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트위터와 기적의 매뉴얼

지난 2월 말, 49일간의 홍대 투쟁이 승리로 끝나던 날, 나는 그때의 말할 수 없이 먹먹한 감동을 기억한다.


“하니까 되더라는 최초의 경험.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모해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라고 『소금꽃나무』에서 김진숙 씨는 쥐똥 나오는 도시락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얻어낸 첫 승리를 회고하며 적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인의 제안으로 ‘홍대 청소노동자 돕기 조선일보 광고’ 작업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1월 10일, 트위터로 성사된 번개에서 김여진 씨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는 홍대 사건에 대해 단 한 줄 써주지 않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자는 것이었다. 오로지 트위터로만 모금을 진행했고, 7일 만에 1200만 원이 모였다.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아주 예외적인 단가에 허락해준 이 광고는 큰 이슈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자발적으로 모인 트위터러(트위터 사용자)들이 홍대 청소노동자 돕기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이 두 가지 사건은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새로운 참여방식을 크게 알렸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광고나 바자회 준비에 참여한 이유가 사회나 노동 문제에 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좀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단지 ‘아주 조금 의미 있을 것 같아서’ 그 일을 수락한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자발적으로 한다는 날라리 외부세력의 아름다운 정체성. 이것은 노동 문제에 관심 없던 많은 사람들을 ‘날라리’가 되게 만들었다. 직장인, 프리랜서, 약사, 의사,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홍대로 왔다. 그들은 깃발 대신 기타를 들었고 구호를 외치는 대신 김치를 담갔다.


조선일보 광고를 위한 모금은 금액이 올라가는 과정이 속속 트윗으로 공개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쭉쭉 올라가는 모금계좌의 금액을 확인하고 고무되었다. 또한 6일 만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작은 참여를 했을 뿐인데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동안 혼자서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것을 기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것이 홍대 문제 타결이라는 극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것이다. 더 거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적을 만드는 매뉴얼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날라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도 조직하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당연히 한다’는 마법의 동의. 누가 안 나온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그때 없었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날라리들은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언가 했다. 작지만 눈에 띄는 성과들이 이어졌다. 트위터에서 주고받은 멘션만으로 ‘쥐벽서 사건’의 벌금을 내주기 위한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강정마을 돕기 현수막 쓰기 번개’가 성사되었다. 사람들은 작은 힘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성과를 경험했고 기억했다. 스스로 매뉴얼을 만든 셈이다. 여기서 온라인에서 소소한 참여들이 이루어냈던 몇 가지 멋진 일화를 소개한다.



쥐벽서 티셔츠 쥐20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는 이유로 검찰이 실형을 구형한 분이 탄원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트윗에 올린 후 400여 명의 탄원서가 모였다. “동참”, “10분이면 써요”라는 트윗 글과 알티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유명 영화감독들도 탄원에 동참했고 실형을 벌금형으로 바뀌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자 날라리들은 쥐 그림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 벌금을 메우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이틀 만에 600명 넘는 사람들이 즐겁게 동참했다. 수익금으로 벌금을 충분히 다 채우고도 주문이 계속 이어져 “죄송합니다. 더 이상 팔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려야 했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표현까지 힘으로 강제해보려고 했던 공안당국을 보기 좋게 웃음거리로 만든 사건이었다.



100개의 항의글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해상공사 준설작업이 시도되었던 날이었다. 트위터에서는 위기의식이 퍼졌다. 바다에 시멘트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부산경찰청 홈페이지에 한진중공업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는 200여 개의 항의글이 올라갔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해군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적었던 트윗은 이렇다. “글 하나는 힘이 없을지 모르지만 100개의 글은 힘이 됩니다.” 순간 놀라운 속도로 알티가 이어졌고 하나 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썼어요”, “했어요”라는 답글은 또 다른 알티를 불렀다. 반나절 만에 실제로 글 100개가 올라갔다. 이 소식을 강정 트위터 통신원인 김세리 씨에게 전했더니 준설작업을 막느라 힘든 상황에서 홈페이지에 항의글 100개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해군이 글을 전부 삭제해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글을 전부 삭제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사람들의 무서운 항의를 알아차렸다는 것, 항의가 두려웠고 충분히 압박을 느꼈다는 사실이 성과로 느껴져 기뻤다. 그날 해군은 결국 준설작업을 실행하지 않고 돌아갔다.



