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동심 좀먹는 문제풀이. 밤8시까지 12교시 강행.

'일제고사 석탑'세운 충북교육청의 초등학교

충북 진천군에 있는 A초등학교. 지난 18일 일제고사 준비로 밤 8시까지 4학년과 6학년 교실에 불빛이 환하다.


"5월은 가정의 달, 행복한 학교 만들어요."
 
위와 같은 현수막이 정문에 내걸린 충북 진천군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들어선 때는 지난 18일 밤 7시 30분쯤. 2층에 있는 4학년과 6학년 교실에 불빛이 환하다. 6학년 교실에 다가갔다.
 
 
"○○○이 아프리카에 간 까닭, 정답은?"
 
"사아 번!"
 
학생들이 목청을 돋아 '정답 4번'을 합창한다. 가정의 달 5월, 학교의 야간 보충수업 강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이 교실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전체 6학년 학생 22명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17명의 학생들이었다. 열등생으로 분류된 학생 4명은 4학년 교실에서 따로 공부한다. 가정에서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하는 학생 한 명만이 이 강요된 보충수업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이명박 대통령과 교과부의 교육방향에 맞춰 충북교육청이 지정한 녹색성장 시범학교. 하지만 이들은 지난 5월 8일쯤부터 녹색의 자연도 빼앗겼다. 밤 8시까지 하루 12교시에 걸쳐 '문제풀이 기계'로 내몰린 탓이다. 주5일제가 시행됐지만 토요일에도 나와야 한다.
 
"선생님이 6월 26일 시험 때까지만 밤중까지 공부하면 된다고 했어요. 정말 재미없어요."
 
6학년 한 남학생이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다음 달 26일은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있는 날. 사실상 교육청 평가와 학교 평가에 반영되는 이 시험 때문에 학교는 골을 싸맨 끝에 국·영·수 문제풀이에 나섰고 학생들은 골병이 들고 있었다. 이 학교는 사설업체에서 만든 문제집도 사줬다.
 
이 학교 6학년 한 학부모는 "이전에는 방과 후에 한 과목을 3시간 동안 시험 대비 학습을 시키더니 5월 들어서는 아예 우열반으로 나눠 밤 8시까지 공부시키고 있다"면서 "학교 가기 좋아하던 아이가 공부하기가 싫다며 너무 힘들어 한다"고 털어놨다. 이 학부모는 "야간 학습이나 토요 등교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안내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학교 교장은 "학부모 동의를 받고 한 일"이라며 해당 학부모의 발언을 부인했다. 교감은 "저녁에 학생들이 늦게 간다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눔활동 등으로 자연을 충분히 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초등학교가 야간 보충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교과부 지원금 4000만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는 이 학교를 포함해 전국 289개교를 전원학교로 뽑은 뒤 3000∼6000만 원의 돈을 보내줬다.
 
이 돈 가운데 일부를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 구입비, 학생 저녁 식사비 등에 쓰고 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욕망의 현장 일제고사, '어린이'는 없다

이날 밤 8시 5분쯤. 정규수업 6교시와 보충수업 6교시, 모두 12시간 가량을 학교에서 보낸 학생들은 어둠을 뚫고 교문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이 시각 이 학교 본관에 걸린 대형 LED 전광판 글귀는 여전히 번쩍번쩍 빛났다.
 
"꿈을 키우는 어린이, 미래를 여는 학교."

충북교육청 청사 현관 앞에 세운 '일제고사 석탑'.
 

충북교육청은 지난해 말 한 건설업체의 기증을 받아 '일제고사 석탑'을 청사 현관 앞에 세웠다. '3년 연속 전국 1등'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일제고사, 그리고 어른들의 욕심이 가득한 공간에 '어린이'는 없었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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