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두 바퀴로 달리는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

한밭레츠와 민들레의료생협

대전에서 지역화폐 운동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9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이미 외환 위기로 IMF 체제가 깊숙이 진행되던 때로 지역 주민 대다수가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하던 시기이다. 하나는 당시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던 정부가 더 이상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속에서 호랑이임을 자처하던 기업도 이제 정글의 법칙 속에서 서서히 멸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은행마저도 처참히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국민의 삶과 일터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정부와 기업이 모두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우리는 스스로 가능한 한 자립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생을 모색하는 소박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려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지역화폐 운동을 하는 한밭레츠다.


1999년 10월에 본격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해 다음해 2월 1일에 70여 명의 회원으로 창립한 한밭레츠는 ‘대전민들레의료생협’(2002년 4월)과 대안학교인 ‘대전 푸른숲학교’(2004년 4월, 현재 꽃피는 학교)를 만드는데도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그 후 해가 거듭할수록 안정적으로 발전해온 한밭레츠는 2010년 말 회원 수 457가구로 비교적 견실하게 조직기반을 확보하여 국내의 대표적인 지역화폐 운동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국내 신문, 방송에 평균 20회 이상이나 소개될 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2005년 5월에는 아이치현에서 개최된 일본 EXPO 2005 부대행사(지역통화 국제세미나)에 초청되어 한밭레츠를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레츠(LETS)의 창시자인 마이클 린턴과 약 300개의 레츠 단체들과 10만 명 정도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일본과의 공식 교류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6년 9월 말에는 독일 바이마르(Weimar)의 바우하우스 대학(Bauhaus Univesitat)에서 열린 지역통화 국제세미나에 참가해 한밭레츠 사례를 발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외연을 부단히 넓히고 있고, 요즘 들어서는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멕시코 등 많은 나라에서 관련 인사들이 계속 방문하고 있다. 또 최근 들어서는 서울복지재단이 주축이 되어 추진 중인 ‘서울 e-품앗이 사업’의 모델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지역화폐 운동단체의 협력·지원기관으로도 톡톡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한밭레츠가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높다 하더라도 활동이나 사업내용이 다른 지역화폐 운동단체들과 특별히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한밭레츠가 기본적으로 작동되는 메커니즘을 먼저 간단히 언급해본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 이름은 ‘널리’ 또는 ‘두루두루’라는 뜻이 담긴 순수 우리말 ‘두루’다. 이 두루는 회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원화와 등가의 원칙을 적용해 1천 두루는 1천 원으로 정했다. 등록소에 가입 신청을 한 회원들이 원하는 것과 제공하고자 하는 물품·서비스 목록을 알려주면 이것을 토대로 등록소에서는 소식지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제공해준다. 이것을 보고 회원들이 전화를 해 상호합의 아래 거래를 한 뒤 최종적으로 거래내역을 등록소에 통보해주면 등록소는 각 개인의 계정을 통합해서 관리하게 된다. 등록소의 운영은 초기에 입회비 1만 원(실직자와 주부 등은 1만 두루)과 매 거래마다 발생하는 거래액의 5퍼센트를 수수료로 공제해 사용했지만, 지금은 월 회비 5천 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사무국 역할을 수행하는 등록소에서는 격월 또는 계간으로 소식지를 발행하고, 평균 2~3개월에 한 번씩 개최하는 품앗이 만찬(회원 친목도모, 장터운영 및 회원 의견수렴) 준비와 거래 안내 도우미 역할 수행, 홈페이지 운영과 계정 관리 등을 담당한다. 또한 회원 3인 이상 요청 시 목공교실, 도예교실, 우리 옷 만들기 등 품앗이학교를 열고, 트럭, 승합차, 디지털 캠코더, 빔 프로젝터 등을 등록소에 비치해놓고 물품공유소를 운영하며,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나 노인, 농민,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동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회적 일자리 사업단인 ‘두루잔치’(2009년 시작하여 2010년 2월까지 운영), ‘행복한 보따리’ 등을 통해 밑반찬과 농산물 직거래를 실시하고, 여성가족부 공동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여성일자리 창출을 위한 생산자소모임 교육과 생산·판매활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래, 문화유산 답사, 요리모임과 체조교실 등의 소모임과 7개의 동에서 현재 지역모임을 조직·운영하고 있다.



지역화폐로 연대경제의 기틀을 짜다


한밭레츠 창립 첫해인 2000년에 비해 2010년 거래 건수는 약 50배, 거래액은 약 26배 정도 증가하였다. 2010년 거래 현황을 보면 거래 건수가 1만4천여 건으로 전년도와 비슷했고, 매월 거래건수는 1100~1400여 건, 거래 참여 가구 수는 210~230가구 정도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두루 거래액은 2009년에 비해 약 380만 두루, 현금 거래액은 약 1천9백만 원이 각각 증가했다.


