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자율과 타율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 일구기

각 주체별로 인권 바탕에 둔 학생·학부모·교사 생활협약

[새내기 혁신학교 서울 인헌고]
3주체가 서로 믿고 서로 지키는
'어울림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행복 공동체'


"휴지를 교무실에 갖다 놓으면 어떨까. 휴지도 절약해서 쓰고 말이야." 유하은 학생(1학년)이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옆에 앉은 오진숙 학생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가야 하쟎아. 부담되는 데. 돈을 넣고 화장지를 뽑는 자판기도 괜찮을 것 같아."
 
지난달 25일 오후 1시경 서울 인헌고 체육관 안은 시끌벅적했다. 1학년 전체 300명 한데 모여 학교에 바라는 점을 두고 토론을 하는 중이다. 학생들은 급식 질 개선, 교내 흡연 문제, 교과교실제 등 다양한 주제를 쏟아냈다. 9반 6명의 친구들은 '화장실에 화장지 구비'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4월 말 학생들이 화장지를 무분별하게 쓴다는 이유로 행정실에서 화장지를 없앤 사안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 인헌고 1학년 300명이 모두 한 데 모여 급식 질 개선, 교내 흡연 문제, 교과교실제 등 다양한 주제를 쏟아내며 학교에 바라는 대토론을 벌였다. 1학년 토론회는 학생 협약을 만드는 첫 발걸음이었다. 이후 학생, 학부모, 교사 3주체가 각각 규정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조수아 학생은 "화장지가 없어진 뒤 20분이나 걸리는 집까지가서 볼일을 봤어"라고 불편함을 털어놓으며 "아이들이 화장실 휴지를 마구 쓰는 점도 문제가 있어. 그런데 휴지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돼"라고 말했다. 김혜원 학생은 "칸 있는 화장지면 조금 덜 쓰지 않을까? 질도 좋고 말이야. 둘둘 말리는 휴지는 좀 그래"라고 의견을 냈다.
 
토론은 40여분 동안 계속 됐다.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화장실에 휴지가 있어야 한다'는 제안에는 모두 동의했다.
 
이날 나온 학생들의 목소리는 오는 8일 진행되는 2학년 대토론회에서 나온 내용과 함께 학생회가 3~4차례 토의를 한 뒤 학생생활규정에 포함된다. 올해 서울형 혁신학교로 새 출발한 서울 인헌고가 현재 새로운 학교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오완근 교무혁신부장은 "기존의 규칙은 교사가 관리를 위해 만든 것으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면서 "학생인권조례에 맞게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해 직접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새 규칙을 마련하는 과정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문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기존의 생활규정이나 학교규칙이 아닌 학생·학부모·교사 세 주체가 각각 규정을 짜서 공동체 생활협약을 맺으려는 것이다.
 
1학년 토론회는 학생 협약을 만드는 첫 발걸음이었다. 오진숙 학생은 "혼자만 생각했으면 찾지 못했을 해결방안이 친구들과 서로 얘기하니까 같은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흡연 문제로 토론한 박승환 학생도 "친구들과 논의하면서 서로의 생각에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고 내 의견이 반영된다고 하니 좀더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모습을 본 교사들도 교직원회의 등에서 교사 생활협약을 만드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날도 학생 토론회를 끝낸 뒤 영어교실에서 교직원 토론회를 열어 흡연 등에 대해 어떤 규범을 정해 아이들을 지도할 것인가를 두고 2시간여 동안 논쟁을 벌였다. 흡연과 폭력, 성폭력, 절도, 수업방해 행위, 무단출결, 부정행위,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대한 불응 등 8가지 행위에 대한 자체 법을 정해 학생과 교사 모두가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자치혁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현 교사는 "공동체 학교생활을 유지하도록 모든 주체가 꼭 지켜야 하는 타율 규정을 정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하며 "각 주체가 자율적으로 만드는 생활협약과 함께 타율규정이 조화롭게 이뤄지도록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지금까지 만든 '교사의 약속' 협약(안)에는 체벌을 하지 않는다, 준비를 철저히 해 지루하지 않게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한다, 칭찬을 많이 하고 학생의 작은 실수는 관용과 사랑을 바탕으로 이해해 준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학부모 생활협약은 지난 4월에 확정됐다. 50여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진행한 학부모연수에서 학교일에 관심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서로 소통한다,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고 인성적 측면에서 감싸준다 등의 내용을 담은 '학부모의 약속'을 통과시켰다.
 
김미정 학부모회 혁신학교위원회 위원장은 "혁신학교의 한 주체로 학부모들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인헌고의 소통 문화는 1학년부, 2학년부, 3학년부를 만든 조직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같은 학년 교사들 서로가 한데 어우러지는 데 중점을 뒀다. 나아가 담임에게는 교무행정 업무를 주지 않았다. 교과를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아이들과 부대끼는 데 집중하도록 했다. 교감과 교무행정사 2명 등으로 꾸린 교무행정팀이 공무처리 등을 도맡아 한다.
 
2학년 3반 담임인 이학신 2학년 부장은 "하는 일이 대폭 줄어 교과지도와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늘었다. 그 전보다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은 수업연구와 아이들 상담에 투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자 학교운영위원장은 "새내기 혁신학교로 학교가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학부모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에 가슴이 뭉클하다. 학교를 새롭게 만들려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영길 교감은 "예전 습성이 있어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세 주체가 서로 믿고 서로 지키면 공동체를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헌고의 올해 주 표어는 '어울림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행복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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