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학생 명단 달라”“못 준다” 경찰-학교 실랑이 사태

경찰청, 전국 중고교에 “정보 수집”, 광주교육청 “따르지 말라” 공문 예정

8일 오후 2시 30분, 경기도에 있는 한 여자중학교 교무실. 한 형사와 이 학교 교감, 학년부장 등 5명의 교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말싸움은 20여 분간 지속됐다고 이 학교 부장들이 9일 전했다.

여중 방문한 경찰 “면담하려고 하니 요주의 학생 명단 달라”

경찰청 홈페이지.

경찰: “요주의 학생, 불량 학생의 명단을 알려 달라”
교사: “요주의 학생의 기준이 뭐냐. 경찰들이 학교 밖 폭력도 많은데 왜 학생을 범죄자 취급하느냐. 교사가 명단을 경찰에 넘긴다면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를 어떻게 보겠느냐.”
경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다. 명단을 받고 그 학생들 면담해야 한다. 정 그렇다면 징계 받은 학생들 명단이라도 내어달라.”

이 학교는 이른바 ‘불량학생’들의 명단을 형사에게 넘기지 않았다. 이 학교 한 부장은 “생활지도로 충분히 교육할 수 있는 학생들을 경찰에 범죄자처럼 넘길 수는 없었다. 교사가 제자를 수사기관에 고자질하라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하소연했다.

이런 실랑이는 전국 상당수의 중고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교는 학생 명단을 경찰에 넘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경찰서가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 명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육청 한 장학사는 “명단을 넘겨야 할지 문의하는 일선 고교의 전화가 하루에도 10여 통 이상씩 걸려온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경찰청이 학교폭력 대책의 하나로 ‘일진회’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경찰청은 8일, “이달 13일까지 중학교 3075개교, 16일까지 고등학교 2264개교에 대한 현황 조사를 마칠 계획이며 일주일에 한 번씩 일진회 현황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체 중고교에 담당 형사를 지정하고 불량학생 명단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의 이 같은 학생 명단 무작위 수집 행위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물론 학교 불신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어린 학생들 가슴에 ‘주홍 글씨’ 평생 새기려 하나”

광주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이른바 불량학생에 대한 명단 요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며 학생에 대한 범죄인 취급으로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면서 “일체의 학생 명단을 경찰 쪽에 넘기지 말라는 공문을 이번 주 안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몇몇 시도교육청도 광주시교육청과 같은 공문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는 학교에서 학생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정보 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경우”에는 정보 제공을 제한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김 아무개 학부모는 “학교에서 조금 불량하고 공부 못하고 덩치 크고 반항적 학생들 이름 무더기로 경찰에 올라가는 거냐”면서 “청소년들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주홍 글씨’ 남기는 일이 아닌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이금천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도 “경찰의 학생 명단 부당 요구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칼을 대는 행동일뿐더러 학교와 교권을 짓밟는 만행”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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