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쓰러진 학교 당직기사, 그날 날아든 사직서

당직기사 가족 “우리를 지렁이만큼도 못하게 취급” 억울함 호소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있는 강 기사. 의식은 깨어났지만 몸을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한다.

학교 감시노동자, 이른바 ‘학교당직’ 강 아무개 기사(78)가 서울 양천구 K초 당직실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된 때는 지난 20일 아침 6시 20분쯤.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주변 대학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

곧바로 찾아온 용역업체 부장 “사직서 내라”

이 시각으로부터 12시간 쯤 뒤인 오후 6시께 한 중년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강 기사를 K초에 파견한 삼락시스템의 A부장이었다. 이 업체는 퇴직교장들의 모임인 서울교육삼락회의 협력회사다.

서울시교육청이 만든 ‘학교별 당직용역 파견업체 현황’ 자료를 보면 삼락시스템은 2010년 현재 서울 초중고 203곳의 당직 용역권을 따내 동종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조사대상 536개교의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2~5위 업체 평균 수주율보다 2.4배가량 높은 수치다.

22일 강 기사의 부인 박 아무개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를 지렁이보다도 못하게 취급해 억울했다”면서 몸을 떨었다.

“삼락시스템 부장이 달랑 사직서 한 장을 들고 왔어요. 저한테 사직서에 대신 사인을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말하더군요.”

결국 박씨는 경황 중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회사 직원이 사경을 헤매는데 빈손으로 와서 사직서에 사인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억울했다”고 털어놨다.

강 기사는 K초에서 9년 동안 일했다. 강 기사가 평일 16시간, 휴일 24시간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올해 1월 현재 72만1840원. 하루 8시간 기준 법정 최저임금 103만5080원보다 크게 밑도는 액수다.

서울시교육청이 최홍이 서울시의원에게 건넨 자료를 보면 K초는 110만원을 삼락시스템에 건넸지만 이 업체는 보험료, 퇴직금 명목으로 돈을 뗀 뒤 나머지 돈을 강 기사에게 준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서울지역 1600명을 비롯하여 전국 1만여 명에 이르는 학교 당직기사들 대부분이 비슷하다는 게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본부의 설명이다.

현재 강 기사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의식만 깨어난 상태. 하지만 부인도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그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K초 교장이라고 한다.

“보상 피하려고…” 비판에 업체 해명, “당직기사 위해서 한 일”

강 기사를 직접 찾아가 사직서를 받은 삼락시스템의 A부장은 2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그날 사직서를 받지 않으면 강 기사가 평일 3만원, 휴일 5만원의 대리근무 수당을 본인 급여에서 공제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차라리 사직을 하면 이런 금전 손실 없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강 기사를 위해 사직서를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다른 학교 당직기사가 다쳤을 때도 바로 사직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당직기사가 용역업체와 맺은 근로계약서에는 병가와 휴가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당직기사가 병이 나거나 다쳐 근무를 하지 못하면 대리 수당을 업체에 줘야 하는 형편이라는 게 삼락시스템 쪽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조형수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본부 서울 조직국장은 “용역업체가 대리 사인을 반강제로 받아간 사직서는 법적으로 무효”라면서 “학교에서 일하던 직원이 쓰러지자 곧바로 사직서를 받으려고 한 것은 비인도적일뿐더러 보상 등을 피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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