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여름방학특집] 책 한권에 여름 원샷

국어교사 3인의 여름방학 필독 추천


오진숙 교사(경북 아화중)가 추천하는 책 : 「철학이 필요한 시간」
“'망각'하라. 온전한 선물을 위해”


올 1학기, 포항에 사는 국어 교사 몇이서 인문학 관련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몇 차례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간 세상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분들께 인문학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를 권하며,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 중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란 책을 소개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쓴 철학자 강신주 씨는 '강단철학'에서 벗어나 대중 아카데미 강연들과 책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소통과 사유를 나누기를 원하는 분이라고 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그가 읽은 니체, 하이데거, 칸트, 사르트로, 스피노자 등의 서양 철학자들의 저서와 임제, 지눌, 맹자, 장자 등의 동양 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우리 삶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300쪽이 넘는 분량에 48가지 소제목별로 내용이 나뉘어 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습관의 집요함/언어 너머의 맥락/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여성적 감수성의 사회를 위해/ 웃음이 가진 혁명성/주체로 사는 것의 어려움/결혼은 미친 짓이다'등의 소제목을 통해 내용을 짐작하길 바란다.
 
그 가운데 '선물의 가능성'이란 소제목의 내용을 소개한다.
 
생일이나 기념일, 입학식, 졸업식, 취업, 승진 등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어떤 대가도 없이 주고받는' 진정한 의미의 선물일까, 아니면 '어떤 대가를 전제하고 주고받는' 뇌물일까?
 
A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승진하자 고급 정장을 살 수 있는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었다. 자신이 그렇게 선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뒤 A도 친구와 마찬가지로 승진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친구는 축하의 뜻을 전하며 식사를 사주었고, 조그만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5만 원 상당의 도서상품권 한 장이 달랑 들어 있었다. A의 기분은 어떨까? 그 도서상품권을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었다면 A가 친구에게 준 '100만 원 상품권'은 '어떤 대가도 없이 주고받는'선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A가 자신이 과거에 주었던 '100만 원 상품권'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받은 도서상품권과 비교하며 불쾌감을 느꼈다면 A가 친구에게 준 '100만 원 상품권'은 '대가를 전제하고 주고받는' 뇌물에 해당한다.
 
우리가 A라면 대부분 도서상품권을 기쁘게만 받지는 못할 것이다.
 
자크 데리다라는 철학자에 의하면 선물이 온전한 선물의 의미로 남으려면 '망각'이 필요하다고 한다. 선물을 주는 쪽에서는 선물은 되갚아지는 거라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어떤 이를 위한 희생이다라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 등을 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의지, 대가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 자체가 선물을 받는 상대와의 사랑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겠다는 의지와 동일한 것이 되어 사랑이 오가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어떤 대가를 기대하며 '선물'을 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채권과 채무의 관계로 떨어져 버린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등 사랑을 유지하고 싶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망각'하자. 그래야 상대방도 같은 마음의 '선물'을 준다는 사실! 물론 이것조차도 기대하지는 말고.


강성규 교사(대구 성서고)가 추천하는 책 : 「김수영을 위하여」
“나의 꿈을 깨워주는 유월의 시인”


대구에 온 지 두 해. 작년에는 밀양으로 독서교실에 다녔다. 학생들과 거리, 기차간에서 나눈 대화는 교실에서보다 더 기억에 남아 있다.
 
7월 말 두 번째 강사는 철학자 강신주. 재미있고 여유로운 입담이었다. 나와 너,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논쟁적으로 이끌었다. 부친상을 치른 지 얼마 안된 철학자의 강연은 피곤해 보이면서도 담담하였고, 고민이 깊었다. 그런 그가 김수영 책을 냈을 때 무척 반가웠다. 강신주의 입담도 그리웠지만, 1학기 국어수업에서 김수영을 가르치고 뒤끝이 허전하던 차에 맞이한 휴일이 거의 없는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와 학생들의 것이 아니라 주로 국가의 것이었다. 일제고사는 다가오고, 나는 수업에서 놓친 김수영을 만나고 싶었다.

