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레즈비언 의심 '바닥밥' 먹인 교사 있어,
‘성적 지향’ 삭제? 인권은 거래가 아니다”

[인터뷰] 학생인권조례안 농성 한채윤 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18일 서울시의회 앞에 걸린 현수막.
지금 서울시의회는 ‘화약통’을 안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9만 7000여 명의 주민발의로 상정된 학생인권조례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제6조 문구 때문이다.

“학생은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19일 결전의 날, ‘화약통’ 안은 서울시의회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서울교총) 등 보수교육단체들은 이를 ‘독소조항’으로 규정하고 ‘임신이나 동성애 조장 조례안’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나섰다. 이에 주춤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들은 지난 16일 끝마치려던 심의를 19일 오전으로 다시 미뤘다. 이날은 회기 마지막이어서 찬반 세력 사이에 결전이 예상된다.

결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 로비.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회원 40여 명이 약식 집회를 열고 있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11개 단체가 모인 공동행동은 지난 14일부터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성소수자단체가 지방자치단체 시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공동행동 쪽의 설명이다.

자료.
성소수자 단체들은 왜 농성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공동행동의 공동대표격인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39, 여)를 이날 오후 3시 30분쯤부터 농성장 옆 다산플라자 1층에서 만났다.

15년 동안 줄곧 성적소수자 운동을 해왔다는 한 대표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 등이 빠진 학생인권조례는 의미가 없다”면서 “정말 심각한 차별을 묻어두고 정치적으로 타협하려는 것은 어이가 없다. 인권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한 대표는 “중학생 시절 레즈비언이란 의심으로 교실 바닥에서 밥을 먹게 한 교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면서 “성적 지향을 트집 잡는 분들은 동성애라는 편견을 활용해서 비겁한 방법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체를 막으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한 대표와 한 시간 가량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동성애 조장? 비겁한 트집이다”

-학생인권조례 한두 개 조항 빼고 통과시키면 왜 안 되는가?
“주민발의안은 주민 9만 7000명이 발의한 법안이다. 그런데 어떻게 당론도 정하지 않은 민주통합당이 거래하듯이 하루 이틀 사이에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인권은 그렇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수정안을 내는 것도 서울시의원들의 권리 아닌가?
“경기나 광주도 ‘성적 지향이나 임신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란 말이 다 들어갔다. 서울에서만 파워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는 이미 국가인원위원회 법에도 들어가 있고 국제흐름에도 맞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는 국가의 법적 의무’라고 말할 정도다. 여러 차별 사례 가운데 하나로 ‘성적 지향’을 넣은 것인데 이 자체를 문제시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왜 유독 서울에서만 파워게임이 심하다고 보나?
“반대쪽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물고 늘어지는 건 정치적인 계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은 곽노현 교육감과 박원순 시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그 들은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동성애 편견을 활용하고 있다. 비겁한 방법을 동원해 기득권을 지키고 인권조례 자체를 훼방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이날 이준순 서울교총 회장은 서울시의회에서 기자를 만나 “성적지향이나 임신 출산 등 독소조항을 빼더라도 현재로선 학생인권조례 통과 자체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교권침해나 교육에 주는 악영향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 지향이나 임신 등 차별, 고통 정도가 가장 심한데…”
18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공동행동 농성단이 약식집회를 하고 있다.

-성적 지향 문제로 학교에서 차별당한 사례가 있었나.
“어떤 교사 분들은 굉장히 지독하게 차별한다. 한 교사는 중학생이 레즈비언이란 의심으로 교실 바닥에서 밥을 먹으라고 해서 여학생이 그렇게 밥을 먹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성적 지향이나 임신에 의한 차별과 고통은 정도가 가장 심하다. 이런 심각한 차별을 묻어두고 정치적으로 타협하면서 일부 내용이 빠진 학생인권조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쪽 주장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동성애가 조장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얘기다. 성적 지향은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나라든 없는 나라든 동성애 비율은 비슷하다. 동성애가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19일 인권조례안이 수정 통과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원안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인권은 타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가진 힘은 없다. 하지만 우리 같은 성소수자들한테는 그래도 학생인권조례가 희망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성적 지향의 문제로 교사들에게 차별적인 발언을 듣지 않을 수 있는 조례를 만들어 달라.”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 못하는 국민들도 많다. 한 마디 해 달라.
“저희도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걱정하시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 안다. 순수하게 걱정하시는 어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다. 학생도 한 명의 사람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제발 교사와 학생의 대립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보지 말았으면 한다. 더구나 보수단체가 하고 있는 반대운동 방식은 성소수자의 마음에 못을 박는 행위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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