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과부, 이상한 ‘학급당 학생 수 기준’

대통령령에 20명 이상 명시 추진… 농산어촌 작은학교 직격탄

교과부가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이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한 학급에 학생들이 20명이 되지 않는 대다수 농산어촌 작은 학교가 통폐합될 위기에 놓였다.

교과부가 지난 17일 입법예고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보면 학급수와 학생 수에 관한 51조에 2항을 새로 만들어 시‧도교육감이 학급당 학생 수를 정할 때는 20명 이상이 되도록 정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인 학급당 학생 수를 법령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과부는 “적정규모의 학교를 육성하기 위해서”라고 추진 이유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을 넘겨야 한다. 당장 광역도 단위의 농산어촌 작은 학교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교육감은 이들 작은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상으로 만들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강원과 전북, 전남 학교 절반 가량 통폐합 위기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올 4월 현재 전북지역 전체 초등학교 419곳 가운데 교과부가 제시한 학급당 학생 수에 못 미치는 학교는 257곳(61.3%)에 이른다. 또 중학교는 208곳 가운데 70곳(33.7%), 고등학교는 132곳 가운데 4곳(3.0%)이 한 학급에 학생들이 20명이 안 된다. 전체 초‧중‧고 759곳 가운데 331곳(43.6%)에 달한다.

강원지역도 전체 초등학교 402곳(본교 352곳, 분교 50곳) 가운데 학급당 학생 수 20명이 되지 않는 학교가 268곳(66.7%)이나 된다. 중학교는 76곳(46.6%), 고등학교는 34곳(29.1)이 그렇다. 전체 초‧중‧고로 따지면 682곳 가운데 55.4%인 378곳이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상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됐다. 전남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체 초‧중‧고 831곳 가운데 531곳(초 338곳, 중 146곳, 고 47곳)이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이 안 됐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 교육청과 교육단체들은 교과부가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의 통폐합을 유도하려는 조치로 보고 있다. 20명 이상을 만들려면 작은 학교끼리 통폐합하는 방법이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이번 개정안에서 함께 학교의 학급 수를 명시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과부는 초등학교 1개 학년 1학급씩 6학급, 중학교 1개 학년 2학급씩 6학급, 고등학교 1개 학년 3학급씩 9학급 이상이 되도록 했다. 이에 1개 학년에 1학급을 꾸리지 못해 몇 개 학년이 함께 학급을 구성하는 작은 학교는 생존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학교 수도 전북과 강원, 전남의 많은 농산어촌 학교가 여기에 해당한다.

전남교육정책연구소는 이에 대해 “시행령이 통과되면 경과조치를 둔다해도 급속하게 면 단위 학교는 붕괴되고 1개 면에 2~3개 학교를 합하더라도 학교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는 “과연 전북에 남아있는 학교가 몇 개나 될 것인지 의문이다. 절반이 넘는 학교가 폐교되고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통학버스를 타고 장거리로 이동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흐름은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하’인데

교과부가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해 상한선으로 잡은 것도 시대에 역행이라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이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하’로 하한선을 설정한 것에 반한다는 것이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23일 “학급당 학생 수를 몇 명 이하가 아니라 몇 명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교과부가 나서서 교육환경 악화와 비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부추기는 꼴”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강원교육청 한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30~40명으로 콩나물 교실이어서 법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도 지난 2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사실을 알리고 “도‧농간 교육환경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작은 학교의 자연 통폐합을 유도하겠다는 발상으로 개정령안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 교육감들은 다음 달 14일 울산에서 열리는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16개 시‧도교육청 차원의 공동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병규 교과부 지방교육재정과 과장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진행하려면 개정령안의 내용으로 학교 규모가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농산어촌의 학교를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통폐합으로 볼 수 없다”면서도 “예전에 통폐합이라는 말을 썼다가 비판을 해서 적정 규모 수준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김 과장은 “교육감이 최종적으로 결정해 실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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