답을 찾도록 노력해야지요.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이야말로 위험한 곳입니다. 다시 물어보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저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당신은 안녕한가요? 우리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말

* 지난호 편집인의 글에서 ‘김지하의 <동아일보> 칼럼’을 ‘김지하의 <조선일보> 칼럼’으로, 특집 ‘5.16 60년, 박정희의 유산과 싸우다’를 ‘5.16 50년, 박정희의…’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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