네이버 검색어를 바꾸다 평소에 한진중공업에 관해서는 스스로는 잘 언급하지 않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급하게 도움을 호소했다.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전날인 6월 10일, 한진중공업 사측은 조선소 봉쇄를 시도했다. 유성기업 사태 때 있었던 용역깡패의 폭력이 한진중공업에서 재현되기 시작했다. 멀리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유성기업이나 BBK 사건 때 시도했던 네이버 검색 치기가 떠올랐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트윗에 네이버 검색어 창에 한진중공업을 쳐보자고 제안했다. 좀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답변이 왔다. “아무리 해도 안 떠요.” 정말 그랬다. 그러다 한 두 사람이 더 제안하기 시작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을 치자며 리트윗을 했다. 하지만 네이버 검색어에는 여전히 연예인들의 이름만 가득 떠 있었다. 아무리 치고 또 쳐도 뜨지 않았고, 한 여배우와 여배우 남자친구의 이름, 그들의 열애설이 계속 떠 있었다. 순간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 연예인의 새 남자친구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고작 검색창에 검색어를 치면서 눈에 눈물이 고인 건 처음이다. 그런데 더 눈물이 났던 것은 흐릿한 눈물 사이로 ‘한진중공업’이라는 검색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힘을 얻었다. 하루 종일 트위터에서 ‘한진중공업’ 검색어 치기 운동이 벌어졌다. 10위에서 9위, 9위에서 5위, 3위……. 배우 김여진 씨는 검색어가 떴으니 기자 분들 기사를 좀 써 달라고 다급하게 호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꾸 치니까 검색어 순위가 정말 올라간다.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재미있다”며 진심으로 즐겁게 참여했다. 그날 검색어 순위는 암묵적인 게임처럼 타임라인을 가득 도배했다. 물론 그 타임라인을 바라보며 유치하게 검색어 조작이나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세상을 낫게 하는 데 무엇을 하셨냐고. 우리는 적어도 ‘여배우의 남자친구 이야기가 수 십 명의 노동자가 용역깡패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보다 더 주목받는 현실’을 바꿨다고. 잠시나마 바꿨다고.



하룻밤 사이의 기적, 외신의 보도 한진중공업과 85호 크레인이 최초로 외신에 알려진 것은 사실은 아주 절박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차 희망버스가 다녀간 뒤 뿔난 한진중공업 사측은 강제진압을 실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짐을 모두 내렸습니다. 만약 크레인 강제진압을 하게 되면, 선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라는 트윗 글을 올렸다. 날라리의 한 친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와 통화했다. 다들 그 글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겨레> 영문 기사를 외국 기자들에게 트윗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김태동 교수의 제안이었다. 그것을 보고 링크하며 배우 김여진 씨는 외신기자들에게 “나는 한국의 여배우이고 내 친구가 크레인 위에서 160일째 농성하고 있다.”라는 멘션을 보냈다. 트위터러들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과연 외국 사람들이 볼까,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약한 방법이었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영문 기사를 링크하고 트윗하며 외신기자들에게 멘션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도 프랑스어로 트윗했는데 그 트윗이 불어권인 아프리카까지 퍼졌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기자가 한국 유학생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트윗했고 영국 가디언지도 리트윗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마침내 알자지라 기자 한 명이 흥미를 표시했다. 곧이어 외국 유학중인 한 트위터러가 그 기자와 연락을 취했다며 아침 미팅에서 이 건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자 한진중공업 크레인 사수대 조합원들이 그간 찍었던 동영상 자료를 영문으로 만들어 기자에게 보냈다. 트위터로 급하게 연락된 미국 유학생이 번역을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날 한국시간 새벽 4시, 알자지라의 인터넷방송 더 스트림(The Stream)에서 김진숙과 김여진 그리고 85호 크레인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조선소 봉쇄 당시 조합원들이 용역의 폭력으로 끌려 다닌 동영상도 공개되었다.



