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학교폭력, '따사모'에서 희망을 엿보다

무서워서 담임 못하겠다고요? 함께 고민해요!

학교폭력 대안으로 '평화로운 학급살이'를 고민하는 교사들


지난 2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학부모가 자녀의 담임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학교폭력 문제의 화두는 '교사의 직무유기 여부'에 맞춰졌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가 있을 경우 법대로 수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교과부도 학교폭력을 은폐하는 교사와 학교에 대해 엄충한 처벌을 내릴 것을 발표했다.

그러자 일선 학교에선 새 학기를 앞두고 담임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노아무개 교사는 "올해 담임 신청을 하지 않았다"며 "학교폭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은 일이 없는데 '직무유기'니 '강력 처벌'이라는 말들이 나오니 무서워 담임을 피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초등학교 최아무개 교사는 "초등학생들까지 학교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며 "교사직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현장의 학교폭력 수위는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알 수 없고, 수사기관과 교과부는 엄중 수사, 엄중 처벌을 하겠다고 어름장을 놓으니 회의와 두려움 속에서 교사들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생긴 것이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속에서 맞이한 2012년 새 학기다. 이런 가운데 '따돌림사회연구모임'(따사모)의 교사들이 "학교폭력에 맞서는 교사들의 멘토가 되겠다"고 나섰다.

따사모는 2001년, 학급에서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 문제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교사들이 하나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대책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그리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들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학교폭력을 예방,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평화로운 학급살이'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인한 담임 기피 현상 등을 바라보며 이들은 과거의 자신들처럼 홀로 앓고 있는 교사들에게 다가가 자신들이 축적한 노하우를 전하고 함께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로 신청자들을 모았다. 개학 첫 주의 첫 휴일인 지난 10일, 첫 모임이 열렸다.

따사모가 말하는 '학교폭력 없는 평화로운 학급살이'의 원리와 방법은 무엇일까? 따사모의 첫 모임에 따라가 이 단체에서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곽은주 교사(인천 관교중)의 강의를 들었다.


평화로운 학급 만들기 위한 3단계 방법

"학교폭력 문제는 개인지도 아니라 학급살이(학급운영)로 해결 해야 합니다."

곽은주 교사의 첫마디였다. 곽 교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사랑과 정성을 갖고 개인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학교폭력 자체가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모든 집단에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동조자라는 네 종류의 구성원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교사가 집단 밖에서 개별지도만 하면 교사도 이들 넷 중 하나가 돼버리고 집단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로운 학급살이의 기본은 교사가 이들 네 구성원들이 모인 집단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 스스로 전체 구조를 보도록 한 뒤 집단을 흔들어놔야 한다. 학급살이의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시작은 평화로운 학급 설계>

먼저 평화로운 학급을 설계해야 한다. 학급이 새로 구성되면 아이들은 탐색을 하며 서열을 정하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학급 설계는 이 작업이 진행되기 전인 3월 초에 빨리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평화로운 학급이 교사가 원하는 학급임을 구성원들에게 분명하게 알리고, 평화로운 학급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들을 함께 정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평화, 화목, 평등'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다. 이 과정은 자치위원회를 통해 진행하고 의사소통용 게시판을 마련해 공개하는 것이 좋다.

또 이른바 '과거 청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가해 경험이 있는 학생은 혼내는 시간이 아니라 지난 경험들을 '털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때 지난해 담임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학부모 상담을 병행할 수도 있다. 또 따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학생들이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설문지도 제공할 수 있어 교사들이 쉽게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두번째는 모두가 평등한 학급 만들기>

학급 설계가 제대로 됐다면 다음 단계는 문제 요인을 인정 요인, 영향력 요인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3월 넷째주 정도 되면 따돌림을 받는 아이, 센 척 하는 아이 등 학생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아이들은 학급 안에서 인정받고 싶고, 영향력을 갖고 싶어 하는데 어떤 아이는 그것을 포기하고, 어떤 아이는 독점해 권력자가 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교사는 학급 성원 모두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중요한 '자원'으로 만들고 학급 내에서 영향력을 공유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따돌림 받는 아이의 숨은 장점을 찾아내 공개하는 '의도적 칭찬', 학급의 일을 잘게 쪼개 개개인에게 맡기는 '모두가 부장 되기', 친구의 숨은 매력을 발견해보는 '짝꿍의 매력 쓰기' 등이 있다.

