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두발 의견 수렴 방법은 장관이 정한다”
학생인권조례 놀란 교과부, 황당 시행령

[발굴] 교육청 “규제완화, 자율화 내세우더니…”, 전교조 “야비한 행동”

지난 17일 교과부가 시도교육청에 보낸 공문. 본문에서 시행령 이름이 잘못 적혀 있는 것에 대해 한 교육청 관계자는 "얼마나 서둘러 보냈는 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전국 초중고 학칙에 들어갈 ‘학생의 두발과 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의 의견 수렴 방법을 교과부장관이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한 사실이 19일 밝혀졌다.

경기도와 광주광역시에 이어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의 용모 규제를 완화하는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자 교과부가 상위법인 시행령을 손질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이런 것도 법령인가?”라고 비판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야비한 행동”이라면서 저지운동에 나설 태세다.

교과부, 지난 17일 시행령 개정안 교육청 등에 보내

교과부는 지난 17일, 16개 시도교육청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조회’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 통과 과정 없이 국무회의 결정으로 바로 공포된다.

기자가 입수한 이 공문을 보면 교과부는 시행령 제9조 ‘학칙 기재사항’에 “학생의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 교육목적상 필요한 학생의 소지품 검사 및 전자기기 사용 등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또한 이런 내용을 담은 학칙 개정을 할 때 기존 “학생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란 글귀를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로 고쳤다. 이에 대해 한 교육청 중견관리는 “시행령을 고쳐 학부모, 교원까지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교과부는 시행령9조⑥항을 신설해 “(두발 등 학생용모를 담은 기재사항 개정 내용에 관한) 의견 수렴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교육감의 의견을 들어 교과부장관이 정한다”고 못 박았다. 교과부장관이 직접 나서 학생 용모 등에 관한 의견 수렴의 방법을 ‘꼼꼼하게’ 지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과부 공문에 첨부된 시행령 신구조문 대비표.

이 같은 공문을 받은 일부 시도교육청은 “규제완화와 자율화를 앞세운 정부가 학칙까지 직접 규제하는 시행령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시행령 저지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육청 중견관리는 “학생인권조례가 국민 공감을 얻어가며 현실로 나타나니까 교과부가 완력으로 조례안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면서 “규제 완화와 자율화를 내세운 정부가 교장이 정해도 되는 의견 수렴 방법을 교육감도 아닌 장관이 정하겠다는 시행령을 내놓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교육청의 관계자는 “시행령이 공포되면 하위법인 학생인권조례는 커다란 지장이 초래 된다. 사실상 조례 적용이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손충모 전교조 대변인은 “결국 현 정부는 유엔이 권고한 학생 인권 신장조차도 부정하며 야비한 방식으로 학생인권조례 무력화에 나선 것”이라면서 “전교조는 교과부를 항의 방문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학생인권조례 방해를 목적으로 한 시행령을 막겠다”고 말했다.

교과부 중견관리 “학생인권조례 의식한 여지 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학생인권조례를 의식한 시행령”이라는 지적을 사실상 시인했다.

교과부 중견관리는 “인권조례를 의식한 여지는 있지만 무력화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학칙에 대한 기재사항을 세부적으로 해서 학칙을 ‘학생’만이 아니라 학교구성원 전체가 정하도록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교과부장관이 의견수렴 방법을 정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학교 자율화 침해라는 의심도 있겠지만 시행령에 교육감의 의견을 듣는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서 “학교와 교육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의견수렴 방법을 폭넓게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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