이 작은 사건들로 사람들이 얻게 된 것은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면 된다는 생각.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 세상은 힘 있고 강한 사람들이 바꾸는 게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이 자리에서 바꾼다는 생각. 그것에 대한 믿음이 우리가 얻게 된 매뉴얼이었다. ‘약한 사람들은 그저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흔들렸다. 표면상으로는 고작 트위터로 해낸 작은 일들이었지만 사람들 내면의 생각은 지각변동처럼 크게 흔들렸다
‘희망의 버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시민운동의 결정적인 홈런이었다. 잠재적으로 꿈틀대던 분노, 공감, 사랑의 마음들이 활짝 꽃을 피웠다. 예를 들어 1차 희망버스 때 나의 시위도구는 아이폰과 트위터였는데 희망버스 상황을 실시간으로 올리면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응원 메시지와 감동의 댓글을 읽었다. 그날 영도조선소에 있었던 것은 700명이 아니라 그 뒤에 함께하는 수 만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응원의 글은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여러분”이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곳에 있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멘션만 열 개도 넘게 받았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에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알티와 응원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무관심과 안락한 삶을 살던 사람들은 스스로 풀지 못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2차 희망버스 때 거대한 참여로 폭발했다.


희망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나와 굳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요점은, 이것이 주모자가 없는 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기존의 조직된 노동단체들이 놀랐다. 두 번째로 언론과 경찰이 놀랐다. 경찰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으나 주모자와 배후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언론은 어떻게든 이것을 타파해야 할 ‘조직 단체’로 몰아세우고 싶었지만 그러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희망버스는 단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성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트위터라는 생명체와 그 가능성


기존의 미디어는 일방적이었다. 미디어가 대중의 특징을 정했다. 미디어가 어림잡고 있는 대중의 특성은 ‘자극적인 것과 화려한 것, 세일을 좋아하며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어 하고 부자들을 부러워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광고도 경쟁도 죽었다. 트위터에서 살아남은 것은 감동을 주는 글과 진정성 있는 글, 연대를 호소하는 글이었다. 사람들은 의미 있다고 생각될 때 리트윗을 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글을 팔로우(구독)했다. 그리고 기존의 만들어진 언론의 불편한 진실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트위터는 기존의 미디어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소통되었고 선한 의도를 가진 가치 있는 글들이 걸러지고 물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존의 광고나 미디어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통탄하기 시작했다. 수평적인 소통과 정의로움에 대한 가치 선택이 사람들로 하여금 ‘깨어나게’ 한 것이다. 트위터에서 김연아보다 김진숙, 김여진이 더 인기를 얻은 것은 선한 의지에 대한 추구였다.


그 결과로 부와 성공이 아닌, 다른 가치가 트위터를 덮쳤다. 그것은 정의와 연대와 사랑과 감동이었다. 혹자는 트위터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성향에 놀라워했다. 사실 대중은, 사람들은 누구나 아낌없이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내면에 있지만 기존 미디어는 이것을 무시해왔다. 하지만 ‘팔로우’(가치 선택)와 ‘리트윗’(연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트위터는 대중들이 기존의 미디어에서 판단했던 것보다 훨씬 선하고 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힘의 가장 놀라운 폭발력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강정에, 한진에 무슨 일이 닥치면 트위터러들이 당장이라도 세계 외신에 뿌릴 준비가 되어 있고 당장이라도 항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 스스로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잘 하는 것을 한다는 것만큼 무서운 힘이 어디 있을까. 어떠한 권력도 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상대할 수 없었다. 언론도, 권력도, 이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을까? 트위터에서 벌어졌던 모든 크고 작은 움직임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SNS로 뭔가 한 건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한다. 트위터라는 생명체는 다루려 하면 다루어지지 않는다. 조직하려 해도 조직되지 않는다. 뜻대로 움직이려 하면 자멸한다. 이것이 트위터라는 SNS의 생태계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나도록 놓아두면 볕을 만난 듯 꽃을 활짝 피운다.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은 안타까울 정도로 단순한 싸움의 방법을 택했다. 동료가 죽었던 크레인에 혼자 오르는 것.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써 더 큰 ‘조직적’ 싸움을 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이라는 거대 재벌에 맞선 그 방법은 너무 미약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러나 힘과 강제성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동료에 대한 한없는 죄책감으로부터 나오는 굳은 마음가짐으로 몇 달을 버텼다.


