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마을과 정치

풀뿌리운동(정치)과 인권운동은 ‘더불어 사는 것’을 위해 필요한 활동일 것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활성화가 필요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형성, 유지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과 공생, 그리고 배려와 연대가 핵심인데 이것이 풀뿌리운동과 인권이 만나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도심 속 공동체로 알려진 성미산마을의 활동 사례는 의미 있을 것이다.


성미산마을은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인근에 육아, 교육과 먹거리 등의 필요에 의해서 모여 살다 서로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 다양한 생활의 욕구를 공동으로 해결하면서 마을이 되었다. 이제는 교육 뿐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제기되는 생애주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택, 문화, 노후까지도 같이 고민하게 되는 정도가 되었다. 마을주민 아난도에 의하면, “고을 향(鄕)자가 바로 밥솥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상형으로 마을, 고향, 시골, 대접을 뜻하는 문자라 하니, 지금 성미산마을의 모습이 꼭 그러하다. 옛날에 밥솥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았다는 것은 민생고를 같이 해결했다는 얘기인데, 생활의 욕구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현재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모습에서 그 마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순전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한 고민 끝에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4년 전 이사를 왔다. 육아와 교육의 대안으로 접근을 했지만, 마을은 이제 개인과 가족에게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에서도 삶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아이가 성장해 감에 따라 아이의 활동영역은 더 넓어지고, 이제는 교사와 학부모의 돌봄을 넘어서, 지역과 소통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생기게 된다. 아이들에게 ‘교육의 장’으로써 지역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공동체의 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내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복지, 생태. 환경, 경제, 문화 분야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기에 이르면서 우리 ‘마을’은 현대 위험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까지 발전해 오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 나중에 보니 풀뿌리운동


성미산마을의 형성 과정에서 성미산 지키기 싸움을 빼놓을 수 없다. 성미산은 마포구 유일의 자연산이면서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놀이터, 생태학습의 장, 쉼터, 운동 공간, 교류의 장이었다. 그러던 성미산이 배수지와 아파트로 개발되려 하자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생활인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저지하는 싸움을 하며 공동체는 더 단단해지게 되었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의 과정을 살펴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앉아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때까지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면서 진행되었다.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투표나 찬반 의사를 확인하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고, ‘모두가 합의할 때까지 논의하고 숙의하고 수정하고 또 논의하는 방식’을 택했다. 긴 시간의 대화와 토론은 대부분 예상했던 바대로 결정되지만, 그 결정 안에는 개인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소통에 있어서 답답함을 느끼고 소외감을 갖게 되며 무관심해지게 된다는 것을 함께 생활하면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결정은 실천과 책임감을 집단적으로 담보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경험도 하였다.


이렇게 성미산마을은 개개인들의 문제였던 육아와 교육, 먹거리 등을 공동으로 해결하려 하였을 뿐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 지역사회를 스스로 건설하고자 하는 활동을 하여 왔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계획적이지도,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안적 삶,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고자하는 풀뿌리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풀뿌리운동에 대해 하승수 변호사는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1)이라고 하였다. 장이정수 초록상상 사무국장은 풀뿌리 시민운동의 공통점을 첫째, 주민의 욕구에 기초한 운동이라는 점, 둘째, 운동의 대상이 어린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노동자, 이주자 등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라는 점, 셋째, 운동의 주체가 주부 등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라 정리하였다. 더불어 풀뿌리운동은 주체 형성의 운동이라며 ‘주체’의 ‘존재’라기 보다 ‘생성’의 운동이라고 정의하였다. 개개인은 따로 흩어져 있을 때에는 단지 교육의 대상으로, 소비자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존재하지만 삶의 문제가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고 자각했을 때 주체는 변화하고 새롭게 탄생하는 것2)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풀뿌리운동 전문가들은 풀뿌리운동을 통해 삶과 사회의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다 보면 대의정치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삶의 문제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의 정치는 그렇지도 못하여 기득권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보다는 기득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복지 문제, 먹거리 문제, 급식 문제, 보육 문제, 환경 문제에 진지한 관심이 없다3)고 진단한다. 하기에 풀뿌리운동이 지역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접하며 성미산마을은 애초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인 지역을 바꾸기 위한 풀뿌리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문제보다는 기득권자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에 찬성하는 행정기관과 기득권 정치에 맞서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성미산마을의 풀뿌리운동, 풀뿌리정치는 자립과 자치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그 긍정성이 내부에 머물러 있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 더불어 살기 위한 삶을 꾸리고 지역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험도 상존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을 하면서 현실 정치, 기득권 정치에 의해 우리의 삶의 공간이 한순간에 파괴되고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최근 더 적극적으로 정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 시작된 마을과 정치에 대한 수다


