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어른이 우리 삶 결정한다고 생각”
“투표할 수 있으면 선거 더 관심”

총선 일주일 앞두고 벌인 투표권 없는 중3학생들의 사회 수업

“여기 봐봐, 물가안정 공약 좋지 않아? 물가가 비싸서 살기 힘들잖아.”
“맞아. 그런데 무상교육 공약이 더 좋은 거 같아. 돈이 없어도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지난 4일 서울 고척중에서 4.11 총선을 맞아 지역 국회의원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며 옥석을 가리고 있다. 안옥수 기자

4일 오후 2시20분 서울 구로구 고척중 3학년 12반 교실. 3모둠에서 책상을 맞대고 앉은 이수현 학생과 김현지 학생이 민주통합당과 진보신당의 공약을 비교하며 옥석 고르기를 했다. 이 날은 오는 11일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을 꼭 일주일 앞둔 날이다.

‘물가 안정’ 마음에 든 학생 “부모님 장사 때문에…”

이들 학생이 들여다보는 공약은 모둠 구성원인 4명의 학생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와 정당,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을 나눠서 직접 조사한 내용이었다. 이 지역은 구로구갑 선거구로 이범래 새누리당 후보과 이인영 민주통합당 후보, 강상구 진보신당 후보가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참을 비교하고 고민하던 수현 학생은 수업 자료의 ‘정당의 정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정당은?’이라는 물음에 ‘민주당’이라고 적었다. 주요 정책에는 물가 안정을 썼다. 수현 학생은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는 데 물가가 너무 올라 사고파시는 데 힘들어 하신다”며 선택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지역 출마자 가운데 마음에 드는 후보는 강상구 후보였다. 수현 학생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었고 나를 위한 것 같아 더 좋다”고 말했다. ‘만약 내게 선거권이 있다면 어느 후보와 정당에 투표하겠나’라는 수업 자료 질문에 ‘강상구와 민주당’을 꼽았다.

수현 학생과 토론이 벌인 현지 학생은 후보와 정당이 일치했다. 현지 학생은 “무상교육을 하면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없어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무상의료를 하면 아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학생 마음에 든 후보는 ‘강상구’였고 정당은 ‘진보신당’이었다.

두 학생 앞에 앉은 이찬영 학생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찬영 학생은 “국회의원이 가장 많아 내가 의견을 내면 실현될 가능성이 가장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찬영 학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공약은 고척교 부근에서 양방향이 차로 정체되는 것을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진보신당‧국민생각 선택한 이유

이날 6교시 수업의 과목은 사회. 2학기에 진행하는 민주주의와 선거 관련 내용을 총선 시기에 맞게 재구성해 ‘나의 정치적 입장’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담당인 이금자 교사가 낸 지난 9일 수업시간에 먼저 지역 후보와 각 정당의 공약과 정책을 조사해 오라는 과제를 미리 해 온 터였다.

이금자 교사는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의 선거구에서 뽑는 지역구 의원과 득표율에 비례해서 정당별로 배분하는 비례대표 의원으로 나눠서 진행해요. 모두 299명입니다. 국회의원 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요”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사는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100명을 기준으로 50명 이상이 투표를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투표율이 저조한 현실이예요. 그래서 호주 같은 나라는 투표의무제를 실시하고 있어요”라고 소개했다.

지난 4일 서울 고척중 3학년 학생들이 국회의원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고 있다.

이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수업 자료에 따르면 호주는 18세 이상의 국민이 합당한 이유없이 선거에 불참하면 벌금을 내는 ‘의무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호주의 평균 투표율이 90%가 넘는 이유다. 호주 뿐 아니라 벨기에, 브라질 등 32개국에서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각 모둠별로 정당의 공약을 비교한 뒤 각자 마음에 드는 정당을 정했다. 그리고 각자 정한 정당별로 다시 모둠을 짰다. 12반 37명의 학생이 뽑은 정당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진보신당, 국민생각 등 4개 정당이었다.

국민생각을 지지한 최영수 학생은 “내가 커서 군대에 갈 때 동북아시아가 안정됐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북핵 등으로 불안한데 국민생각이 지역 안보 협력을 추진하고 장병들의 복무 여건을 높여준다고 하니까 좋아요”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혜린 학생은 “부모님이 지지하는 정당이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못 사는 아이들도 공부하게 만들겠다는 사교육비 1/2로 축소가 마음에 들어서 저도 지지해요”라고 밝혔다. 진보신당을 지지한 권하현 학생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과 병원 진료 등의 내용이 많아서 다른 정당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마음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관심 없다”던 정치가 내 삶 속으로

이번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생각을 쓴 수업 자료에 답이 들어있다. ‘평소에 지지해 온 정당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적은 학생이 대다수였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게 하나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정책을 조사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이 좋다고 판단하는 정당을 선택했다. 김현지 학생은 “국회의원들이 싸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조사로 중요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알았다. 많은 정당의 특성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정말로 중요한 국회의원을 뽑는 게 왜 중요한 지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수현 학생은 “사실 조사할 때는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오늘 각 정당의 공약과 후보의 정책을 비교하니까 내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과도 연결돼 있고 지역 문제여서 더 유심히 보게 됐다”고 얘기했다.

김유리 학생은 “투표를 하지 않기에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느꼈다”고 전하면서 “그런데 막상 조사해 보니 무상교육 등 나와도 상관있는 정책들이 나오고 도움이 되는 정책도 있었다. 우리도 투표를 할 수 있으면 더욱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뼈 있는 소감을 전했다.

이러한 반응은 12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날 이 교사가 진행한 11반, 13반 등 3학년 3개 반 학생들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선거 공약은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이 있지만 거의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었다”고 밝혔던 김나영 학생(11반)은 이번 수업을 한 뒤 강상구 후보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나영 학생은 강상구 후보에 대해 “비정규직 없는 나라 등 공약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실현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으며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국민과 호흡하는 정책을 발표하려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수업 교사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 체험”

지난 4일 서울 고척중 3학년 12반 수업 모습.

수업을 마친 이금자 교사는 “서울 교육의 주요 목표 하나가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직접 배우고 선거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얘기고 우리의 얘기다”면서 “아이들이 민주주의하면 바로 떠올리는 게 선거더라. 바쁜 학교지만 민주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기회에 자기 조건에서 부담 없이 진행하면 학생들에게 더욱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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