이상과 같이 거래액과 거래 건수가 증가한 이유는 주로 2010년 초에 호숫가품앗이사업단이 새로 가입하면서 봄나물, 쌈채, 장아찌류 등의 거래가 늘어났고, 방울토마토, 벌꿀, 멸치액젓 등 새로운 품목의 거래도 발생했으며, 회원들이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거래하는 등 농산물 거래가 상당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의료 거래는 민들레의료생협의 직원과 이사진 가족의 진료에 대한 정책 변경으로 인해 적지 않게 감소한 덕분에 한밭레츠 전체를 놓고 볼 때는 미증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월별로 다시 세분해 보면 품앗이 만찬이 있는 달의 경우 농산물 거래와 경매 거래, 두루잔치 등을 통한 거래 때문에 거래량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고, 거래 내용별로 보면 농산물(29.7%), 가맹점 거래(15.6%), 의료(10.1%), 재활용품(9.4%), 음식(4.8%)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맹점 거래도 약국을 제외하면 거래량이 미미하고, 아직도 매년 요청자 수에 비해 제공자 수가 월등히 많아 다양한 장르의 재화나 서비스 제공이 절실히 필요한 형편이다.


또한 한밭레츠의 거래 동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의료와 가맹점(특히 약국) 거래가 거래 건수의 약 25.7%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화폐 운동을 하는 다른 국내의 단체와는 달리 한밭레츠의 경우 의료생협(내과, 치과, 한의원), 약국, 식당 등 회원업소의 참여가 거래 활성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농산물 거래에 대한 관심과 거래량이 급속하게 많아지고 매년 신장하는 추세에 있다. 또한 배달, 숙박, 카이로프락틱 등 새로운 분야에서 거래가 시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자원활동은 물론 한밭레츠의 행사나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회원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거래량은 직접 대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와는 달리 대체로 증가하지 않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한밭레츠의 현재까지의 활동성과를 개략적으로 요점만 다시 정리해보자. 거래액을 기준으로 보면 아직 미미하기는 하지만 회원 수는 6.5배, 거래액과 거래 건수는 모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엄청나게 증가해 외형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특히 지역화폐인 두루의 사용 비율이 첫해와 작년을 제외하고 매년 50%를 상회하여 회원들의 현금 사용 의존도가 현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거래 건수가 매년 급증하면서 회원들 간의 접촉빈도가 증가하고 공동체 복원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연대경제의 기틀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견고하게 구축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볼 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밭레츠가 지역화폐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품앗이만찬 등 공동체 행사를 통해 타지에서 이주해 온 신규 회원의 정착을 돕고, 건강한 이웃관계를 형성했으며, 노인, 주부 등 유휴노동력을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기술과 재능을 학습하는 등 자기개발 기회도 마련해주었다. 또한 재활용품 사용을 생활화하고, 자원 낭비를 막고 나눔과 공유의 정신을 실천에 옮겼으며, 한밭레츠를 폐쇄적인 모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해 추진하고, 공동체와 생태계 원리를 따르는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데도 적지 않게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약 1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해 볼 때 한밭레츠는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그 내부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운동’으로의 역할을 하는 데는 다소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호혜적 교환을 통해 공동체의 상호부조적 틀을 갖추고 관계성 회복에는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으나 회원 수에 비해 거래 규모가 아직 작아 경제적인 조직으로는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회원 당 연평균 거래액(2010년)이 불과 약 57만9천 원 정도에 지나지 않고, 레츠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중도 약 32% 정도-외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20%의 회원이 80%의 거래를 담당하고 있는데 한밭레츠는 다소 높은 편이다-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회원들이 거래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회원들이 최소한 연평균 소득의 10% 이상을 지역화폐로 충당하는 조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표는 현재의 한밭레츠 실정으로 볼 때 요원하기만 하다. 더구나 표면적으로는 초기에 발견되던 장애들이 극복되고, 회원들도 확고히 자리를 잡고, 시스템도 잘 굴러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창립 당시의 의욕과 활력, 에너지는 거의 소진된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해가 거듭되면서 창립회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핵심 회원들의 구성이 바뀌면서 지역화폐 운동의 이념과 개척자적 정신이 증발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는 일 이외에도 한밭레츠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 또한 적지 않다. 그것을 몇 가지로 요약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정적인 재정확보 방안의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역화폐 운동 입문서에 보면 통상 하나의 레츠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3~6명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 한밭레츠 등록소에는 한 명의 상근 인력(두루지기)과 한 명의 자원봉사자만 근무하지만 월 5천 원의 회비만으로 인건비는 물론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두루지기 인건비 월 66만원 + 24만 두루).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등록소 운영을 위한 기본인력 충원과 재원 확보를 위한 후원회원 모집, 사회복지기금 및 재단으로부터의 안정적인 지원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한밭레츠가 경제적 조직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등록소 실무자와 운영위원들이 거래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컨설팅과 중계 업무도 역점사업으로 계속 추진해 나가고, 지역화폐 운동에 대한 이념과 거래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교육과 홍보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셋째, 국내의 선도적인 지역화폐 운동단체로서 한밭레츠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역화폐 운영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매뉴얼을 작성·배포하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레츠조직을 네트워크화 하는 일에도 산파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2005년 5월 시작된 일본의 지역통화 운동단체를 비롯해 미국, 유럽 등의 관련단체와의 국제교류 및 협력 강화도 병행해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나온 약 11년의 세월과는 달리 한밭레츠가 지역과 세계를 바꾸는 강력한 도구로 살아남고,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수단으로 기억되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들이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길고도 먼 여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한밭레츠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주변에 있는 많은 후원 세력들의 깊은 애정과 관심, 그리고 절대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건강 마을을 만드는 민들레의료생협