지난 6월 14일 마을주민 10명이 늦은 밤 편안한 복장으로 한 주택에 모였다. 그들은 마포지역에서 주민/시민 역량이 주체가 되어, 이른바 ‘주민참여정치’, ‘좋은 정치’를 활성화하는 모임을 만들기 위한 초동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3시간가량 이어진 이야기에 이어 뒤풀이 자리까지 5시간이 넘게 마을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 아니 수다를 떨었다. 이 날 모임을 제안한 글의 일부를 살펴보면 성미산마을에서 어떤 정치를 하려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이다.



이런 걸 왜 만들려고?
지속가능한 성미산마을을 만들려면 ‘정치’는 피해갈 수 없다. 앞으로 마을의 생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건이 어찌 성미산 파괴와 같은 것 하나만 있겠는가? 지역재개발과 같은 개발 정책은 마을 자체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지역자치 역량과 정치 역량을 키워가는 것은 마을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무슨 정치?
정치적 성향이 워낙 다종다양한지라 정치 관련 논의를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무슨 정치적 입장/정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 참여 주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정치에 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정치란 전문 정치인이 수행하는 행위라거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조율하기가 어렵다거나, 정치 주체인 주민/시민은 들러리로 전락한다거나 등등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대리(인) 정치가 가장 나쁜 행태이다.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은 단지 ‘아주 나쁜 놈과 좀 덜 나쁜 놈’을 골라내야 하는 선택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전문 정치인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이는 근대적이며, 낡은 방식이다.



그래서 주민참여정치!
좀 더 참신하고 멋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지만, 별 대안이 없어서 그냥 ‘주민참여정치’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는 정치 행위의 주체가 지역 주민들 당사자라는 뜻이고, 정치인은 주민들이 직접 내세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대리자가 아니라 대표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갑자기 특정 정당에서 특정 인물을 내세운다. 그 사람은 우리가 이전에 잘 알지도 못한 사람이다. 어떤 관련성도 없다. 주민들은 투표를 한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잘해주겠지.’ 이러한 투표 행위와 정치 행위는 수십 년 동안 관행화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선거 절차를 거쳐 선출된 반장이 학생들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담임선생님의 대리인(관리자) 노릇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주민참여정치’란 정당 중심의 대리정치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주민 직접 참여의 체계 구축과 조직 활동 등과 관련한 제반 활동을 말한다.



여기서 주민은 누구?
주민참여정치라는 용어에서 말하는 ‘주민’은 누구일까? 여기서 주민은 무차별적인, 인구통계상 익명의 주민이 아니라 직접 조직되었거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주민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맞다. 단지 당사자들일 뿐이다. 선거는 거주자 전체가 참여하는 투표로 진행되는데, 당사자 조직(또는 네트워크) 몇몇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투표행위는 개별의 독립적 정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맞지만, 그 개별의 의사는 절대로 독립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문화와 이해관계와 수많은 집단의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력을 지금까지 보수적인 지역 주민조직들이 행사하고 있었고, 이는 보수정당들의 지역 선거조직의 바탕이 되었다. 지역 여론을 만들고, 후보를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고, 인정과 관계에 기반을 둔 표를 조직하고, 더 나아가 수많은 주민조직들과 접촉한다. 누가? 단지 몇몇 사람들이. 어떻게? 일반 주민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밑바탕으로.



