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청소년에게 선거권을!”...이유 있는 반란

청소년단체, 선관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

사례1. ㄱ씨는 오전 8시에 피켓을 들고 서울 교대부설초(서초1동 4투표소) 앞으로 갔다. 투표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선관위 직원이 두 명 나왔다. 시위를 하면 안 된다면서 반말과 폭언을 했다. 이유를 물으니 투표소에서 하면 안 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계속 항의하자 막말과 함께 주먹을 뒤로 들어 때리는 시늉을 몇 번 하고 피켓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투표소인 노인복지회관(서초1동 3투표소)에서 시위를 하고 있으니 한 직원이 “어린 새끼가 공부는 안 하고” “싸대기를 때리겠다” 등 폭언을 하며 팔로 밀치고 피켓에 발길질을 했다.



사례2. ㄴ씨는 오후 4시경 1인 시위를 마치고 피켓을 투표소 문 바로 밖에 진열해뒀다. 투표소 건물이 본인의 학교라 공부를 하다 내려 왔더니 피켓이 없었다. 참관인에게 피켓 보았냐고 묻자 “움직이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중앙선관위에서 압수했어요”라고 했다. 30분쯤 지나 중앙선관위 사람이 왔다. 어느 것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자 “싸가지가 없네” 등 고함을 지르며 욕을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윽고 경찰과 담임, 교장까지 왔다. 경찰은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뭔 놈의 선거는!”이라고 했다.



청소년 단체 아수나로는 18일 기자회견이 끝나고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장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혜연 기자.




이처럼 “청소년을 정치적 주체로!”란 주제로 지난 11일 총선 투표소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청소년들이 선관위 직원과 경찰에게 봉변을 당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18일 오후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선관위와 경찰청 소속 공무원이 헌법 및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대리인을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은 투표방해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투표소 밖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뿐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고 투표 방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적용하여 집행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며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병역의무 등을 지게 하고 있으면서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제166조는 투표소 안에서 또는 투표소로부터 100미터 안에서 소란한 언동을 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동을 하는 자가 있는 때에는 투표관리관 또는 투표사무원은 이를 제지하고 그 명령에 불응하는 때에는 투표소 또는 그 제한거리 밖으로 퇴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8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 앞에서 청소년 단체 아수나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혜연 기자.
서울 송파구 문정동(제3투표소)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봉변을 당한 아수나로의 활동가 호두악마(별칭)는 “그날 나는 어른들에게 귀찮은 파리 취급을 당했다”며 “청소년은 학생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또한 이 나라의 ‘국민’이기도 한데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해서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로 지역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며 청소년에게도 명함을 돌렸다는 심재옥 진보신당 부대표도 힘을 보탰다.



“최근에 중학생이 또 자살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육환경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며 “이는 또한 교육 문제에 관해 청소년의 발언권과 선택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한다면 점차 여러 교육 문제들도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아수나로는 성명을 내고 “총선날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1인 시위를 진행했던 장소는 모두 경찰 및 선관위와 마찰 없이 끝이 났다”며 “이번 사태는 국민으로서 누리는 당연한 기본권들조차 청소년은 보호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일부 선관위 직원이 1인 시위 참가자의 신상과 정황을 학교 측에 전달하여 현재 해당 청소년에 대해 징계절차를 준비하고 있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조사관이 배정되면 사건조사가 진행되고 조정을 거치게 된다. 이후 위원회가 권고, 기각, 각하, 합의권고, 이송 등 결정을 내리면 당사자에게 결과가 통보된다.



아수나로는 이번 사건의 책임자와 책임기관을 끝까지 쫓아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강경하게 대응해 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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