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독접한 국가와 포기한 국가

국가와 폭력의 관계를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한국 사회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워낙 다종다양한 이슈들로 넘쳐나는 사회이기 때문에 벌써 먼 옛일처럼 생각되는 일이 있었지요. 경비용역업체 컨택터스가 안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SJM을 계획적으로 침탈하여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어둠 속에서 두들겨 패서 내쫓고 공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7월 27일 새벽이었습니다. 그런 뒤에 9월초 현재까지 그 폭력기업이 회사를 접수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쫓겨나 있습니다. 경찰은 컨택터스가 노동자들에게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구조요청도 묵살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기현상들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일처럼 있어왔습니다. 공장에서 용역업체가 폭력을 휘두르는 걸 방조하는 경찰의 모습은 철거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2009년의 용산이라는 철거현장과 쌍용자동차라는 공장에서 그리고 2010년 유성기업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역과 경찰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서 노동자와 철거민들에 가공한 폭력을 휘둘러댔지요. 이제 그 경비용역업체는 진화를 거듭해서 경찰장비보다 더 우수한 장비와 인력을 갖춘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용병을 수출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자랑할 정도였으니까요.
근대국가에서 국가는 폭력수단을 합법적으로 독점 운영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그러기에 사적인 폭력은 처벌의 대상입니다. 조직폭력배의 두목은 사형까지 처하도록 되어 있는 게 그 이치입니다. 국가는 경찰과 군대라는 폭력수단을 보유하고 오로지 그 나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일에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찰과 군대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군대가 위임받은 권한을 넘어 국민의 인권을 위협하는 역할을 할 때 국민의 저항권은 정당성을 갖게 됩니다.
이런 근대 이후의 국가원리에 반하는 일들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미국이 항상 선두에 서고는 합니다. 세계 분쟁지역에는 워터스로 대표되는 민간용병들이 위험한 전투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은 전쟁 중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시겠지요. 남과 북의 분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적을 상대로 섬멸하든지 항복을 받아내든지 하려고 기를 쓰고 전투를 벌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와 철거민들을 오래전부터 적으로 간주해왔습니다. 그들이 항복할 때까지 공적 폭력 장치인 경찰력을 투입해서 공격해댔습니다. 그리고 그런 폭력의 현장에서 경찰보다 앞서는 게 용역깡패들입니다. 조폭으로 날뛰면 사법 처리되는 게 맞는데 경비용역업체 직원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경찰의 보호를 받고, 사법부의 관대한 처분도 받게 됩니다. 법원은 준엄하게 노동자와 철거민들을 꾸짖습니다. 법질서에 도전한 행위이기 때문에 엄벌에 처한다고 말이지요. 사적인 폭력은 엄단하겠다면서 노동자와 철거민만 주로 처벌해왔습니다. 국가가 폭력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사례입니다.
최근에 발생한 나주 초등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용광로처럼 들끓었습니다. 언론사들이 유난히 이 문제를 선정적으로 보도하였고, 급기야 <조선일보>가 무고한 시민의 얼굴을 범인의 것이라고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고, <경향신문>은 피해자 아이의 일기장을 공개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언론들의 무분별한 보도로 2차 가해를 당한 피해자 가족들은 이제 그곳에서 살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잠자는 집에까지 들어가서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그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데에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앞 다투어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보호감호제를 부활하려 하고, 여당 대통령 후보가 사형제의 부활을 촉구하는 발언을 해댑니다. 거기다가 경찰이 이때다 싶어서 불심검문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은 대선 과정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압적인 선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겠지요. 더욱이 여당의 한 의원이 주도한 물리적 거세 법안까지 제출되었습니다. 막말로 성폭력범의 불알을 거세한다면, 그다음에는 손도 거세하자고 할 것인가요? 혀도 거세하고 말이지요.