그럼에도 우리가 나선다고 이걸 뒤바꿀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 번도 ‘주민참여정치’를 내세우며 직접 나서본 적이 없는데 어찌 뒤바꿀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뒤바꿀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성미산마을이 이미 보여주었다.



이제 초동모임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이미 성미산마을은 지난해 지방선거에 주민후보를 출마시키며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을 한 경험이 있다. 비록 2명을 선출하는 지방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주민후보로 출마하여 거대정당들과 경쟁하다 3등으로 낙선했지만 그 가능성은 확인했다.


지난해 주민 생활정치, ‘우리가 만드는 신나는 동네정치’를 위해 주민들은 주민참여-주민자치-생활정치 실현을 위한 주민모임 ‘마포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약칭: 마포풀넷)’을 결성하여 새로운 정치실험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성미산마을은 육아, 교육, 문화, 복지, 경제, 환경 등등의 자발적 활동은 활발하였으나 정치는 거의 금기시되어 왔었다. 2002년 성미산 지키기 일환으로 지방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킨 적은 있었으나 이는 주민참여정치를 위해서가 아닌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위한 홍보수단의 성격이 더 강했었다. 하지만 그 후 각양각색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는 많았지만 정치를 공론화하기는 어려웠다. 자칫 정치참여에 대한 논란으로 화기애애한 마을의 분위기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포풀넷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2007년 말부터 다시 위기에 처한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주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개발 중심적인 행정기관과 구의회, 시의회를 접하며 느낀 주민들의 분노였다. 더불어 2008년 촛불문화제, 2009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접하며 느낀 민주주의의 위기가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2010년 지방선거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동네정치부터 바꿔보자는 마음이 모여 마포풀넷을 결성하게 된다. 2010년 1월 18일 성미산마을대표자회의를 통해 6.2지방선거에 주민후보를 내기로 결정하고, 그 준비단위로 마포풀넷을 결성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후 마포풀넷은 본격적으로 주민생활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주민조직-주민공천-주민후보’에 공감하는 주민들을 회원으로 모집하였다. 그리고 주민후보 등록을 받고, 토론회 등을 거쳐 주민후보 선출 절차를 밟았다.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주민이 공천하는 후보를 선출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정당의 통제를 받는 후보가 아니라 주민들에 의해 통제받는 후보가 선출된 것이다. 주민후보는 공천권자인 주민들과 협약식을 체결하여 활동의 원칙을 세웠다. 또 주민후보는 공약 개발도 전문가 집단이 아닌 주민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구체화하였고, 선거 홍보물도 후보가 주인공이 아닌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게 만들었다. 선거운동은 선거 캠프 구성에서부터 직접 선거운동까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역할 분담으로 이루어지고 진행되었다. 낮 시간에는 엄마들이 중심이 되고, 밤 시간에는 퇴근한 아빠들이 중심이 되어 선거운동에 참여하였다. 매일매일 선거캠프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주민들로 북적였고, 선거는 전쟁이 아닌 주민들의 즐거운 축제와 같았다. 주민후보를 대하는 유권자들도 처음엔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주민후보라는 점에 있어 생소해하다가 점차 새로운 정치실험에 대해 공감을 표시해주고 격려로 화답해주며 선거 분위기도 좋아졌다. 선거운동을 나가면 먼저 어느 정당이냐고 물어오는데, 이에 무소속 주민후보라 답하면 대다수 유권자들은 “젊은 사람이 정당공천 받기 쉽지 않지” 하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지금까지 후보는 정당 후보와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한(정당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진) 무소속 후보만 존재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성미산마을에서 진행되었던 한시적 주민참여정치조직 마포풀넷은 가능성을 안내하였고, 올해 다시 본격적으로 일상적 주민참여정치를 위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성미산마을 풀뿌리 정치실험은 이 글 서두에서도 밝혔듯 더불어 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활동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활동이 운동이라는 목적의식으로서보다는 스스로 필요에 의해, 유쾌한 문화가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다가 있는 일상이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1) 하승수,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2006.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창립 토론회 주제 발표문 2)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이매진. 2010. 3)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