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아이들은 웃었지만, 선생님은 울었다

현장 / 사상 처음 혁신학교 유치원 수업 공개한 나주북초 병설유치원

전남 나주시 청동에 있는 나주북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물고기헤엄치는반. 이 유치원은 나주시 안에 있지만 산 속 수풀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지난 3일 오전 11시, 교실 문을 열자 정경자 교사(56, 전교조 유치원위원장)를 에워싼 학생들 12명이 반원 형태로 앉아 있다.
 
3∼5세의 유치원생들이 이렇게 다소곳할 수 있을까?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온 40여 명의 교사들을 의식한 행동일까?

지난 3일 전남 나주북초 유치원에서 수업공개가 진행되고 있다. 윤근혁 기자
 
고자질 대신 돌봐주는 아이들
 
이처럼 남도에 있는 한 유치원의 공개수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공개수업은 남 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혁신학교 유치원 수업 공개가 펼쳐진 것이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빛과 우리생활'.
 
"문제를 맞히면 햇빛에 말린 여러 곡식을 먹을 수 있어요. 첫 번째 문제. 어두운 바다를 밝게 비춰주는 것은 신호등이다."
 
정 교사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O, X로 표시한 자리로 걸어갔다. 13문제를 내는 동안 틀린 학생은 거의 없었다. 햇빛에 말린 여러 곡식을 13번씩 대부분의 학생들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치작전을 펼치는 아이가 보였다. 광석(가명)이였다. 매번 O, X 중간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광석아. 저기를 봐. 무지개 그림이 있지. 답은 무지개야. 이쪽으로 와." 3∼4명의 학생들이 광석이에게 답을 알려줬다. 정말로 친절하다. '선생님! 광석이가 눈치만 봐요'하면서 고자질 할 법도 한데 그런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하다.
 
O, X 퀴즈 시간이 끝날 무렵인 오전 11시 27분, 정 교사가 말했다. "문제를 풀어본 느낌을 이야기해 보세요."
 
"우리 수준에 맞는 문제를 냈으면 좋겠어요. 너무 쉬워요."
 
"다음엔 우리가 문제를 내고 선생님이 맞혀요."
 
이 모습을 비디오에 담은 손우정 교수('배움의 공동체' 대표)는 수업 뒤 컨설팅에서 "수준을 높여달라는 아이의 모습은 곧 수업에서 점프(놀라운 학습 도약)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유치원이야말로 혁신학교 공동체 수업의 진정한 모델"이라면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왕따'시키지 않고 도와주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감동적인 공동체 수업"이라고 지적했다.
 
퀴즈 시간이 끝난 뒤 아이들은 3모둠으로 둘러앉았다. 자연숲속모둠, 진달래모둠, 꽃다지모둠이 그것이다. 햇볕에 말린 대추차를 끊여 마시기 위해서다. 광석이는 의젓한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대추차를 따라줬다.
 
이날 공개수업이 끝난 시간은 오후 12시 24분. 80여 분간의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도 웃었고, 정 교사도 웃었고, 참관 교사들도 웃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모습이 '발랄무쌍'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후 1시 30분 나주북초 다목적실에서 수업협의회가 열렸다. 마이크를 잡은 정 교사는 눈물을 쏟았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그 수업은 정말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유아교육이 정말 힘들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건은…"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전교조도 눈길 주지 않아"
 
이를 지켜보던 유치원 교사 몇몇도 눈물을 흘렸다. 나주북초 유치원은 올해 문을 닫을 뻔했다. 지난 해 남은 학생 2명으로는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이 학교가 전남형 혁신학교인 '무지개학교'로 지정되고 유치원도 무지개 유치원이 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학생들도 13명으로 늘었다.
 
정 교사는 지난 13일 전화통화에서 이날 눈물의 의미를 다음처럼 설명했다.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전교조도 유치원 교육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전국 100개 국공립 단설유치원이 있는데 이 원장들 종신 원장제를 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내부형(평교사 응모 가능형) 교장공모제는 초중고 얘기지 유치원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구걸하듯 유치원의 문제를 얘기해도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날의 눈물은 30년째 유치원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혁신'을 꿈꿔온 한 중견교사의 한 맺힌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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