2단계까지 완성됐다고 해도 학급에선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평소 학급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다가 집단 따돌림이든 다툼이든 어떤 갈등을 포착하면 그때 세 번째 방법인 '공개적이고 체계화동 의사소통 구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학급 내에서 A 학생이 B 학생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때 교사는 두 학생만 따로 불러 상담하는 게 아니라 학급 전체를 상대로 구조적인 화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먼저 A, B를 포함한 학급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당시에 자신이 본 일이 무엇이고 그 때 느낌이 무엇인지를 적게 한다. 또한 A, B, 다른 학생들에게 각자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쓰게 한다.

다음에는 이를 항목별로 정리해 각 당사자들에게 나눠준다. 이를 공개함으로써 교사는 가해자, 피해자, 동조자, 방관자들이 각각 어떤 행동을 했는지 또 서로에 대해 어떤 느낌이 있었는지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단계에서 이미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을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공개회의와 반성이 하이라이트>

특히 항상 가해 역할을 하던 학생의 경우 침묵하던 다수 학생들이 사실은 자신을 속으로 비난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피해 학생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객관적으로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서로의 입장이 공개된 다음에는 역시 공개적으로 A, B 학생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것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등에 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앞으로의 다짐을 밝히며 화해하고 우정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 A, B 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논객'을 등장시킬 수도 있으며, 학생들이 선발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중심으로 회의를 이끌 수도 있다. 또 집단 따돌림을 하는 학생이 있는 경우엔 학급 아이들이 그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성하도록 한 뒤 가해 학생들만 모여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칫 공개회의 및 반성은 마녀재판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잘못한 학생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학급의 평화 규칙을 바탕으로 문제를 객관화하고 진심어린 조언과 반성을 나눈다는 점에서 공개 회의와 반성은 교육적 효과와 의미를 지닌다.



학교폭력 전문가로서의 교사가 필요한 시대

따돌림사회연구모임에서 펴낸 <이선생의학교폭력평정기> 겉표지


강의를 마치고 각자의 고민과 소회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김아무개 교사는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제대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이들을 힘들게 한 것에 죄책감이 든다"고 울먹였다. 지난해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발견했지만, 그 학생을 개인적으로 위로하고 감싸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2학기에는 그 학생이 오히려 다른 학생들을 때리는 가해 학생으로 변하면서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당황한 김 교사가 학교장에게 이를 보고하자 "문제 생기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김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교사들 역시 따돌림, 학교폭력 등이 발생할 때 학교 측은 조용히 덮을 것을 지시할 뿐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 속으로만 앓고 답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제라도 따사모를 만나 체계적,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접하니 조금이나마 자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따사모는 2년 전 학교폭력 해결 지침서인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출판했다. 앞으로도 교사와 학부모의 학교폭력 이해를 돕기 위한 가이드북을 낼 계획이 있다. 또한, 교사들을 위한 원격연수와 학생들을 위한 우정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이번 '평화로운 학급살이'를 시작으로 한 학교폭력 고민 오프라인 모임을 한 달에 두 번 지속할 예정이다. 신청은 따사모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할 수 있으며, 직접 참석이 어려울 땐 카페의 '사이버 멘토'를 활용할 수도 있다.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들을 엄중처벌하는 것도 중요하고 교과부 차원의 학교폭력 대책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급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지도하는 교사들이 학교폭력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학교폭력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앞서 고민해온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다행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교폭력 대처방안을 '평화로운 학급살이'란 이름의 학급운영과 맞물려 체계화했다는 사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 따사모 교사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학교 현장에 전파하는 일이다. 경찰과 검찰, 교과부 등의 일회성 대안, 위로부터의 대안이 아닌 현장 교사들의 지속적인 고민에서 탄생한 진짜 대안이 앞으로 교사들을 또 학교들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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