한밭레츠의 경우는 운 좋게도 창립 초기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가진 소수의 내과 및 비뇨기과 의사와 한의사 등 여러 의료인이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재정 여건이 아주 열악한 초기 한밭레츠에서 든든한 후원자였을 뿐 아니라 회원들의 친절한 주치의로서 여러 가지 건강 상담을 거의 도맡아 수행했다.


한밭레츠가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나라의 의료계에서 최대 파란을 일으킨 의약분업과 관련된 논쟁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때 내과 전문의와 한의사 등이 중심이 되어 한밭레츠의 핵심 회원과 함께 당시 화두가 되었던 의약분업에 대해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한국 의료제도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다양한 협동조합 운동의 사례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의료생협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지역의 진보적인 의료인 단체였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에서 활동을 하던 나준식 회원(현 민들레의원 원장)의 역할이 아주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담당하던 공익의사로서의 역할이 끝나갈 무렵부터 의료생협 만들기에 적극 앞장서기 시작했다. 한밭레츠 안에 의료생협 연구모임을 만들고, 경기도 안성 등에서 기존에 운영 중이던 의료생협을 방문하고, 의료생협 운동의 선진국인 일본을 직접 견학하기도 하였다. 민들레의료생협은 나눔과 협동, 연대의 경제를 지향하는 한밭레츠와 참다운 의료생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인의협이 중심이 되어 그 준비를 시작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의원과 한의원을 필두로 2002년 5월에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에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 민들레의료생협은 2011년 5월 현재 1,927세대의 조합원이 7억4천2백만 원 정도의 자산을 운영하며 의원, 한의원, 민들레건강검진센터, 노인복지·가정간호센터, 심리상담센터, 호숫가마을품앗이사업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7개의 조합원 건강모둠이 있다. 의료생협의 경우, 2010년 한 해 동안 한밭레츠 회원들이 <표 1>의 원칙에 따라 사용한 2천9백60만 두루의 수입이 발생했는데 이 수입은 직원의 급료와 생활용품 구매, 출판물 인쇄, 조직 활동비 등으로 현재 지출되고 있다.


이렇게 민들레의료생협은 한밭레츠와 함께 두 바퀴로 달리는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로 대전 지역사회에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도 연대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수많은 기관과 단체, 지방정부까지도 벤치마킹을 하려는 대상으로 인정할 만큼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2009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 2회 아시아 연대경제포럼에 초대를 받아 ‘지역통화와 의료생협’이란 제목을 가지고 주제발표를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두 단체가 국내·외에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완전히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가지고 정착한 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의 노력은 아직까지 경쟁에 토대를 둔 시장경제시스템과는 다른, 우의와 호혜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연대경제시스템을 구축해보려는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여러 가지 혁신적인 공동체 실험을 준비 중이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 실천할 것이다. 이들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호응, 그리고 응원을 보내는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졸저 『꾸리찌바 에필로그: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지구를 살리는 창조적 도시혁명』(서해문집, 2011)의 원고 중 지역화폐와 관련해 쓴 부분을 일부 수정·보완하고, 민들레의료생협에 관해서만 완전히 새로 쓴 것임을 밝혀둔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