그리고 김진숙은 트위터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싸움이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사람들에게 같이 싸우자고 외친 적은 거의 없다. 대신에 조용조용 사람들과 일상의 대화를 했다. 상추를 키웠다는 이야기, 크레인 위에 올라온 강아지 이야기. 그리고 아주 사소하고 재미있는 농담들. 또 트위터를 모니터링하다 제주 강정마을이나 유성 기업 등 투쟁현장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토닥이고 응원으로 알티를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싸움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진숙 씨의 밝고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과 결코 구걸하지 않는 의연함 그리고 타인의 투쟁을 먼저 감싸 안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했다. 그래서 한진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모든 투쟁 현장의 사람들은 김진숙을 돕자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조직적이거나 강제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대신 김진숙 씨가 지킨 것은 하나의 선한 원칙이었다. 이념으로 인한 강제가 아닌 인간적인 가치였다. ‘어떻게,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느냐’이다. 그녀가 가진 올바른 마음가짐과 신념, 그녀가 한 것은 크레인 위에서 조그만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함께 따스한 웃음과 고마움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토록 전 세계로 퍼진 큰 싸움을 ‘계획’한 적이 없었으나 주인공이 되었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깃발이 되어 이끌었고, 정치를 하지 않았으나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의 힘으로 14년 만에 재벌 회장을 청문회에 세우게 되었다.


이 놀라운 변화 속에는 주도자가 없었다. 끝까지 200일 이상을 버티고 있는 김진숙이라는 사람과 단지 그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고 싶었던 사람들. 또 그저 각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들이 주인공이 된 거대한 ‘움직임’은 현실을 바꾸고 불가능했던 일을 이루어내기에 이르렀다.


“추수에 대한 기대 없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김상봉 교수는 말했다. 트위터로 이루어진 모든 기적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장을 다니고 트위터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성미님 트윗을 보고 한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기 왔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영도에서 만나거나, “님을 보고 나도 강정에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였다. 그때야 비로소 ‘아, 사람들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정마을이 위급할 때 사람이 필요하다는 외침에 한 대학생은 그냥 바로 달려갔다. 고작 한 사람 간 것은 물론 그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움직였다. 아, 저렇게 그냥 달려가면 되는구나. 그리고 또 내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것이 지금 강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는 이유다.


배우 김여진 씨는 이야기했다.


“아무런 눈에 띄는 결과가 없다 해도 그저 바라보라, 그리고 말하라. 꾸준히 지켜보라. 그러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같이 바라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함께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모든 사심 없는 마음들이 변화를 이끌었다. 새벽에 친구를 구하고픈 절박한 심정으로 알자지라 기자에게 보냈던 멘션 하나는 두 달 뒤 1면 탑 기사가 되어 돌아왔다. 르몽드, BBC, CNN, 로이터 그리고 세계에서 날라 온 연대 메시지까지. 우리가 그때 희망했으나 당장에 결과를 볼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 마음은 돌고 돌아 큰 수확을 가져왔다. 그것은 반응이 없을 때에도 꾸준히 영어로 트윗하고 메일을 보냈던 트위터러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또한 세상을 바꾸자고 조직된 것이 아닌, 외로운 노동자 하나를 응원하러 가자고 만들어진 희망버스는 전국의 여론을 흔들고 재벌의 청문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혼자 강정으로 달려간 한 청년의 마음은 그후 수많은 연대와 지지 방문이 되어 돌아왔다.


언젠가 금융계에 계신 분께 물었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얼마가 필요한가요? 대답은 1조 원. 그런데 나는 지금 단 한 푼 없이 모든 걸 바꾸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 하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우리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기서 우리의 의무란 바로 ‘사랑하기’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룬 건 그것이 분노의 힘이 아닌 사랑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도 사랑보다 뛰어난 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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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미 | 트위터러, 날라리 외부세력, 영화감독이다.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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