책은 지루하지 않았다. 일대기가 아니라 김수영의 주요 낱말들을 변주하며 깊어지기 때문이었다. 강신주는 김수영의 '시, 자유, 혁명, 행동, 싸움, 온몸의 시, 불온함'을 관조하지 않고 여러 철학자들과 함께 끌어안고 뒹굴고 있어,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강신주는 '절대적인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인간은 자유를 가로막는 저항에 맞서 자신의 자유를 관철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김수영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싸움을 예민하게 느끼는 시인이었고, 시는 그가 세상과 싸우는 곳이었다. 김수영에게 시는 현실과 무관한 순수의 도피처가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온몸의 시론'이 나오는 대목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에게 '시를 쓰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었다. '시작(詩作)'을 '삶'으로 바꾸어 비춰 보면, 그 긴장감이 더 새롭게 살아난다.
 
책 표지의 김수영은 극단적인 반공의 공기 속에 버티듯, 온통 빨강 속에 서 있다. 강신주는 김수영의 속살을, 격한 호흡과 깊어지는 동어반복으로 보여준다. 김수영이 자유를 얼마나 집요하게 성찰하고 추구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온몸으로 밀고 나가려 했는지를. 김수영은 어떤 이념이나 중심에 자신을 무작정 맡기지 않고 철저한 단독성을 고집하였고, 온몸으로 맹렬하게 돌아가는 팽이처럼 자기중심의 축으로 살아가려 했다. '스스로 돌기'가 '힘 모으기'의 바탕이라고 그 사람은 믿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수영의 기일 무렵이었고 담임의 일상은 독서를 허락지 않는 진 빠지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틈에서 글이 읽혔다. 출퇴근 버스 뒷자리에서, 아이를 안고 어르는 시간 사이에 책장을 삼키듯 읽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숨 가쁜 책읽기.
 
한 철학자 덕분에 6월 가뭄에 진도도 끝나버린 김수영을 만났다. 그 덕에 이제 나는 자유의 서술과 이행 사이에 서있는데, 무뎌지는 눈알을 다시 비비듯, 어떤 몸짓의 골목에서 책장을 다시 열어보려 한다.
 
제 언어로 살고자 하는 벗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여름밤! 김수영의 시 한 대목을 펼친다.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 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 주어도 좋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일터에 앉아 생활의 원심력에 끌려 시야가 한없이 좁아질 때, 한없이 작아져 흔들릴 때, 나를 깨워주고 꾸짖어, 함께 눈 부릅뜰 친구, 옆에 있는가? 그런 사람이, 그런 책이 더욱 드물어 그리울 때 만난 김수영은, 지난 6월의 3보 1배까지 동행한 가슴 뻐근한 길벗이었다.


박혜성 교사(서울 광진중)가 추천하는 책 :「경쟁에 반대한다」
"잘못된 신화, 이상한 믿음"

 
지난해 잇달아 일어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고등학생, 살기가 힘들다는 유서를 남긴 중학생의 자살 속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6일 전국 초·중·고교에 일제고사를 강제 실시했다. 학교간 경쟁과 학생 경쟁을 부추기는 일제고사는 다양한 파행 사례를 낳아 일제고사, 경쟁교육의 정당성이 없음을 다시 보여줬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은 <경쟁에 반대한다>에서 위와 같은 경쟁 신화가 발전의 동기도 아니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님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정치, 사회, 교육뿐만 아니라 놀이와 스포츠까지도 경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쟁이 사회화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가 말한 사례들에는 평소에 우리도 경험하는 일상도 있다. 아이에게 엄마나 아빠 중 누가 더 좋은가를 묻는것이 그것이다. 승패는 경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실력을 쌓거나 뭔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경쟁 없이도 할 수 있다. 좋아한다고 해서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못하면서도 즐거워서 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배움은 상호 배타적 경쟁 관계가 아니다.
 
알피콘은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낮은 자존심에 대한 보상 때문에 경쟁을 한다고 한다. 경쟁에서 이겨 1등이 되지만 이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도 없다. 이렇듯 경쟁의 가장 큰 폐단은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사회라는 공동체가 파괴된다는 사실이다.
 
경쟁교육의 대안으로 그가 말하는 것은 협력학습이다.
 
협력학습은 처음엔 무척 힘들다. 경쟁 신화에 젖은 아이들은 성적이 나쁜 아이는 무기력하고 성적이 좋은 아이는 남을 도와주는 것을 싫어하며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력의 필요성과 효과를 수업 때마다 이야기를 하고, 협력수업을 두 번 하면 아이들은 변한다.
 
알피콘은 '협력학습은 수업방식의 변화, 학습의 내용, 학교에서의 인간관계까지 새롭게 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했다.
 
이 책은 교육을 하는 모든 사람이 현장 실천과 거리 투쟁을 통해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부드럽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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