앤서니 버지스는 1962년에 그의 대표작 『태엽시계 오렌지』를 썼습니다. 10대 폭력 비행 청소년이었던 알렉스는 교도소에서도 감방 동료를 손보다가 죽게 만들었지요. 그때 내무부장관은 그를 루드비코 요법이라는 화학적 거세 실험 방법의 알맞은 대상으로 선정합니다. 이런 강력범들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해서 교도소를 비우고, 그 자리에 사상범들을 수감하려고 합니다. 알렉스는 2주 동안 주사를 맞고 하루 종일 끔찍한 폭력영화를 보고 고통에 시달립니다. 이제 그는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조차 먹을 수 없습니다. 평소 폭력영화에 삽입된 음악으로 인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조차 고통스럽게 됩니다. 루드비코 요법은 성공한 것이지요.
사회에 갑자기 석방된 알렉스는 집에서 버림받고,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자신의 생을 자살로 마감하려고 도서관을 찾습니다. 그때 예전에 자신이 동료들과 폭행을 가했던 노인들에 둘러싸여 경찰이 올 때까지 집단폭행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경찰은 예전에 자신을 배신한 폭력조직배 동료입니다. 그의 옛 친구인 딤의 일행은 그를 한가한 농촌으로 끌고 가서 죽도록 두들겨 패고 버리고 갑니다. 가까스로 찾은 ‘집’은 그가 동료들과 성폭행하고 살인을 저질렀던 바로 그 집입니다. 살해된 아내의 남편인 F. 알렉산더의 호의로 몸을 회복하지만, 알렉산더와 그의 친구들은 그를 정권을 탄핵하기 위한 소재로 이용하려 합니다. 알렉스는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아파트의 창에서 뛰어내리지만 죽지 않지요. 참고로 그의 나이는 18세입니다.
앤서니 버지스는 이 소설에서 국가가 개인들의 선택권도 인정하지 않은 채 감행하는 세뇌 프로그램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를 고발합니다. 폭력배들에 대한 가혹하고 화학적인 방법을 통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서 사실상 사상범을 교도소에 채우려고 한다고 말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할까요? 사상범을 교도소에 채우는 일이 가능하겠냐고 하겠지만, 꼭 교도소에 그들을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자유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지요.
이미 예전부터 성폭력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추진되어 왔습니다. 가장 먼저 CCTV가 도입되었습니다. CCTV는 이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감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성폭력범죄가 끊이지 않자 전자발찌를 채웠습니다. 그런데도 성폭력범죄는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DNA법과 화학적 거세법이 국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성폭력범죄를 비롯한 흉악범죄는 증가만 하고 있지 감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범죄는 더욱 흉악해집니다. 많은 연구는 처벌이 강화되면 될수록 범죄가 더욱 끔찍해진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삼청교육대와 보호감호제가 도입되자 완전범죄를 노리는 토막살인 범죄가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사형제도 아무런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폭력범죄나 살인범죄, 또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범죄들은 공동체가 파괴된 결과로 나타납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이로부터 생기는 수치심과 사회적인 모욕, 낙인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엄벌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는 것, 즉 사회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어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원이 필요해도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당장 대중들의 분노에 응하는 선정적인 대책은 주로 국가폭력을 강화하고,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 그렇게 해서 국민들은 자유를 점점 더 포기하지만 그래도 더욱 사회는 불안해진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대선에서 경비용역업체가 노동현장이나 철거현장에서 날뛰는 걸 확실히 근절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 국가폭력을 강화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흉악범죄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무더웠던 여름에 방송인 김미화씨와 함께 6차례의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대담의 결과를 『박래군·김미화의 대선 독해 매뉴얼』이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인권이라는 잣대로 대통령 선택 기준을 제시하자고 했지요.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나가는 끔찍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번 대선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책이 그런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용산참사 때 수배를 당하면서 편집인을 놓았다가 이번에 강곤씨가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다시 편집인을 복귀했습니다. 강곤씨는 이번 호에 아주 재밌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조금은 어렵지만 비례대표제를 통한 복지국가의 길을 제시한 선학태 교수의 글도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하려니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다시 잡지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잡지를 기다리는 독자들께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올해 중에 잡지의 편집 방향을 새로이 고민하려고 합니다. 보다 나은, 보다 내용 있는, 그리고 재미있는 인권전문지를 모색하여 내년부터는 새로운 모습의 《사람》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