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 수업현장 -대구 장산초]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싶어요"

나르샤반 아이들의 소망

땡땡땡!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동화책을 읽는 교사의 목소리가 교실에 가득하다.

"너희들에게 선물을 준비했어.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수업시간에 춤추고 싶을 때 쓰는 조커, 벌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쿠폰이에요?" "오만 게(=별의별 것이) 다 있네."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19일 오후 최원혜 교사와 24명의 아이들을 만난 대구 장산초 6학년 나르샤반 교실. 이날 '수업열기'로 읽은 동화책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이들에게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을 주는 노엘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주까지 나르샤 9조법 만들기를 같이 했죠? 오늘은 이것을 잘 지켰을 때 어떤 상을 받을까 토의하는 시간이에요. 앞서 읽은 동화책에 나온 것처럼 상의 내용은 '어떤 조커를 쓸까'로 정해 봅시다."

'나르샤'는 1반 아이들이 '날아오르자'는 뜻을 담아 지은 반 이름이다. '나르샤 9조법'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학급규칙이다.아이들이 지난 6일 무려 2시간 반 동안 토의를 하고 완성했단다.
 
9조법의 내용은? ▲욕설 금지 ▲폭력 금지 ▲기물 손상 금지 ▲따돌림 금지 ▲소란 피우지 않기 ▲심한 장난 금지 ▲딴 짓 금지 ▲수업 준비 잘 하기 ▲학교 시설문 아끼기다.
 
최 교사는 아이들이 많은 이름 중 '나르샤'를 고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언가에 짓눌리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첫 수업에서 '공부'하면 떠올리는 것을 마인드맵으로 그려 보게 했다.
 
"시험, 경쟁, 스트레스, 폭력 등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아이들에게 "그래도 꾹 참고 해야 나중에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물었더니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싶어요" 하더라고요. 앞으로 아이들과 재미있게 '공부' 해볼 생각입니다. 시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나고 행복하게 공부해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는 힘을 기르게 하고 싶어요."
 
또한 최 교사는 "학교폭력으로 어른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 이전에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애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 끝머리에 '나르샤 반 친구들이 좀 더 넉넉하고 행복해지려면 부모로서 지켜야 할 일'이라고 부모가 적을 란을 비워둔 것이 인상 깊었다. 사실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에 대해 오해하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화답해 행복했다고. "하루 일과를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아이를 사납게 깨우지 않겠습니다." "절친(=절친한 친구)과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등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날 아이들은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하겠습니다" 종례 인사와 함께 '봄을 찾아오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갔다.
 
기자 일행을 배웅하는 최 교사에게 물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제게 주어진 시간동안 아이들에게 기억할 수 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어요. 이를테면 추억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학교 폭력이란 것도 결국은 아이들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 그것이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어 가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는 바꿀 수 없지만 우리 '학급'은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바꿔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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