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맛따라 멋따라 1박2일 여행 (2)] 강원 원주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시간이 멈춘 곳, 남한강 옛 절터 둘러보기

여름방학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고민일 것이다. 폼 나게 근사한 피서지라도 찾아가자니 넘치는 인파를 생각하면 미리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럴 때 뜨거운 햇볕 아래 시간이 멈춰선 듯 고즈넉한 옛 절터를 둘러보는 당일치기 여행도 제법 재미있을 듯하다. 큰 마음 먹고 나서서 더위와 맞장 뜨며 옛 사람들 사연이 녹아있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폐사지(廢寺址)를 둘러보다보면 여행과 공부를 함께 한다는 생각에 가슴 한가득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원주 거돈사지
 
영동선 고속국도를 타고 가다 문막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부론면 쪽으로 15분 정도 달려가면 법천사지(부론면 법천리)와 거돈사지(부론면 정금리)가 나온다. 산자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크게 번성했다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사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절터 규모가 제법 크다. 얼마 전까지 1차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던 법천사지(法泉寺址)에는 고려 문종왕의 왕사(王師)였던 지광국사(智光國師) 현묘탑비(玄妙塔碑)가 남아 있는데 국보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 높이가 4.55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이 탑은 받침대인 귀부에서 머릿돌인 이수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조형미와 균형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비신(碑身) 옆면에 새겨진 운룡(雲龍)과 상부에 새겨진 용화수, 당초문, 도솔천과 수미산, 삼족오와 봉황 등 아름다운 문양들로 유명하다.
 
다시 승용차로 5분 정도를 달려가면 거돈사지(居頓寺址)가 나오는데 돌 축대 아래 차를 세우고 8천 평에 이르는 평지에 올라서면 먼저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이 우뚝 서서 반긴다. 탑이 크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넓은 절터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든든하고 편안하다. 절터 한편에 원공국사(圓空國師) 승묘탑비(勝妙塔碑)가 서있는데 보물 제 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공국사는 고려 현종의 왕사로 지광국사보다 한 세대 앞 서 살았던 인물이다. 저 멀리 절터의 제일 안쪽에는 '원공국사승묘탑'복제품이 서 있다. 보물 제190호인 진품은 '지광국사현묘탑'처럼 일제 때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절터 입구 왼편 구석에는 천년을 살아 왔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앉아 있다 보면 폐사지 특유의 적막함과 쓸쓸함을 밀어내며 편안한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어온다. '염천연화(炎天蓮花)'라고 뜨거운 여름 하늘 아래 피어난 연꽃처럼, 천년의 시간을 머금은 옛 절터 위에 고고히 서 있는 탑비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할 것이다.
원주지광국사현묘탑비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척에 있는 흥원창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영월, 충주를 돌아 흘러 온 남한강과 문막 벌판을 가로질러 달려 온 섬강이 만나 여주로 나가는 여강 줄기를 이루는 합수머리 흥원창은 고려와 조선 시대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실어 나르는 조운창(漕運倉)의 하나였는데, 저녁 무렵 해지는 풍광이 단연 일품이다. 하지만 그 놈의 4대강 삽질의 여파가 이곳까지 미쳐 천혜의 자연 습지가 다 파괴되었다. 뚝방 길엔 자전거 도로가 놓이고, 강 건너편엔 파낸 모래와 자갈이 산처럼 쌓여 있다. 가끔씩 몇 명의 라이더들이 강변을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시원하다. 그래도 그렇지 저 호사를 누리겠다고 이 좋은 자연을 다 망가뜨려도 된다는 말인가, 마음 수양 잘 하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열 받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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